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만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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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25 12:04 조회3,276회 댓글0건본문
주님을 만났는가
주님을 만났는가
2007년 10월 26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9:1~9
성경에 보면,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을 찾는다면, 구약에서는 모세,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을 택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 뿐 아니라 광야에서 40년 간 보낼 때 40일간 금식기도를 두 번이나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모든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중요한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가장 바르게 해석하여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으로 오늘날의 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기독교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큽니다.
모세나 사도 바울을 보며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습니다.
모세와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과 후가 매우 다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전에는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다 없애려는 마음으로 살기등등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늘에서 빛이 임하고, 갑자기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다 잡아 죽이려는 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고 물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사울이 변했습니다. 이름을 바울로 고쳤습니다.
빌립보서 3장 5~6절에 보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유대인 중 가장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건하게 살고 굉장해 보였지만,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있고,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다녔다 해도, 예수님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날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아도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른다는 것은 믿음도 없고 중생하지 않았고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주’라고 고백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똑바로 알았습니다. 그는 중생한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하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알게 해주십니다. 알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3)”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생활을 오래 하여 사람이 보기에는 믿음이 대단해 보이지만, 예수님이 누구신가 바로 알지 못하고, 진리를 모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보다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릅니다. 형식적으로 신앙생활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1장 23~26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의 부모님의 신앙이 대단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번성하자 바로는 “아들이 태어나거든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아이도 죽고, 부모도 죽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부모는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겼습니다.
24절에 보면, 모세의 신앙을 소개합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면,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권세를 다 버렸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온갖 죄를 범하며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세상에서 낙을 누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오히려 더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금은보화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돈이라고 하면, 신앙도 양심도 팔아먹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좋아하는 욕심으로 인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은 30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 후, 가룟 유다는 목을 매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돈이 우상이 되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욕심이 우상이 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를 포기했습니다. 왕자로서 권세와 쾌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그는 대단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모세는 두 가지를 몰랐습니다.
첫째, 자신의 부족함을 몰랐습니다.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을 죽였다가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힘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가시고 함께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이 없으면, 헛수고하는 것이요,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써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굉장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귀히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써주셔야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 쓰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쓸 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셔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때를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맞춰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때를 알고 기다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아브라함이 100세가 될 때까지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사라가 90세가 되었습니다. 사라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져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사라가 임신하여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는 것이었으나, 그것을 몰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신이 더 이상 임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갈이라는 애굽의 여종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자식을 낳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아랍 사람들은 고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리면, 은혜를 받고, 인격도 훌륭해집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생각하지 못한 많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세요. 부르짖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런데 기도하다가 낙오하는 분이 있습니다. 했다 말았다 하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중간에 그만두면 상처만 남습니다. 의심하게 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먹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하여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 충만한 가운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낙심하고 의심하고 자포자기하며 방황하는 것 자체가 지옥이며 불행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은혜 가운데 사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를 아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설교 핵심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다니엘 7장 22절에 보면,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7장 12절에 보면,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때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후, 모세는 달라졌습니다. 출애굽기 3장 1~10절에 보면,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형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격을 가지고 계셔서 말씀하시고 보시고 듣고 아시고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늘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도 육신은 없지만,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사울에게 말씀하시듯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 모세는 변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가 깨달았습니다. 출애굽기 3장 11절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똑바로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모세는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도 기도생활을 했지만, 직접 응답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석에서 생수가 나게 하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는 등 대단한 능력이 모세에게서 나타났습니다. 기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아말렉과 전쟁할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할 때에는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이 아말렉보다 더 강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도 사람이기 때문에 피곤하면 손이 내려왔습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를 편안한 곳에 앉히고 양쪽에서 받혔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루 종일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말렉을 완전히 무찔러서 승리했습니다.
민수기 12장 1절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그러자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미리암, 아론을 모두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 모세를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는 것에 대해 미리암과 아론을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12장 4~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론은 동생인 모세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고 ‘내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청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보다 온유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모세같이 충성스런 자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난 후에 변했습니다.
첫째, 겸손해졌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8~10절에 보면,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8절에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표현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보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많이 범한 사람 중에 자신이 죄가 제일 많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이렇게 겸손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더 겸손해지기 바랍니다.
둘째, 삶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9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변화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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