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없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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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6 17:43 조회3,650회 댓글0건본문
절망이 없는 그리스도인
절망이 없는 그리스도인
2004년 08월 29일(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16:25~34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기뻐할 때도 있고, 반대로 일이 꼬이고 잘 되지 않아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 보면,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둡고 답답합니다. 외환위기 때보다 살아가기가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지금보다 몇 배 더 어려움을 당할 때도 많았습니다.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어렵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절망적인 상황은 문제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절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데도 절망한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용어 중에 ‘역경지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는 지수를 의미합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은 역경지수가 높습니다.
역경이 닥쳤을 때,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포기형입니다. 이런 사람은 역경이 닥치면 무조건 포기하거나 절망합니다. 문제에서 도피하려 합니다.
둘째, 안주형입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를 극복하기보다는 적당히 편안하게 살려고 문제를 무시합니다.
셋째, 정복형입니다. 이런 사람은 있는 힘을 역경을 헤쳐 나가려고 몸부림칩니다. 정복형의 사람들은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역경을 정복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절망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아직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실패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를 새로 세웠음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의 위신이 손상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무언가를 용감하게 시도했음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틀렸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의미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역사적으로 문명이 최고로 발전한 시기는 평화의 때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할 때에 낙심하지 마시고 자신의 생애를 더 발전시키는 좋은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대조적인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옥에 갇힌 사도 바울과 빌립보 감옥의 간수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라와 함께 빌립보 성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 루디아와 그의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길을 지나가다가 점을 치는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났습니다. 이 귀신 들린 여종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볼 때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 16:17)”고 하여 이들이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마침내 사도 바울은 귀신 들린 여종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행 16:18)”고 명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여종에게서 즉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의 주인은 그동안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으로 인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점치는 귀신이 나갔으니 더 이상 점을 칠 수도 없고, 돈을 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이 사람은 사도 바울과 실라를 관원에게 끌고 가서 송사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실라는 이들에게 붙잡혀 옷이 찢어지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죄 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신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루디아와 그의 집을 전도하여 구원할 때나 귀신을 쫓아낼 때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기뻐하시는 것 같고 나를 사랑하시는 것 같지만, 이처럼 억울하게 매를 맞고 고통 당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 같고 나를 버리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나치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수감되었던 지하 감옥의 벽에 손톱으로 그린, 다윗의 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그림 밑에는 ‘비록 태양이 우리에게 비치지 않지만,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느껴지지 않지만, 진실된 사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노라“고 새겨져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감옥에 있던 죄수들이 모두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기쁘고 즐거울 때에 찬송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매를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아픈 몸으로 하나님을 감동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본문 사도행전 16장 26절에 보면,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이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와 찬양은 감옥 문을 열고 하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홍해를 갈라 육지 같이 건널 수 있고,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모압 자손들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연합군을 이루고 쳐들어오는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했을 뿐 아니라,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응답을 받았습니다.
역대하 20장 15절에 보면,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역대하 20장 17절에 보면,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찬양대원에게 거룩한 옷을 입게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군대 앞서 나아가게 했습니다. 찬양이 시작되자 적군들이 갑자기 자기들끼리 치고 찌르고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사밧은 싸워보지도 않고 이겼습니다.
게다가 적군들에게서 나온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것들을 옮기는 데 사흘이나 걸렸습니다.
이처럼 어떤 위기가 와도 하나님 앞에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지진 소리에 놀라 잠이 깬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는 열린 옥문을 통해 죄수들이 모두 도망친 줄 알았습니다. 로마의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훈련된 그는 오직 자결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도망간 죄수를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간수는 사실을 확인해보지도 않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절망에 빠진 것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부정적인 생각은 백해무익합니다. 인생을 망치기 쉽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에게 큰 손해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망은 금물입니다.
미국 미시건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크리스토피 피터슨은 정신과학이라는 잡지에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수명도 단축되고 사고로 죽을 위험이 보통 사람보다 25% 더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간수가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을 때, 바울은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행 16:28)”고 소리쳤습니다. 놀란 간수는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말하며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 날 밤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 간수의 가정과 루디아의 가정은 빌립보교회를 세워 부흥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감옥에서 고생했지만, 그 일을 통해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간수의 가정이 구원 받아 빌립보교회를 세우는 역사적인 공로를 세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전화위복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첫째, 언제나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도,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여시면, 완전히 바뀔 줄 믿습니다.
둘째, 이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적입니다. 인간들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이 생깁니다. 새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셋째, 끈기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응답해주십니다. 어려움을 당했지만, 은혜를 받아 믿음이 좋아지고 문제가 해결되어 감사하고 간증할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언제나 이 말씀을 붙잡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도 낙심하지 마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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