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필도목사_행복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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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2:34 조회3,595회 댓글0건본문
행복한 교회
행복한 교회
2004년 01월 04일(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2:42~47
저는 우리 교회에 새로 나오신 분으로부터 “수영로교회는 행복한 교회인 것 같아요. 목사님도 행복해보이고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넘치는 축복으로 인해 행복한 교회로 좋은 소문이 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1975년 6월 1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초량교회의 정해찬 장로님이 하나님 앞에 서원한 기도 그대로 성전건축이 이루어졌고, 저를 만난 정 장로님께서 교회를 제게 맡겨주셨습니다.
이처럼 교회개척 때부터 성전건축에 대한 걱정 없이 교회가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자리가 급속히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곧 1부, 2부, 3부로 예배를 드려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잘나서 이렇게 부흥된다.’라고 교만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지 사흘째 되던 수요예배 시간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어른들은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 몇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꽉 찼었는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그 순간 몹시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강단에 엎드려 “아버지! 내 죄가 무엇입니까? 왜 교인들이 갑자기 나오지 않습니까?”라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네가 해? 내가 하지. 네가 해? 내가 하지. 네가 해? 내가 하지” 세 번이나 반복하여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저는 ‘주님 잘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다 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이 하신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 교회를 제가 세우고 제가 부흥시키는 줄만 알았습니다.’라고 저의 교만함을 회개했습니다.
이때 다시 주님께서 “네가 잘나서 교인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아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이 우리 교회의 당회장이십니다. 저는 교육전도사와 같은 마음으로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주님이 다 맡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수영로교회는 주님이 세우시고, 주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모으시는 교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배당, 성전을 가리켜 교회라고 말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당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장소이며, 누구나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예배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계신 곳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꼭 건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굴이라도 좋고, 들판이라도 좋으며, 천막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말씀이 있고, 성령이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부르시고 만나주시며 사람들을 중생하게 하시고, 구원 얻게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계셔서 친히 역사하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예수님이 함께 계셔서 역사하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저는 주님이 우리 교회에 계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를 통해, 교역자들을 통해 말씀하심을 믿습니다.
제가 1966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목회를 하면 할수록 저는 주님께서 다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9%는 주님께서 하시고, 제가 하는 일은 1%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주장하시고, 주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사람들을 모으시고, 은혜를 주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이를 눈으로 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교회에서 큰일을 추진할 때에, 제 마음에 차지 않고 기대한 것보다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저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주님 앞에 회개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주님의 일에 방해꾼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며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수영로교회는 주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행복한 교회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초대 교회는 참으로 행복한 교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지상의 모든 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입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을 통해 성도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 나중에는 몇 만 명, 몇 십만 명으로 부흥되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말씀의 능력이 강력히 나타났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3천 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본문 42~43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44~45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성도들 간에 얼마나 사랑이 많아졌는지 서로 서로 나누어주고 대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46~47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한마디로 초대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30년 동안 목회하며 신앙잡지의 발행자이기도 한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님은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있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과 주차장 등 공간 때문에 늘 문제가 되나, 죽어있는 교회는 공간에 대한 염려가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한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의 소리로 시끄러우나, 죽어있는 교회는 언제나 조용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일꾼이 부족하나, 죽어있는 교회는 일꾼이 필요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하여 쓴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은행 잔고가 많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 얼굴들의 이름을 알기가 어려워 애를 먹는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그런 염려가 없다. 해가 바뀌어도 언제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주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생색내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 위에서 모든 일들이 결정되지만, 죽어있는 교회는 인간적인 판단으로 모든 일을 추진한다.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언제나 편안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전도에 힘쓴다. 그러나 죽어있는 교회는 점점 굳어져 가는 석회암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 교회는 분명히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1년간 3천 명의 성도들이 등록했습니다. 그 중에는 타 도시에서 이사 오신 분도 있고, 먼 거리에 사시던 분이 교회 가까이로 오시면서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절반을 넘습니다. 그렇다보니 제 자신부터 성도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잘 모릅니다. 늘 새로운 얼굴이 많다 보니 이름을 외울 수 없습니다. 담임 목사로서 얼마나 죄송한지 모르겠습니다.
