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12:10 조회6,028회 댓글0건본문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2004년 11월 19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21:15~17
성경에 보면 특별히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야곱은 많은 아들 중에서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여 옷도 다르게 입혔습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어 애굽에 팔려갔지만, 주인 보디발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에게 모든 집안일을 맡겼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 간수장이 그를 사랑해서 모든 열쇠와 제반 사무를 다 맡겼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된 후에는 바로가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겨 요셉은 왕과 다름없이 대접받으며 살았습니다. 요셉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그렇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매우 사랑한 사람입니다. 임금도 그를 많이 사랑해서 그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랑 받은 사람들에게 아픔이 있는데, 시기, 질투하는 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 형들이 요셉을 시기 질투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다니엘의 경우, 원수들이 왕의 사랑을 받는 그를 질투하여 그를 모함하려고 연구하다가 그가 매일 세 번 기도하는 것을 트집 잡아서 사자 굴에 집어넣는 법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랑 받는 사람에게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있게 하신 이유는 그를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대접받는 사람은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첫째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해야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가장 먼저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사랑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누구든지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랑의 교제가 완전히 이루어집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 21:15)”, “내 양을 치라(요 21:1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힘듭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 중 가장 귀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랑 중에 가장 큰 것은 지옥에 갈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로 하여금 구원받아 주님의 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키워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다가 천국에서 상 받게 하는 것이 제일 큰 사랑입니다.
제 목회의 목표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힘듭니다.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이 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목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매우 중요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고,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16).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므로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그릇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그릇이 클수록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래서 믿음만큼 행복합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클수록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습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믿음의 크기만큼 축복을 받고 일꾼이 됩니다.
그런데 타락은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고, 받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자는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그리고 사탄을 좋아하고 가까이합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가장 먼저 요구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사랑이 가득할 것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 희락 등 좋은 것이 다 따라옵니다.
둘째, 사랑 안에서 교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도 우리를 마음껏 사랑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누리며 삽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삽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첫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그 중에 늘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도 기쁨이 충만하고 천사의 모습으로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본 순간,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습니다.
항상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행복하고 어떤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만사형통의 복을 받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셋째,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로마서 14장 5~8절에 보면,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넷째.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바칩니다. 그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아들이라도 기꺼이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주님을 만난 후, 주님을 위해서, 복음전파를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칩니다.
저희 어머니에게는 단골무당이 있었습니다. 그 무당이 한 달에 두 번씩 우리 집에 왔습니다. 우리 집에 빚이 늘어나니까 무당이 어머니께 “당신 아들이 예수 믿어서 빚이 늘어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저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 같은 효자가 어디 있냐고 울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교회 나가면 되잖아.” 하셔서 당장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나갔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타락은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타락할수록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내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라고 물으셨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믿음을 가지고 축복받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