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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6장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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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25 17:10 조회4,2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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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2008년 02월 01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26:13~18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계획대로 모든 것을 정확하게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정확하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가장 큰 계획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직접 행하실 때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데, 그 일에 적당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때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을 통해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은

첫째, 깨끗한 그릇과 같은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거룩한 자를 귀하게 여기시고, 거룩한 자를 귀하게 들어 쓰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거룩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어서 의로워서 거룩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사람은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은 철저히 회개함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철저히 회개하는 기도를 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회개를 철저히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을 때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하다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이 있어서 잠을 자지 않고, 교회 지하실에서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회개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그날 밤에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저는 회개하려고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불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성경 읽다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된다고 기록되어있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저는 회개하러 갔는데, 성령의 불을 받고 집에 돌아올 때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세상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저를 보고 방실방실 웃는 것 같습니다. 밤을 새며 기도했는데도 피곤한 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회개를 성령의 선물로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악의 찌꺼기와 근성이 남아있어서 또 다시 범죄하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 같습니다.

잠언 26장 11절에 보면,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2절에 보면,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를 깨끗이 씻어놨더니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들어가서 눕습니다.

 

회개하려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때까지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하고 깊이 회개하지 않으면, 옛날의 버릇이 그냥 남아있어서 예전과 똑같은 짓을 반복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런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교회마다 문제가 많습니다.

철저히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서 제직이 되었을 경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지 않고, 오히려 마귀의 도구가 되어서 교회에 많은 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선물을 받을 때까지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도구가 되고, 교회의 부흥을 가져다주는 일꾼이 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합당한, 믿음의 사람은 거듭난 믿음의 사람입니다.

거듭난 믿음의 사람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신실하시고, 완전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똑바로 아는 사람이 거듭난 믿음의 사람입니다.

 

특별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야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학자와 목회자 중에도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경하지도 못할 사람입니다. 성경의 첫 구절을 믿지 않는 그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경이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임을 믿는 사람이 거듭난 믿음의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고,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아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거듭난 믿음의 사람입니다. 죄를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사람이 거듭난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은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예전에는 마귀의 형상을 닮았던 사람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은혜를 받으면, 점점 예수님처럼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의로워지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게 됩니다.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행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은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에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전에는 악독한 짓, 불의한 짓만 하고, 거짓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된 후에는 사람이 아주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진실해졌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수영로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 다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20년 전, 30년 전에는 성질이 사나웠는데, 지금은 얼마나 겸손하고, 온유한지, 이것이 우리 교회 성도들의 특징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신 분들은 은혜를 받고 변화되어 교회에 덕을 세우고, 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십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훌륭해지고 존경스럽게 변화됩니다. 이것이 수영로교회가 부흥하는 비결입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성령 충만할수록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정말 은혜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은혜 받고 난 후, 사랑을 베푸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삶을 삽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아주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사나, 죽으나 오직 주를 위해서, 주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워요.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삽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한 은혜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좋겠다, 예수님을 이렇게 믿다가 천국에 가면 좋겠다는 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새 성전을 지을 때, IMF금융위기로 인해 헌금을 작정하지도 않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헌금했음에도 헌금이 넘치게 들어왔습니다. 성전을 지으면서 헌금이 넘치게 들어오는 교회가 지구상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우리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걱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어떤지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홍해가 갈라지고, 믿음으로 마라의 쓴 물이 단물 되고. 믿음으로 맹인이 눈을 뜨고. 걷지 못하는 자가 일어나는 등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처럼, 믿음으로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은 순교자가 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압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은 순교자가 되는 것을 최고의 축복, 최고의 영광으로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각오로 충성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합니다. 원수라도 사랑합니다.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고,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립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에 가서 죽을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중동 회교국가에 가있는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회교국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발각되면, 바로 죽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교국가에 가서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목숨 걸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선교지에 다녀보니 예수님을 마음대로 믿고, 잘 살고, 문화가 발달된 곳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선교지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며 뜨거움이 없이 미지근합니다. 걱정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가 발각되면 죽게 되는 곳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눈에서 빛이 납니다. 언제든지 죽을 각오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죽으면 주님 만날 테니,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선교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눈빛이 다릅니다. 자세가 다릅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아주 놀랐습니다.

 

러시아가 무너지자마자 선교사들이 그곳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모스크바의 거리에 빌딩이 줄지어있어서 멋있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서 보니 빌딩의 아래층에는 배설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치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보니, 엘리베이터의 벽이 나무로 되어있는데, 그 나무를 땔감으로 쓰려고 사람들이 다 떼어가서 뚫려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에도 전등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캄캄한 가운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얼마나 답답합니까. 전등불을 켜면, 전구가 금방 없어진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전구를 빼가는 것입니다.

 

그런 러시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는 분들이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초교파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올림픽 실내경기장에 모여 부활절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언제 테러를 당할지 모르고, 언제 맞아죽을지 모르는 곳에서 선교하니까 선교사들의 자세가 살아있습니다. 눈동자가 빛납니다. 그들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회교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회하다 보면, 사랑스런 사람도 있지만,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느냐에 목회 성공의 여부가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들어 쓰시기 때문입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양을 맡기지, 누구에게 맡기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양을 정말 사랑해줄 사람에게 하나님의 양을 맡기십니다. 미운 짓 한다고 발로 차버린다면, 하나님이 사랑이 없는 그곳에 하나님이 어떻게 양을 맡기시겠습니까.

