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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낙원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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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7 11:53 조회3,5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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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낙원의 환상

 

지상낙원의 환상

2004년 10월 03일(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4:32~35

 

시편 84편 10절에 보면,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고통 많은 세상에서 천 년 만 년 사는 것보다 단 하루를 살아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곳에서 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살아가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세를 믿지 않고 삶은 현실뿐이요 죽으면 아무 일도 없는 줄 알기 때문에 자살을 시도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될수록 사람들은 ‘이 땅에 언제 지상낙원이 이루어질까, 세상 어디에 지상낙원이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지상낙원을 만들려고 애쓴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서로 돕고 나누며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애썼지만,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4장 32~35절에 보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해 칼빈은 “이 기사를 읽고서도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강철보다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첫째, 모든 사람의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한 마디로 ‘주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희생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을 내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도우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상낙원이 되려면,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기 좋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옛날 희랍 전제국가의 한 왕이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쾌락지수와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을 공모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나왔습니다.

모두 시험해보았으나, 왕이 기쁘고 행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불만만 더해졌습니다. 화가 난 왕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들을 모두 사형시켰습니다. 그 후 새로운 아이디어를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가 행복하기 위한 새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며 왕을 찾아왔습니다. 소녀는 왕의 면전에서 왕을 꾸짖는 듯한 눈빛으로 “왕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쁨을 단념하십시오. 왕은 남을 행복하게 하거나 기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쁨과 행복을 원하신다면, 먼저 남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딸아, 너의 말이 옳다”하고 소녀에게 상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자신만 기쁘게 하고 자신만 즐기려는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려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 시의 즉결심판부에 라구아디아라는 판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빵을 훔친 죄로 법정에 섰습니다.

이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판사님, 저는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때부터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 가게에서 빵을 훔치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라구아디아 판사는 근엄한 표정으로 “당신의 절도 행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합니다.”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판사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그 벌금은 제가 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방청석을 향해 “이 돈은 제가 그동안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벌금입니다. 여러분도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벌금을 내고 싶으시면, 이 모자에 돈을 담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47달러를 보았습니다.

라구아디아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고맙습니다. 이제 작은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라구아디아 판사의 명판결은 시민들에게 알려졌고, 라구아디아 판사는 후에 뉴욕 시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오래 전 어느 잡지에 실린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돈리라는 사람이 추운 겨울에 직업을 잃었습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그는 굶주림에 지쳐 할 수 없이 구걸에 나섰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고급 식당 앞에서 한 쌍의 부부에게 동정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했습니다.

지나가던 여인이 이 광경을 보고 그에게 1달러를 주며 “용기를 잃지 마세요. 당신이 곧 직업을 얻도록 기도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돈리가 고맙다고 인사하자, 이 여인은 “이것은 동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떡을 먹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 떡을 나눠주기 위해 노력하세요.”라고 말하고 갔습니다.

돈리는 1달러로 요기를 하고 50센트를 남겼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그를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돈리는 남은 돈 50센트로 빵을 사서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노인은 빵을 조금 떼어먹다가 남은 빵 조각을 종이로 쌌습니다. 돈리는 “내일 먹으려고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아닙니다. 저 길에서 신문을 파는 아이에게 주려고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빵을 건네자 소년은 좋아하며 빵을 뜯어먹었습니다. 그때 강아지가 빵 냄새를 맡고 꼬리치며 소년에게 다가왔습니다. 소년은 남은 빵 부스러기를 강아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신문을 팔려고 뛰어갔습니다. 노인도 일거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돈리가 ‘나도 이렇게 있을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는 했습니다.

그 순간 강아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돈리는 강아지의 목걸이에 적힌 주소를 보고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주인은 매우 고마워하며 돈리에게 10달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같이 양심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소. 내일 나를 찾아오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지나가는 한 여인의 1달러가 나누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먹던 빵 조각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다면, 이런 사람들로 인해 지상낙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임종하려는 사람은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자기 욕심만 채우며 살았다는 것을 후회합니다. 좀 더 인내하며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나누고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순결과 거룩, 인애와 자비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생각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모든 사람이 자원하여 기쁨으로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강요에 의해 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한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자원하여 자유롭게 형편대로 나누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강요에 의해 나누었다면, 불평불만이 일어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하고 부담스러워지며 기쁨이 없습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모든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원하여 기쁨으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하여 자원하여 기쁨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세상을 지상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빈부귀천이 없고,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누어먹고, 혜택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돌아가는, 공평한 세상을 만들면, 가장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환상적인 이론이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이런 세상을 만들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사람의 방법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의 땅과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모두 공평하게 잘 살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공산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고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러시아에서만 6천만 명을 죽였습니다. 북한정권도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혀있는지 모릅니다. 이들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소유로 착취했습니다.

자유를 박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은 많이 시키고 배급은 적게 주었습니다. 일반 대중들의 생활은 피폐해지는 반면, 정권을 잡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호의호식하며 잘 살게 되었습니다.

독재정치로 반대파는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서로 감시하고 고발했습니다. 결국 국민은 독재자를 위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밥 세 끼를 먹는다고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자유가 없는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국민들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낙이 없고 희망이 없다 보니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생기고,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똑같이 받으니 요령만 늘고,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생산량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결과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기계는 녹슬고 고장 나서 공산주의는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던 레닌은 죽기 전에 공산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인했습니다. 1924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피압박 대중은 자유를 얻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가 취한 방법은 압박과 잔악한 학살만 선동했을 뿐이다. 생사의 악몽에서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자들의 피로 붉게 물든 망망대해 가운데 버려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지난날을 뉘우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러시아를 구하는 데에는 열 명의 아시시 프랜시스가 필요했다. 열 명의 아시시 프랜시스와 우리가 힘을 합한다면, 러시아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시시 성 프랜시스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물려받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과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고,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았던 기독교사의 위대한 인물입니다.

 

지상낙원은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희락이 넘칩니다. 화평과 인내와 자비,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온 가족이 성령 충만하면 가정이 지상낙원이 됩니다. 온 성도가 성령 충만하면, 교회가 지상낙원이 됩니다. 온 국민이 성령 충만하면, 나라가 지상낙원이 됩니다.

 

이사야 65장 17~25절에 보면,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나라를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려면,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랑이 충만하여 기쁨으로 자원하여 서로 나누며 살아감으로 가정과 교회를 지상낙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담대히 복음을 전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언제 죽더라도 주님 앞에 흠과 티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재림하시더라도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저와 여러분은 항상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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