성도에게 찾아오는 환난과 핍박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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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0 10:48 조회4,991회 댓글0건본문
성도에게 찾아오는 환난과 핍박은 기회
성도에게 찾아오는 환난과 핍박은 기회
2008년06월 13일(금요철야)
본문 / 로마서 8:17-18
이 세상에서 제일 복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다른 복을 다 받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저주 받은 인간입니다. 영원한 저주를 받아 지옥에 들어갈 자이기 때문에 저주 받은 인간입니다.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자체를 영광으로 알고 기뻐하며, 예수님을 믿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가장 큰 복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잠 1:7). 모든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보면,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말씀, 계명 등은 목적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돈, 명예, 사람에게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이고,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이 세상에서 천국의 맛을 보며 살다가 평안히 천국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난과 핍박과 시험, 그리고 고난을 당할 때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왜 환난, 핍박, 시험, 고난이 찾아올까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이유와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첫째, 죄를 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5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 중 하나는 죄를 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버리지 못했거나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마태복음 19장 16~22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청년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주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어본 것을 보면, 영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영생의 세계가 있음을 알고, 영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종교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라고 말씀하시며,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이 청년은 대단히 훌륭한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자기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이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여기에서 이 청년의 아주 무서운 죄, 결정적인 큰 죄가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이 청년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포기할 수 없어서 하나님을 떠났고, 영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서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믿음에서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게 되어있습니다. 돈이 우상이 되고, 재물이 우상이 되니, 그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이 청년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매주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흔 아홉 가지의 죄를 회개했더라도 한 가지 죄를 회개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은 아직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한 가지 죄를 회개하지 않았거나 열 가지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은 모두 같습니다.
이 청년과 비슷하게 살면서도 자신은 예수님을 잘 믿으며,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9장 23~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과 같은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충격을 받고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게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는 방법이 있고 대책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그가 택함 받은 백성이라면, 하나님에게는 그를 구원 받게 하시는 대책이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바로 고난을 통하여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죄를 끊어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고난이 환난, 재난,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은 회개할 기회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5:32).
돈 많은 부자들이 어떻게 구원 받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방법으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바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택함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분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소문을 듣게 될 것입니다. 불택자라면 그냥 죽거나 자살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지금 고난 받고 계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죄가 무엇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철저히 회개하여 죄를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 고난은 축복으로 바뀔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데, 한 가지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앞서 언급한 부자 청년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러나 재물 하나만은 놓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만,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그 한 가지를 뿌리 뽑으십시오. 그 문제가 해결되면 기도하는 것이 빨리 응답 되고, 어떤 때에는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다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에게 고난이 오면, 그 고난이 우연히 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생활,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데 왜 고난이 왔는가 생각하지 마시고, 감춰져 있는 죄, 내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죄가 무엇인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에는 이유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반드시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끊어버리지 못한 죄를 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은혜 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뜨겁든지 차갑든지 해야 합니다. 미지근해서는 안 됩니다.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처럼 미지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미지근한 신앙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토하여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3:16).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려고 한다면 아주 뜨겁게 믿으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주 미지근한 믿음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목사, 전도사, 선교사들 중에도 신앙이 미지근한 사람이 많습니다. 일평생 큰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합니다. 평안하고 모든 것이 잘 되면, 형식적으로 기도합니다. 평안하고 모든 것이 잘 되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0분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30분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새벽예배 나와서 30분도 기도하지 않고, 5분만 기도하고 들어갑니다. 평생 형식적으로 기도하고, 30분 이상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큰 은혜의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큰 은혜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큰 고난을 당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간사해서 아주 큰 고난이 와야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평안하면 절대 기도하지 않습니다. 죽기 직전에까지 가봐야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매달려서 기도하고, 불을 받고, 주님을 만나고, 주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도망가다가 들판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만약 들짐승이나 산 도둑을 만난다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에서는 사냥꾼이기 때문에 야곱보다 몇 배로 빨리 뛰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에서가 좇아오면, 가인이 그의 동생 아벨을 죽였듯이 야곱도 죽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날 밤에 심각하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또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기도할 때, 천사와 씨름하면서 허리뼈가 부러질 정도로 결사적으로 기도한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한편으로는 야곱이 은혜 받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윗도 기도를 아주 많이 기도한 사람입니다. 다윗처럼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은 없습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다윗의 기도가 얼마나 뼈저린 기도인지 모릅니다. 다윗의 기도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자신들도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들이 모여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모여서 기도에 힘쓰다가 결국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위기 속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현재 하나님의 종들의 공통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이 큰 고통 가운데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았든지, 고민거리가 있어서 밤잠을 못자고 며칠씩 깨어서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든지 기도하다가 은혜 받은 간증이 많습니다.
