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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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1 17:58 조회3,369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
2003년 04월 18일(금요철야)
본문 / 사도행전 2:34~39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먹을 걱정 없이 장수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까지 있어서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 평안하고 건강하게 잘살다가 죽은 사람은 더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도 잘살았고, 천국에서도 영생복락을 누리는 사람이니, 그야말로 복의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옷을 벗기우시고, 피가 흐르도록 채찍에 맞으시고, 저주스럽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재산을 소유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결혼하시지도 않으셨고,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십자가에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초라한 모습으로 얼마나 가난한 모습으로 사셨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3~9절에 보면,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서 하나하나 자세히 눈으로 본 사람처럼 구체적으로 예언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주받은 우리들을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예수님께서 대신 저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의 죗 값을 대속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우리의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모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실상은 타락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주모자들입니다. 이들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어갈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누구보다도 이들을 가장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나열하시면서 책망하셨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대적하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주모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가장 앞장서는 자는 타락한 성직자들입니다. 돈과 명예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입니다. 죄를 범하면서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타락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선동에 넘어간 어리석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함께하였습니다.
이들 중에 구경삼아서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도 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군중심리에 이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목이 터지라고 외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동참한 어리석은 죄를 범한 사람들입니다.
셋째, 헤롯왕과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권세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이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인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는 악독한 짓을 한 사람들입니다.
넷째, 사형집행을 담당한 로마의 병정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명령에 따라 그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뿐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가장 큰 죄인은 가룟 유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붙잡아 넘긴 행동대원이었습니다. 그는 돈에 눈이 어두워 은 30냥을 받고 자기 스승을 잡아 넘긴 배신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3년 동안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을 존경할 만한 스승으로만 알았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믿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그런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 속에는 사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6~27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마귀였고, 멸망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믿음을 갖지 못한 불신자였습니다. 또한 도둑놈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붙잡아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는 데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습니다.
잠언 16장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악한 날에 가장 적당하게 시험받기 위해서 준비된 사람으로, 평소 못된 짓을 하다가 결국 나쁜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24).
가룟 유다는 전형적인 불택자였습니다. 그는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워서 자살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하나님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는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행 2:36).
이렇게 외칠 때,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찔려 “우리가 예수님을 죽였으니 어찌할꼬”라고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행 2:38).
베드로는 이스라엘 온 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그 뜻을 똑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범한 죄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 범한 죄, 또 미래에 범하게 될지도 모르는 죄까지 모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한 사람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해야 하고, 죽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죗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는 행위요, 예수님의 발에 못을 박는 행위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다면, 그 죗값으로 예수님께서 못 박히셨으니 오늘도 죄를 범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옛사람이 남아서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만 잠시뿐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거룩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그 마음도 잠시뿐이지 우리는 거룩하게 살지 못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로마서 7장 15~25절에 보면,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한 대로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 법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성령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죄 많은 세상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음란한 세상이라도 우리는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악독한 세상이라도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 할지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성령은 강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누구나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음란해지고 더러워지고 악의 세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성령의 세례를 부어주시옵소서. 떡과 잔을 받을 때,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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