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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2장

참신자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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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7 21:38 조회3,4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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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자가 누구인가

 

참 신자가 누구인가

2002년 09월 27일

본문 / 사도행전 22:2~11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서 매를 맞고 죽을지도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어떻게 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는지 유대인들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유명한 학자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습니다. 바리새파 유대교를 신봉하는 상류 가문에서 어릴 때부터 율법의 엄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으며 자랐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에 반대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붙잡아 감옥에 넘기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으려고 가는 도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도 잘 알고 열심도 있으며 경건하게 살았지만, 참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더라도 구원 받은 참 신자는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참 신자일까요?

첫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참 신자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 관원이 나옵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경건하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 태어난 사람은 한번 죽고, 한번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처음에는 부모로부터 육신이 태어나고, 두 번째에는 하나님의 아들딸로 거듭나게 되어 중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번 태어난 사람은 육신이 한 번만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한 번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태어난 사람은 두 번의 사망, 즉 육신으로 죽어 영혼이 지옥에 가는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사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두 번째 사망이 없다고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두 번째 사망이 분명히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 보면,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 두 번째 사망이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는 무엇입니까?

⑴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3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그 당시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니까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를 사함 받게 됨을 믿습니다.

 

⑵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5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에게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믿음도 없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사람은 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로,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요일 3:10).

 

둘째,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참 신자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는 귀가 있는 사람이 참 신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11, 17, 29, 3:6, 13, 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을 지으신 성령님께서 왜 말씀하시지 못하시겠습니까. 귀를 지으신 성령님께서 왜 듣지 않겠습니까. 다 들으시고 다 아십니다. 기도할 때 말할 때, 다 들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우리에게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입니다.

 

본문 사도행전 2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22장 9절에 보면,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 소리와 영음의 차이점입니다.

세상 소리는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얘기하면 다 같이 듣습니다. 그러나 영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사울만 그 음성을 듣고, 그와 함께 있는 사람은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영음은 한자리에 있어도 듣는 자가 있고, 듣는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렇게 영음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영적 지식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사흘 만에 부활하신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그의 생애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때가 바로 사도 바울이 중생하는 순간이고, 두 번째 태어난 시간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들을 때에 주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오늘 제가 설교를 듣는 중에 주의 음성을 듣게 해주세요. 성령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해주세요.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저도 주의 음성을 분명히 듣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시면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성도님은 사업에 어려움이 생겨 하나님께 특별히 기도하던 중, 주일에 교회에 나오면서 “아버지, 오늘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는 것을 듣다가 주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나서 저에게 오셔서 응답을 받았다고 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들을 때에 주의 음성을 듣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들을 때뿐 아니라, 환난이나 질고로 어려움 당할 때에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닫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큰 은혜를 받는 기회요, 주의 음성 들을 기회요, 큰 축복받을 기회임을 아시고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32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고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해지면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재앙이 임하니 그때서야 히스기야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기도하면서 주의 음성을 듣고 깨달아 회개했습니다.

교만해지는 것은 매 맞을 징조입니다. 교만해지는 것은 망할 징조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아사 왕은 왕이 된 지 39년 되었을 때에 발에 중병이 들었습니다(대하 16:12). 그런데 병이 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깨닫고 회개할 텐데, 어려움을 당해도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매를 맞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행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께서 자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⑴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늙어서 우상숭배를 많이 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9~10절에 보면,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책망하셨지만, 솔로몬은 완악하니까 하나님의 책망을 들으면서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라가 두 쪽으로 분열되었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깨달음도 없고 회개하지 않으므로 결국 망합니다. 마음이 완악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으니까 결국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망합니다.

 

⑵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마음이 준비된 사람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영적으로 귀가 어두워져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지도 못합니다.

 

제가 강도사고시를 치기 전의 일입니다 남들은 강도사고시에 떨어질까봐 교회에 휴가를 내고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야단법석이었지만, 저는 합격 되는 것이 오히려 걱정이었습니다.

강도사고시에 합격하면, 머지않아 목사고시를 칠 테고, 그렇게 목사가 될 텐데, 목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얼마나 가리겠습니까.

