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나의 하나님 > 요한복음20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요한복음20장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07 13:53 조회4,038회 댓글0건

본문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2019년 07월 14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20:24~29

 

요한복음 20장 19~20절에 보면,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여기 없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을 통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도마가 “할렐루야”하고 감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25절에 보면,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도마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마에게 큰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니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도마는 도대체 예수님을 누구로 알았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았을까요? 도마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요 완전하신 분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음에도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 15: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했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3)”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했습니다.

사울 왕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사울 왕을 버리셨습니다.

 

도마는 제자들의 말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도마는 제자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제자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제자들을 믿지 못할 사람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도마는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보고 만져보아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문제가 많습니다.

 

젊은이 중에는 돈을 많이 벌어 출세하기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기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누리기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해보지 않아도, 그 일의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을 보면 그 일의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쾌락이 무엇인가 알기 위해 별짓을 다 했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을 솔로몬은 다 누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했습니다.

 

전도서 2장 17절에 보면,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살아있는 것 자체를 한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을 너무 지겨워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다가 솔로몬은 60세에 죽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봐야 압니까. 지옥에 가봐야 믿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가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꼭 해봐야 결론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도 결론을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교회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정말 살아계신다면 한 번 제 앞에 나타나 주세요.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불이 번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눈을 떴습니다. 교회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이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 헌신예배를 드렸습니다. 강사로 오신 전도사님께서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기도하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삼각산기도원에 가면 기도 굴이 있는데, 전도사님께서는 기도 굴에 들어가셔서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한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어느 날 한밤 중에 굴 속에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눈을 떠서 보니 머리를 푼 귀신이 눈앞에 서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경험하신 전도사님께서는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난 후, 저도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뼈와 살이 없습니다.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니 사탄은 거짓 환상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지 마세요.

 

본문 요한복음 20장 26~27절에 보면,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 많은 도마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확인한 도마는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도마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이제야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도마와 비슷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 바울은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공로는 매우 큽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보다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 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행함으로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작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까?

 

첫째, 깨어 기도하지 않을 때입니다.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려면,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할 때,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견고해집니다.

그러나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도 흔들립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받습니다.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된 것이요 행복한 것임을 간증하며 살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 때, 신앙생활이 건강해집니다. 많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마귀의 편에 서서 마귀의 종 노릇, 죄의 종 노릇을 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 마귀가 우리 안에 침투하여 우리의 영혼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악한 마음, 음란한 마음,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불안합니다. 걱정이 많아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믿음이 어떻겠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살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립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은 산 믿음이 아니요,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생을 보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습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 얼마나 쉽습니까. 그러나 로마 시대에는 가이사만 하나님이라 생각했습니다. 가이사 외의 다른 신을 주라고 하는 사람은 다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로마서 11장 2~5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남은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많은 사람이 바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바알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남은 자’입니다.

아합 왕은 그 시대에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바알을 섬기게 했습니다. 그런데 바알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사람이 7천 명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입니다.

 

앞으로 무시무시한 환난과 핍박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우상 앞에 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이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심판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놓치지 않으십니다.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이 지체하니 천사가 그를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머뭇거렸다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롯만 살리신 것이 아니라, 롯이 피한 소알 성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돔 고모라는 불 심판을 받아 유황불에 멸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소중히 여기셔서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완전하게 책임지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부산을 멸하신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제로라도 끌어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부산은 우리 때문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한국은 우리 때문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기도하는 백성,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버림 받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세요. 수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로 인해 오히려 이전보다 더 좋게 되었습니다.

6ㆍ25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그때는 우리나라가 정말 망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일으켜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경제대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회자에게 문제가 많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순수한 사람이 많습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 성도들 중에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 기도하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바알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그들이 ‘남은 자’입니다. 남은 자가 지금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사람, 그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5~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마 21:28~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면, 회개하면 됩니다. 돌이키면 됩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 됩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돌이켜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범한 죄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무시해버리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로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면, 어떤 복을 받을까요?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면, 얼마나 기쁘고 좋을까요. 이것은 체험한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원수 노릇을 할 때, 우리는 진노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주 받아 마땅하고, 심판 받아 마땅한 인간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요 구원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항상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축복해야 합니다.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7~18절에 보면,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화목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9~21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를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갚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하기만 하면 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무조건 축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반감을 가지고 행동하면 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람들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축복해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지 않을 자유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께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용서 받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 받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속상해도 용서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해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면, 구하는 대로 응답 받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응답 받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체험하며 살면, 저절로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 때, 신앙이 건강해집니다. 많은 축복을 체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마세요. 무조건 축복하세요. 축복하며 기도해주세요. 원수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우리는 축복해주고 안아주어야 합니다.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전도사였을 때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놓고 기도해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도할 때마다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것을 경험할 때마다 제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평생 복이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거나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험악한 세상에서 사는 우리에게 복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 더 축복 받고 간증하며 살아가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접속자집계

오늘
1,022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3,938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