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07 14:14 조회6,074회 댓글0건본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019년 08월 04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21:15~17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사명을 따라 살아가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제자들은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제자로 부름 받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은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백성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하나님의 백성은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명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냥 교회만 다니면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명을 가지고 있고,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명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사명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밤낮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생각하고 세상 염려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면 모든 것이 잘 됩니까. 실패를 많이 합니다. 고난이 많습니다. 영적으로 메마릅니다. 그런 상태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명을 잊고 살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참된 평강과 기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사명을 잊고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슬퍼하십니다. 근심하십니다.
사명을 잊은 채 세상에서 낙을 찾은들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명을 잊어버리고 살면 이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미국 LA에 있는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던 때의 일입니다. 고등학교 때의 동창생을 거기서 만났습니다. 그곳에 사는 친구들이 연락하여 친구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한국에 살 때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밤낮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었는데, 그 친구들을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해외에 사는 교포들은 웬만하면 다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교회에 가야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드리러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 만나러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예배 후에 같이 점심을 먹으며 한 주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서 친구 만나러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친구 따라서 봉사합니다. 봉사하다 보니 직분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는데, 성경을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는데, 기도할 줄 모르는데, 직분을 받습니다.
직분을 받았으니 대표로 기도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기도문을 써서 들고 다닙니다. 기도하게 되면 써놓은 기도문을 보고 읽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이민 간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똑같은 짓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이민 간 목적이 무엇입니까? 잘 살기 위해서입니까?
자신의 사명을 이루려는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명을 잊은 채 사는 사람은 삶이 비참해집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는 집사였지만 사도 못지않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요 2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밤새 물고기를 잡았으니 제자들은 춥고 배고프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구운 생선과 떡을 나눠주시며 “와서 조반을 먹으라(요 2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자비하심, 인자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보면, 제자들이 식사한 후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많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즉시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요한의 아들 시몬’은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이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감으로 예수님께서 부르시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제자들과 같이 먹고 자고 같이 일하시며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많이 애쓰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모든 것을 버리고 이전처럼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깨우쳐주시려고 베드로를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것을 말씀하실 때에는 강조하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너무 고생해서 금식기도 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하고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금식기도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밤에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 반복해서 말씀하셔서 제가 의심하려야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다섯 개의 교회에서 저를 담임목사로 오라고 했을 때, 저는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부산에 올 것도 생각한 적 없었고, 교회를 개척할 것도 생각한 적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지 나흘째 되던 날, 환상이 보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 양떼들을 버리고 네가 어디로 가겠니. 이 양떼들을 버리고 네가 어디로 가겠니. 이 양떼들을 버리고 네가 어디로 가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대답할 때까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성도들이 많이 몰려와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설교를 잘 해서, 목회를 잘 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 수요일에 성도들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가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목회하지, 누가 목회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저는 제가 하는 줄 알았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는 네가 세운 게 아니라, 내가 세웠다. 네가 목회를 잘 해서 이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백성을 모아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처음 질문하셨을 때에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려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명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신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돈보다 나를 더 사랑하니. 명예보다 나를 더 사랑하니.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니.”라고 물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사랑과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신앙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요 신앙심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족이나 형제, 이웃에게 무관심한 채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족들도 함께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함께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혼자 은혜 받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여자신학원이 있습니다. 공부를 마친 사람들 중에 전도사가 되어 사역하는 분이 계십니다. 사역하게 되면, 살림을 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온 가족이 모여 파송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길러주실 것입니다.
선교사는 부모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자녀 문제로 고민이 많습니다. 부모님이 편찮으셔도 돌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선교사 자녀를 위한 학교는 먼 곳에 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부모 곁을 떠나야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있으니 문제가 많습니다. 그런데 선교사 자녀 학교에서 아이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 나라의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부모처럼 선교사가 된다면, 부모보다 더 나은 선교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형제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입니다. 원수를 미워하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저주하고 악담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달라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2절에 보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박해하는 자’는 임금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만들고 모든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를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우리의 원수,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축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사람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화평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8절에 보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화평하게 지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과도 화평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할 때에야 화평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든 싫든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를 보십니다.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돌이키고 의를 행하면, 그 사람은 의를 행하는 것 때문에 삽니다. 그 사람이 과거에 행한 악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과거에 아무리 의롭게 살았다 해도, 악을 행한다면 그 사람은 악을 행하는 것으로 인해 죽습니다. 과거에 좋은 일을 아무리 많이 했다 해도, 그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모습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과거에서 돌이켜 살기를 원하십니다. 죽을 인간, 저주 받을 인간, 심판 받을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돌이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형제나 이웃, 원수에게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지옥 불에 들어가지 않고, 모두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거듭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어린 양’, ‘내 양’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대로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0~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8~30절에 보면,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면, 주님은 우리에게 백 배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저는 중ㆍ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닐 때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밤낮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죽고 싶은 마음으로 낭떠러지 끝에 앉아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졸업식 후에 하나님을 원망하듯이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두지 않았다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목사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고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명자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고생하게 하셨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고생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신학교에 갔습니다. 개척 교회에서 설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주일에 열 번씩 설교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하니 하나님께서는 제게 돈 걱정을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책임져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제게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책임져주셨습니다.
저는 부산이 복음화되기 원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복음화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평양에 가서 집회를 인도할 것을 꿈꿉니다. 저는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를 개척한 후에도 우리 교회만을 생각하지 않고, 날마다 수영로터리를 돌며 기도했습니다. 10년 정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놓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충성한다면,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항상 넘치게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사명을 알고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책임져주십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결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