남들은 공부한다고 바쁜데 저는 청계산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것 같으면, 그렇게 하기 전에 미리 불러가주세요. 저는 목사가 되지 않더라도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하라’ 하시면 할 것이고, 주님께서 ‘하지 않아도 된다’ 하시면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금식기도를 한 지 나흘째 되는 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청계산 맨 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서 우산을 쓰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산을 쓰고 기도하는 제 모습이 한심해서 우산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 “목사가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빛이 임했던 것처럼, 비가 쏟아지는 캄캄한 하늘에 갑자기 빛이 임했습니다. 순간 사울이 생각나서 빛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얼른 마치고, 눈을 떴습니다. 시커먼 구름 사이에 구멍이 뚫려 햇살이 비치는데, 얼마나 멋있는지 “야! 하나님이 이렇게도 하시는구나!” 한참 태양을 바라보며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말씀만 하십시오.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개척할까요 말까요?”라고 월요일부터 특별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목요일부터 수천 명이 모인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주님께서 제게 “네가 양떼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환상으로 수천 명이 모이는 게 보였습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게 “이 양떼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주의 음성을 들을 때의 공통점은 제 마음속에 주님의 뜻에 무조건 순종할 마음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며칠씩 기도하다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다.

그러면 저는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얼마나 축복하시는지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축복이 엄청납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망했지만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의 존경받는 선지자가 되어 얼마나 축복을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든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평생 간증거리가 됩니다. 너무너무 행복해집니다.

 

셋째,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라야 참 신자입니다.

참 신자가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깨닫습니다. 참 신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 가장 큰 은혜는 예수님을 믿게 된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제일 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참 신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큰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고 더 큰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기쁨으로 자원해서 바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이 귀한 아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셨을 때에 기쁨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금은보화를 다 바치고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기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고 축복하셨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는 순간, 우리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앞으로 지을 죄까지도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 받았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믿고, 우러나오는 마음의 기쁨으로 감사하고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들이라야 참신자입니다.

 

넷째, 항상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라야 참 신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말만 들어봐도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은혜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말이 나의 인격을 보여주고, 내 믿음을 보여줍니다. 말이 내 사랑을 보여주고, 나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을 때에 밤낮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표적을 보여주셔도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밤낮 불안과 걱정 속에서 원망 불평했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이제라도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정탐꾼들이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에도 여호수아와 갈렙 외의 나머지 열 명은 믿음 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고 말했습니다. 완전히 믿음 없는 말을 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믿음 없는 말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 없는 말 그대로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사야 3장 8절에 보면,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영광의 눈을 손가락으로 찌르려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을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망했고 유다가 망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믿음의 말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해서 모두 굶어죽게 됐을 때, 엘리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응답받고 내일 하루만 지나면 기근이 해결될 것을 백성들에게 고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 말을 듣고 한 장관이 의심의 말을 하자 엘리사가 예언합니다.

열왕기하 7장 2절에 보면,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병환자 네 사람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 되었으니 오히려 용기가 생겨서 가봤더니 이상하게 사람이 하나도 없고 먹을 것과 보물만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실컷 먹고 금은보화를 자기 장막에 쌓아 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은 성에 가서 얘기합니다.

그러자 그 다음날에는 완전히 기근이 해결되었고, 사람들은 믿음 없는 말을 했던 장관을 밟아 죽여 버렸습니다.

이처럼 믿음 없는 말을 한 사람은 믿음 없는 증거가 말로써 나타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기가 믿음 없는 말을 한 것으로 인해 정죄함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믿음 없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못 하실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다.”라고 믿음의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수록 믿음으로 기도하십시오.

 

다섯째,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라야 참 신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이 자리에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산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라야 참 신자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은 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르게 살지 못하면 두렵고 떨리고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참 신자가 아닌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죄 짓고 마음대로 나쁜 짓을 하고 양심의 거리낌도 없습니다. 죄 짓는 데 담대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평생 정직하게 산 참 신자의 모델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할 때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그런 죄를 범할 수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참 신자의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늘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이것은 그가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진실한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시편 94편 9~11절에 보면,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39편 1~4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위해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십니다(잠 2:7).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은 완전한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시편 112편 1~4절에 보면,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져서 앞이 보이지 않고 절망에 빠져도 정직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빛을 비춰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책임지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사람은 자신도 복을 받고, 후손도 복을 받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 믿음의 말을 하면서 사는 사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참 신자입니다.

여러분도 참 신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은혜로운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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