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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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5 11:35 조회3,329회 댓글0건본문
믿음의 열매
믿음의 열매
2009년 04월 24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4:31~35
여러분은 어떤 보물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실 보물이 많이 있으면 좋습니다. 이 세상에 보물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보다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값지고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을 가리켜 “보배로운 믿음(벧후 1:1)”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 어떤 복보다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믿음이 가장 귀한 보배인 이유는
첫째, 믿음으로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자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 9: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자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그 순간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예수님께서 고쳐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대는 순간, 열두 해 동안이나 고생했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맹인 바디매오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 10:5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보다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모든 복을 다 받았다 할지라도 구원 받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이요, 지옥에 가서 영원히 멸망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천국 시민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복되게 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상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이 세상에 70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셋째,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다 받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다 받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3~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이루어질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5~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두 맹인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9:27)”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마 9:28)”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두 맹인은 “주여 그러하오이다(마 9:28)”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두 맹인에게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귀한 보배입니다.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믿음으로 구하는 대로 다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넷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장 4~5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첫째,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4)”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대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듭난 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의 증거가 있습니다.
1. 거듭난 사람은 회개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회개한 적이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3장 2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습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회개하지도 않고, 세례 베푸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 3:7~11)”라고 말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회개합니다. 회개하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복이 있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회개하지 않습니다.
2. 거듭난 사람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알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식이 완전한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하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믿는 것, 이것이 거듭난 사람의 증거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고 낙심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지지만,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깁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습니다.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교회 다니는 것을 감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자신이 크리스천인 것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거듭난 신자라는 확신이 있다면, 거듭난 신자인 것을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면, 붙잡혀가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믿음의 사람은 붙잡혀가서 죽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시인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신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셔서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까?
이것이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의심합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그 교회에 장로님 부부가 아주 똑똑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창조론을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장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로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장로가 될 수 있습니까.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구원 받지 못할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을 괴롭히고, 교회에서 문제만 일으켰습니다.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대학교 교수요, 아주 똑똑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조론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보며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습니까? 이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천국에 갈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목회자라고 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는 믿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처럼 건넜다는 것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목회자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신학교 교수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3. 거듭난 사람은 새사람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듭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의 자녀가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1~24절에 보면,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4. 빛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에베소서 5장 8~11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빛 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빛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은 점점 착해집니다. 성품이 착해집니다. 의로워집니다. 진실해집니다. 그래서 세상에 빛을 발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슬기 있는 자 다섯 명과 미련한 자 다섯 명이 나옵니다.
슬기 있는 자는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했습니다. 그러므로 슬기 있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참으로 거듭난 사람, 빛의 자녀는 반드시 변화됩니다. 빛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세상의 빛이 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기름이 없기 때문에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미련한 자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신랑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미련한 자를 향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련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둘째,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집사 일곱 명을 세울 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했습니다(행 6:3).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합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의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성령께서 계시는 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 받는 믿음이 있는 사람의 안에는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거듭난 자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겁이 나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거듭났지만 믿음이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흔들렸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으러 바닷가에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 21:15)”고 말씀하시며 베드로에게 사명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거듭난 사람이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믿음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는 담대히 전도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47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니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이 풍성해져서 모든 물건을 통용했습니다. 자기의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했습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대제사장은 베드로와 요한이 전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 충만했기 때문에 담대해졌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4장 31~35절에 보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한 것이 모두 성령 충만한 자, 믿음이 충만한 자의 열매입니다. 믿음의 열매는 성품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좋을수록 예수님의 성품을 닮습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닮습니다. 반대로 타락할수록 마귀의 성품을 닮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믿음이 자랄수록 성품이 변합니다. 성품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보면, 믿음의 수준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중직자가 되었다고, 목회자가 되었다고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성품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보면, 믿음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변화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충만할수록 성령이 충만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할수록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성령 충만할수록 희락이 넘칩니다. 성령 충만할수록 화평하게 됩니다. 오래 참습니다. 자비합니다. 양선하고 충성하고 온유하고 절제합니다. 여러분에게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열매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이 충만할수록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자신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만큼 성령 충만합니다. 믿음만큼 사랑이 충만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을 받습니다.
순종은 모든 복을 받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습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해에 농사를 지어 백 배의 축복을 받았고,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는 세상을 바라보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사세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갑니다(마 7:21).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기도할 때에도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응답을 받습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달라고 기도해보세요.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십니다. 만사가 형통합니다. 전화위복의 축복을 받습니다.
저는 이것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세요.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서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사는 자를 기뻐하시고, 거룩하게 사는 자와 함께하십니다.
요셉은 거룩하게 살려고 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요셉은 죄를 범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셔서 형통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전화위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크게 들어 쓰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사람,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귀하게 쓰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삽니다. 우리의 소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욕심에서 나온 소원입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지고 싶은 대로 가지고 욕심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욕심에서 나온 소원을 따라 살다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졌다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날마다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읽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각 나라의 말로 번역하여 전 세계에 하나님을 전하다가 하나님 앞에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소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면서 쾌락을 누리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욕심에서 나온 소원은 버리는 것이 복이 됩니다. 절제하는 것이 복이 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원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소원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소원을 주셔서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원을 갖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어 바치고 싶었습니다. 비록 다윗은 성전을 지어 바치지 못했지만, 아들 대에 성전을 지어 바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바치고 바쳐서 얼마나 부요해졌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서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을 가지고 살면서 평생 복을 받았습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을 모두 구원 받게 해야겠다는 목표와 소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다 이루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축복하셨습니다. 받은 복이 많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질 당하고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형제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합니다.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원수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감동 받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믿음이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고, 믿음의 열매가 아름답게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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