인천주안장로교회의 나겸일 목사님은 간암에 걸려 배에 복수(腹水)가 차서 배가 많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의사는 사모님에게 장례 준비하라고 했는데, 죽기 직전에 이대로 죽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하혈(下血)을 하기 시작하더니 배 속의 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큰 고난에 처하신 분들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난은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므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고난은 은혜 받을 기회입니다. 더 큰 축복을 받을 기회입니다. 큰 은혜를 받으면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또 숨겨져 있는 교만을 깨닫게 됩니다. 고치지 못하고 있는 나쁜 버릇도 깨닫게 됩니다. 고치지 못하고 있는 나쁜 성품도 깨닫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죄와 허물을 성령의 권능으로 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온전한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높이 높이 들어 쓰시게 됩니다.
셋째, 알곡 신자와 쭉정이 신자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타작하기 전까지는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똑같은 곡식이라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곡식을 타작마당에 깔아놓고, 키로 때리는 순간, 알곡은 알곡대로,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드러납니다.
이와 같이 큰 환난과 핍박이 오기 전에는 누가 알곡 신자며 쭉정이 신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큰 환난과 핍박이 오면, 알곡 신자는 알곡 신자로 드러나고, 쭉정이 신자는 쭉정이 신자로 드러납니다.
북한도 김일성이 완전히 공산화시켰을 때, 교회를 핍박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예수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믿다가 타락한 목사님, 장로님들이 빨갱이의 앞잡이가 되어서 누가 목사고 장로인지 알고, 또 집까지 아니까 그 사람들이 앞장서서 찾아가서 다 잡아갔습니다.
교회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보다 교회를 가장 무섭게 핍박할 사람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똑같이 예수 믿는 줄 알았는데,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 하나님을 저버리고 배신한 사람들이 가장 교회를 해롭게 만드는 앞잡이가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마지막 때가 오면, 교회에 시험이 들고, 핍박이 많아지며, 문제가 많아질 때, 실족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또 서로 잡아가는 일이 생기고, 서로 미워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쭉정이 신자들은 불신자들보다 더 악한 사람들입니다. 쭉정이 신자들은 수십 년 간 교회생활을 했음에도 회개하지 않고, 믿음 없이 살고, 위선적인 삶을 살았으니 완악한 사람들입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 어떻게 가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어 평생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믿음이 없고 위선자요, 회개조차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날 예수 믿고 눈물 흘리고 변화되는 사람도 있는데, 수십 년 동안 회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다면, 보통 완악한 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지상에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는 알곡과 쭉정이들이 함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시끄럽고 부끄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직분에 속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집사라고 해서 다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사라고 해서 모두 알곡인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9절에 보면,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짐승에게 경배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중에 독재자에게 굴복하게 되고, 하나님을 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환난 때에는 알곡과 쭉정이가 드러나는 참 성도인지 가짜 성도인지 드러나는 일종의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알고, 진실한 믿음, 목숨 거는 믿음, 순교를 각오하는 믿음, 죽어도 끝까지 예수를 믿으리라는 믿음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미지근해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예수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순교적 각오로 예수를 믿으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공군 군목으로 복무할 때, “저는 죽어도 좋사오니, 전 장병이 예수님을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월급을 전도하는 데 썼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부대장이 스스로 교회에 나오더니 전 장병 5분 내에 교회에 나오라고 비상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역사하시니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기도생활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상관없이 목숨 걸고 기도하는 사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알곡 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장차 받을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손해를 보고,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장차 받을 영광이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아들은 아니지만, 양자입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천국을 상속 받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없듯이, 저와 여러분이 이 땅 위에 사는 동안 많은 영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고난, 희생의 고난을 하지 않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만 받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약삭빠르게 신앙생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져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면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우리도 따라가야 합니다. 흉내라도 내야 합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 심상치 않습니다. 금년보다 내년에는 더 큰 환난이 있을 것이고, 내후년에는 더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아무 일도 없이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아예 버리시기 바랍니다. 큰 태풍이 올 수도 있고, 지진이 일어날 수 있으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징조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떤 큰 환난의 징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어떤 고난이 와도 고난의 이유를 알고 산다면, 절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잘 참고 견디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첫째, 죄를 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끊어버리지 못한 죄가 한 가지라도 남아있다면 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고난을 주십니다.
둘째, 은혜 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난이 클수록 목숨을 걸고 기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답답할수록, 절망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 절실히 기도하게 됩니다. 그때 불을 받고, 주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큰 은혜 받은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대부분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셋째,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환난과 고난이 오면, 알곡 신자는 알곡 신자대로,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드러납니다.
넷째, 장차 받을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편안하게 살려고 생각하지 말고, 고난이 있음에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복음을 위해 살며, 어떻게 해서든지 땅 끝까지 복음 전하다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소그룹 모임, 사랑방 모임 등을 위해 희생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되어 모두 알곡신자가 되어서 그들과 함께 주님 앞에 가게 된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요.
아무리 세상이 살기 어렵고, 환난이 많아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할 도리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실 줄 믿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가 주의 사랑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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