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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20장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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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07 13:38 조회3,4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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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여인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여인

2019년 06월 09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20:1~18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장사 지낸 후, 막달라 마리아는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1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직 어두운 새벽에 여자가 무덤에 간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운 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누가복음 8장 1~3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러 다니실 때, 여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도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도와준 여인 중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 들렸던 여자였습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 자였으니 대단히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 외에도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신 사람, 귀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평생 헌신했습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미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에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서 눈물 흘린 여인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 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사람 중에도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 기자들은 왜 그렇게 기록했을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큰 사람이 믿음이 큰 사람이요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큰 사람을 가장 크게 보십니다.

 

이새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다윗은 여덟째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며 고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에 다윗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보시고 모든 것을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고, 세상에 내놓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는 그 사람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믿음의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생깁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믿음이 커집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힘쓰고 노력해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 받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믿음은 보배와 같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좋아질수록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셨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내가 노력해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반드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 지 수십 년 되었지만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 교회에는 다녔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설교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었다 해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깨닫습니다.

첫째,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영안이 밝아져서 작은 죄까지도 깨닫습니다. 과거에는 죄로 여기지 않았던 것까지 죄로 여깁니다.

은혜 받은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죄가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했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철저히 회개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겸손해집니다. 잘 났다고 큰 소리치고 허세부리는 것은 은혜 받지 못한 증거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더러운 죄인이요, 부끄러운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이렇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감사의 눈물을 흘립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멸망해야 할 죄인을 사랑하셔서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랑을 생각하면,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걱정이 많고 문제가 많다 해도, 은혜를 받은 사람은 기쁘고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큰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굴이 달라집니다. 은혜를 받으면, 얼굴이 환해집니다.

 

셋째, 자신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이렇게 살겠다.’라고 단단히 결심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예배드리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충성스러운 일꾼이 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충성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을 행복해합니다.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을 힘들게 생각하여 마지못해 한다면 헛수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 자원해서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저는 은혜를 받고 나니 하나님만을 위해 살고 싶었습니다. 하루 24시간 교회에 있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일은 하기 싫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만 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이것을 압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에 누구보다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앞에 있던 돌은 옮겨져 있었고, 무덤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4절에 보면,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1~15절에 보면,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누구도 예수님의 시체를 손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큰 돌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총독의 인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 얼마나 오묘합니까.

 

본문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두 눈으로 분명하게 보고 체험할 때, 믿음은 확실해집니다. 말로만 들은 것을 믿으려고 하면, 믿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확신을 갖기 힘듭니다. 그러나 두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하면, 강하게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체험했다 해도 자신이 체험한 것이 성경 말씀대로 된 것인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어긋난 것이라면, 그것은 사탄이 속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일어난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무슨 일이든 옳고 그름을 사람에게 묻지 마세요. 성경에서 찾아보세요. 성경과 맞는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될 것을 믿고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10~17절에 보면,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첫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둘째, 너무 많이 울어 눈물이 앞을 가려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막달라 마리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도 동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신 기록이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창 3:9).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모세야 모세야(출 3:4)”라고 모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는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상 3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상이 없습니다. 뼈와 살이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신다 해도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어려움이 있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말씀을 전하면서 보니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변화되어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가 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확실하게 변합니다. 머리로만 알던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확실하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형상을 보여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실까요?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대로, 예수님의 뜻대로 살려고 얼마나 애쓰는가를 예수님께서는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보십니다.

 

저는 하나님께 뭔가를 이루어달라고 기도한 적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가르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 바로 알려주시면 좋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바로 알려주시지 않으실까요? 사람은 아주 간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여 응답 받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다지고 다져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신 후에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형용할 수 없이 기쁘고 좋습니다. 춤추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면, 저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대로 순종하면, 축복이 저를 따라옵니다. 여러분도 이런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형제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상속받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기뻐서 급하게 달려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증거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을 때에는 예수님도 천사도 거기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세마포와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만 그곳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갔을 때에는 천사도 있었고, 예수님도 거기에 계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보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보다 막달라 마리아의 믿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났습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과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의 모습에서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날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상관없습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 예수님의 재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 그저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예수님께 버림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의 모습에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믿음을 가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들은 말씀대로 결단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을 향한 막달라 마리아의 믿음과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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