 

요한계시록에 보면, 에베소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리니까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5). 그러므로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부흥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는 사랑스러운 사람도 있지만,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미운 짓 하는 사람, 자꾸 미워지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면, 그 교회는 부흥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중에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본래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일 때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작정하고 살기등등해서 가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17절에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이렇게 충성된 종으로 불러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26장 14~18절에 보면,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으러 가는 박해자요 폭행자요 못된 사람인데,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내 종으로, 하나님의 증인으로 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특별히 행하신 일입니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행하시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과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알아뒀다가 몽땅 잡아가려고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도 바울이 진심으로 변화된 사람이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이 다른 사도들 보다 은혜를 더 많이 받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아서 더 크게 일하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나쁜 짓을 많이 했으므로, 기독교인들을 많이 괴롭혔기 때문에 사도라 칭함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이 수고하고, 더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사도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크게 쓰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겸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기독교를 비방하던 자요, 박해했던 자요, 폭행자요 죄인 중에 괴수였기 때문에 자기는 죽어도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죄가 많고 허물이 많은가를 압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부족함을 압니다. 겸손한 자는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압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삽니다.

아무리 큰일을 했어도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크게 들어 쓰십니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돈을 많이 벌고, 인물이 잘났다 해도 교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 골칫덩어리입니다. 이런 사람과 사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남편이 학벌이 대단하고, 돈도 잘 벌고, 인물이 잘났어도, 그의 아내는 불행해서 날마다 웁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교만한 사람과 사는 아내는 지옥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학벌이 좋고, 돈도 잘 벌고, 인물도 잘난 여자와 사는 남자를 사람들은 부러워하지만, 그런 교만한 인간과 사는 사람은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해도 교만한 사람은 골칫덩어리입니다. 학벌도 굉장하고, 세상의 지위도 굉장한데, 아주 교만한 사람이 교회에서 제직이 되면, 그 교회는 평안할 날이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까? 사람들 앞에 내놓을 만한 학벌이 없습니까? 돈 버는 재주가 없습니까? 인물이 못났습니까? 그래도 겸손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겸손한 자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저는 큰 성전을 지으면서 여러 가지를 걱정했습니다. 성전은 이전보다 몇 배로 커지는데, 별별 걱정이 다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예배당이 크고 굉장하다고 해서 교만하지 마라. 그저 겸손하기만 하면, 교회는 계속 부흥될 것이고, 더 잘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에는 항상 ‘교만하지 않으면 된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 부흥의 비결입니다.

겸손하기만 하면 주님이 다 책임져 시고,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주님이 사람을 모아주시고, 주님이 다 모든 것 해결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 중에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이 여인은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많은 남자와 살았는지는 성경의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책임은 부부 양쪽에 다 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 여자가 똑똑한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똑똑할수록 과부가 잘되고, 똑똑할수록 이혼을 잘합니다.

그러므로 부부 사이에서는 조금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똑똑하게 굴면, 안 됩니다. 바보가 된다고 해서 정말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척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가 성 여인은 참을성이 부족한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격이 아주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예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대화할 때, 예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예배에 대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 25절에 보면, 수가 성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메시아를 대망하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신앙을 가진 것을 보면,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가시는 도중에 수가 성에 들러 이 여인을 만나셨는데,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통해 수가 성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요한복음 4장 28~30절에 보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39~42절에 보면,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예수님께 와보라고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라고 전했을 뿐입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멸시 천대하는 여인이었지만,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온 수가 성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참으로 이 세상의 구주이신 것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을 통해 수가 성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비천한 여인이지만, 참으로 귀한 일에 쓰임 받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목사 간판을 가지고, 선교사 간판을 가져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과거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부르심을 받는 체험, 하나님의 특별히 불러주시는 체험을 하지 않았다면, 평신도로 있는 것이 더 낫습니다.

평신도로 덕을 세우지 못하고, 신앙생활 잘못하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목회자가 되면, 평신도만도 못한 목회자가 됩니다. 목회도 제대로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게 됩니다. 목회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목사가 되려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기도하며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막상 강도사 고시를 치려고 할 때, 청계산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 하면서 “아버지, 평신도로서도 얼마든지 주를 위해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주만 위해 사는 것이 소원인데, 꼭 목사가 되야 합니까? 목사가 되지 않아도 주의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목사가 되라고 하시면 제가 목사가 되겠고 그렇지 않으면 목사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기도했는데, 목요일에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게 목사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강도사 시험을 쳤습니다. 그리고 목사고시를 쳐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부족함이 많고 허물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셔서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고, 저를 책임지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제게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마세요. 선교사가 되겠다고 쉽게 결심하지 마세요. 평신도 선교사로 선교지에 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평신도로서 열심히 전도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수가 성 여인처럼 열심히 전도한다면, 전혀 전도하지 않는 목회자, 선교사보다 더 크게 쓰임 받게 됩니다.

 

특별히 기도제목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해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해주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 받으실 계획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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