수영로교회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처럼 주님이 행복해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행복해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첫째,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알곡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언제 신랑이 올지 알 수 없으므로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더디 오므로 오늘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빈 등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막상 생각지도 않은 때에 신랑이 오면 그제서야 기름을 준비한다고 허둥대다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도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이 당장 오셔도 괜찮은, 늘 준비되어 있는 성도가 있는 반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교인들도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알곡신자요, 미련한 다섯 처녀는 쭉정이 신자입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이 행복해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저와 여러분이 모두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밭에 좋은 씨를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씨가 잘 자라나서 결실할 때가 되고 보니 엉뚱하게도 심지도 않은 가라지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당황한 종들이 이를 보고 주인에게 “우리가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이 가라지는 어디서 생겨났을까요? 우리가 이 가라지를 다 뽑아버릴까요?”라고 묻습니다. 이에 대해 주인은 가만 두라고 명합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힐까 염려되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는 것입니다. 추수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고 추수꾼들에게 명하겠다고 말합니다.
오늘날도 교회마다 얼마나 말썽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원수들이 교회 안에 가라지를 심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설령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가도 알곡 신자가 되는 역사가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교회에 처음으로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믿음이 없기 때문에 가라지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거듭나게 되고. 새 사람이 됩니다.
제가 수영로교회에서 시무하다보니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성격이 불 같던 사람도 얼마나 점잖고 아름답게 변화되는지 모릅니다.
수영로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모두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처럼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네 달란트를 만들었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갑절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속에 묻었다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놓았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을 듣고 쫓겨났습니다.
우리는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처럼,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각자 한 명 이상은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방 모임에도 열심히 모이고 은혜를 받아 하나가 둘로, 둘이 넷으로 점점 늘어나는 부흥의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행복해하실 줄 믿습니다.
셋째, 양과 같이 형제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염소는 형제를 외면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양은 형제를 사랑하고 돌보는 선한 사람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교제와 봉사가 있는 교회가 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행복해하실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레드우드라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이 참나무는 수명이 2~3천년쯤 되고, 높이가 100m가 넘고, 둘레도 8~9m가 되는 매우 큰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나무가 어떻게 비바람을 이겨내고 살아가는지 연구하다가 나무 밑을 파보고는 이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이 나무는 땅속에 뿌리를 깊이 박고, 마치 촘촘한 그물망처럼 다른 나무들과 서로서로 뿌리가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까닭에 어떤 기상 변화에서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혼자서는 이 세상 유혹과 시험과 시련 앞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사랑방을 통해 격려하며 섬기고 기도할 때,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승리할 줄 믿습니다.
제가 수영로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기 전, 공군 군목으로 일월산에 있을 때에 전장병 신자화를 목표로 불철주야 애쓴 결과 1년 만에 목표가 달성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군종감으로부터 “정 목사는 이 곳에서 전 장병 복음화를 이루어냈으니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가라.”라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때는 누가 봐도 당연히 서울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전국 군복음화 후원회장으로 계시던 초량교회의 정태선 장로님과 손을 잡고 부산에서 복음화 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선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당분간 부산에 있기로 결정하고, 부산의 기독교기관장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곳에 초대되어 제가 설교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 모이신 분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들의 안내로 각 사업장으로 초대받아 설교도 하고, 나중에는 기독교방송 설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당을 지어줄 테니 제대할 때까지 부산에 있어달라고 하셨고, 제대할 즈음에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해주시는지, 교회마다 집회 요청이 밀려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분들마다 서울로 가지 말고 부산에 남아 목회해 달라고 간청하셨습니다. 저는 늘 ‘저의 소원은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백령도, 소록도, 울릉도 어디든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하던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부산에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이렇게 좋은 교회로 소문이 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제가 품은 선한 뜻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금년에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사업 잘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축복해주세요.’라고 막연하게 기도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선한 뜻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소원, 좋은 뜻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다른 축복들이 저절로 따라올 줄 믿습니다.
저는 항상 ‘모든 희생 다 할테니 은혜를 부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이런 마음으로 사신다면, 행복한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섬길 때 행복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언제나 이 교회를 통해 은혜를 받고 영의 양식을 공급받아 건강하고 건전한 성도로 성숙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 중 1단계는 모두가 알곡 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모두가 다 평신도 지도자가 되어 부산 50만 명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는 것입니다.
일만 사랑방을 통해 부산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이 민족을 복음화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행복하게 해드리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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