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항복하는 삶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8 16:02 조회3,975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께 항복하는 삶
하나님께 항복하는 삶
2005년 08월 07일(주일예배)
본문 / 로마서 6:12~13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쁨과 설렘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고향을 떠나올 때의 자신의 행동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 명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샀을 뿐 아니라 그에 따른 축복까지 가로챘기 때문에 형의 분노를 샀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 급히 도망 나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리운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만, 야곱의 마음은 무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월이 흘러가도 고통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는 즉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묻히는 것이 아닙니다.
형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야곱은 우선 귀환전략부터 세웠습니다. 사자들을 자신보다 앞서 형 에서에게 보내 많은 선물을 전달하여 마음을 떠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재물과 온 가족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얍복강을 건너가지 않았습니다. 만일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온다면, 재빨리 도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웠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초조하고 불안할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 압니다.
이때 전능자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의 사람 야곱도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32장 24절 이하에 보면, 야곱은 밤새도록 어떤 사람과 씨름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야곱과 씨름한 사람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좀처럼 물러설 줄 모르는 야곱이었지만,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 더 이상 도망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꼼짝없이 형에게 붙잡혀 죽게 되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지금, 살 길은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있음을 믿었습니다. 이때 야곱은 그동안 기도한 것보다 몇 배로 더욱 간절히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간구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는 자세로 간절히 기도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어 축복해주셨습니다.
창세기 32장 27~29절에 보면,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욕심이 많았던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했던 야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방법은 참으로 쓸데없는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사람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 한다면, 부자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야 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하셔야 부요하게 됩니다. 인간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려 해도,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아니하시면 결단코 복을 받지 못합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큰소리를 쳐도 지나고 보면 다 헛수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루속히 깨닫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살벌한 전쟁터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전쟁터와 같은 일터로 나갑니다. 좀 더 잘 살아보기 위해,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사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때때로 큰 적을 만납니다. 그러나 많은 적 중에 가장 큰 적은 자기 안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모진 환경이 아닙니다.
나의 실패와 불행의 원인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큰 문제입니까?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부족한 이유는
첫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신실하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삽니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을뿐더러 믿고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해하고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두려워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믿음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에 함께 살다 보니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영향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손주가 세 명 있습니다. 손주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제가 불러도 제게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겁부터 먹고 저를 두려워합니다. 이럴 때에는 참 섭섭합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 같이 놀아주고 같이 먹고 얼굴을 익히면 한 가족인 줄 알고 제게 안기고 제 볼에 뽀뽀도 해줍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없앱니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정과 직장과 사회생활이 모두 불안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은 교만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 힘으로 살고 내가 똑똑해서 모든 것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무리 큰소리쳐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피조물이고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사람들은 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 안에서 죄가 왕 노릇합니다. 그래서 몸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늘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이 있으며 마음이 교만하고 죄악의 습관이 남아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믿음의 부족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믿음 충만 곧 성령 충만뿐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첫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셋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시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한 삶을 삽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한 삶을 살 때에 누리게 되는 축복은
첫째, 평안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께 항복한 삶을 살면, 이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참 평강이 넘칩니다.
욥기 22장 21절에 보면,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우리 안에 가득 차면, 근심도 없고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 진정한 자유를 경험합니다.
요한복음 8장 31~32, 34~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6장 16~18절에 보면,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셋째, 삶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한 사람들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택하셔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신 것은 마리아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거나 외모가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마리아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장 38절에 보면, 천사가 수태 소식을 알렸을 때,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그녀의 온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구세주가 탄생하는,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넷째,.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된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변명하지 맙시다. 더 고집을 부리지 맙시다. 제멋대로 살지 맙시다.
아무쪼록 말씀대로 하나님께 항복하며 온전히 헌신된 삶을 살아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한 삶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