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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20장

세 종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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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18 14:43 조회3,5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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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사람

 

세 종류의 사람

2007년 04월 13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20:19~22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련하게 여기는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삽니다. 로마서 8장 6~7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다 육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점점 타락의 길로 달려갑니다. TV 등의 문명 기기들은 우리의 삶을 편하고 즐겁게 해줍니다.

문명이 발달해서 편해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육에 속한 사람은 육신의 생각에 따라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하므로 세상을 더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에 죄악이 가득해서 유황불 심판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불신자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서 18~19절에 보면,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에 성령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서 3~4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서 7~8절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서 10~16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5~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신령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육신에 속한 사람은 아직 자신이 왕입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예배를 빠지기도 하고 봉사하지 않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신령한 사람으로,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함을 따라 갑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이십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마치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불효자와 같습니다.

 

로마서 8장 5~6절에 보면,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육신과 영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로마서 7장 15~24절에 보면,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육신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으로 인해 죄 짓는 것임을 깨닫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민한 것은 은혜 받은 증거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만 이렇게 고민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 속상해 하고 연약한 자신을 생각하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사람만 사도 바울처럼 고민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뜨겁지도 차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자신들이 잘 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이들은 고민 없이 그냥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육신에 속한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아서 젖이나 먹고 밥은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비위에 맞는 이야기만 좋아합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 가운데에는 시기와 분쟁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합니다. 자꾸 싸우고 부딪힙니다.

그리고 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우리는 사람이 말씀과 성령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중심으로 살면 하나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천국에서 또 봐야 합니다. 사람의 일생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천국에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 살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한 번 만나고 헤어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시기, 질투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따라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주님만 따라가야 합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천국을 믿지만,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 오래 잘 살기를 바라며 이 세상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은 타락한 인간의 욕심입니다. 육신은 아담의 타락한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다스리고 절제해야 합니다. 육신이 원하는 대로 가면 안 됩니다. 먹고 싶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됩니다.

안목의 정욕은 보는 것을 통해 잘못된 쾌락을 얻으려 하는 욕망입니다. 눈으로 보면서 쾌락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보는 것을 통해 우리 마음과 눈이 잘못되고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이생의 자랑은 이 세상의 소유에 대한 자랑입니다. 재산, 지위, 학벌 등으로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만하고 허영심이 가득하며 이 세상에서 굉장한 것처럼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것이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입니다.

이런 자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지 않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며 땅에 보물을 쌓고 삽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 주님 앞에 서면 부끄러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15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으로 집을 짓듯이 정성으로 하나님을 위해 값지게 투자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 짚으로 쉽게 집을 짓듯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겉으로는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 불 심판 때에 불타버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재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성전을 지을 때, 헌금 작정을 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도 않는 헌금은 작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원하는 사람만 기쁨으로 헌금하여 하나님을 감동시켜가며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적당히 하는 것, 믿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불타버릴 것으로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불 가운데서 겨우 목숨 하나 건지듯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징계가 반드시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13절에 보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육신 가운데 살아도 아무 문제도 없이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은 사생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 너무 슬프고 괴롭고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유익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우리도 참여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며 회개하고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는 다 회복시키시고 상처를 싸매주시고 위로하시고 몇 배로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징계를 받으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구하면, 성령 충만하고 능력 있는 신령한 성도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1장 2~9절에 보면,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간이나 예수님을 모시며 지내며 귀한 말씀을 들었고 표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는 다 도망가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숨어버렸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면 내 증인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 그들의 모습은 권능을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육신을 가진 인간이라 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해서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사로잡아주시면 마귀, 죄악, 정욕, 환난과 시험을 이깁니다. 그리고 어떤 핍박도 이깁니다.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해도 은혜 없이 믿음도 없이 살다가 주님 앞에 서면 정말 초라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없이 살더라도 복음을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서는 사람은 존귀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울은 세상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오직 주님만 위해 일생을 바치고 살다가 순교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순간, 사울이 바울이 되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축복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살아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며 지금 이 시간도 우리를 만지고 계십니다. 때로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만나시고 음성을 들으십시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목숨을 거는 믿음이 생깁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든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는 체험을 하면 능력을 받고 변하여 새 사람 되어 승리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보면,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체험하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숨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역사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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