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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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25 06:24 조회1,290회 댓글0건본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복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복
2018년 04월 01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20:1~18
마태복음 16장 21절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17장 22절 이하에도 기록되어있고, 마태복음 20장 18~19절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과 부활하시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미리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그대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히셔서 고난을 많이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품이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全知)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과거, 현재, 미래와 공간을 초월하셔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를 잊으시지 않으시거나 미래를 알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 아시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모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예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를 돌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으실 것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라고 거짓말할까봐 큰 돌로 예수님의 무덤을 막아버렸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무덤에 손대지 못하도록 총독의 인을 쳐서 무덤을 봉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보초를 세워 예수님의 무덤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놓았으니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다 해도 무덤에서 나오실 수 없을 것이고, 그대로 굶어죽으실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 문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4절에 보면,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굉장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대제사장들이 듣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자기들이 죽인 것입니다. 자기들이 엄청난 실수한 것을 깨닫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1~15절에 보면,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군인들에게 돈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까지 소문났습니다.
거짓말은 반드시 들통 나게 되어있습니다. 완벽하게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고 눈앞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반드시 들통 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악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주름잡고 모든 것을 주장하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은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려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엄청났지만, 교회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그리스도가 모두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계속해서 퍼져나갔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기신다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주님과 주님의 교회는 승리했습니다. 앞으로도 승리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난 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증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고 나면 고인(故人)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흘 동안 무덤에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풍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 운명하셔서 그 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무덤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그냥 기다렸습니다.
안식 후 첫 날, 즉 주일 새벽, 아직 어둑어둑하고 밝지 않았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8장 1~3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귀신 들렸다가 예수님으로 인해 귀신이 물러간 사람들, 몹쓸 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병이 나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 중 몇 명의 여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예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이들 중에 이름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람이 바로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예수님을 섬긴 사람 중 이름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왜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했을까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가장 열심히, 가장 적극적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일곱 귀신이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온전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은혜를 잠시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여생 동안 예수님을 섬기며 살았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믿음도 가장 좋아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합니다.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죄, 큰 죄를 사함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큰 병을 고침 받은 사람입니다. 의학적으로는 고치지 못할 병인데,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았다면, 이 사람은 누구보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가 많은 사람이 죄를 사함 받았다면, 이 사람은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서 5장 20절에 보면,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똑같이 죄 사함 받았다면, 죄가 많은 사람이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과거가 더럽고 부끄러운 사람, 험악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다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7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함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은 크게 사랑합니다.
이 사람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 성의 여인이나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음행 중에 잡힌 여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예수님의 발이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당시 노동자가 1년 동안 노동해야 벌 수 있는 가격이나 되는 비싼 향유였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은혜가 아주 커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컸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7장 5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흘린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요?
첫째, 진실한 회개의 눈물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둘째, 감사의 눈물입니다. 자신의 죄를 모두 사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사랑하는 눈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런 눈물이 없습니다. 이런 눈물이 메말라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최고로 높이는, 존경의 표시요, 예수님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표현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청했던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보고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 알았으리라(눅 7:39)’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바리새인과 같은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마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겉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왜 저렇게 살지’라고 생각하며 사람을 정죄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큰 죄인인 것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있다는 것을 교만한 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속으로도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 제가 사람을 판단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무섭게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 저는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 후에는 잘못된 사람을 보면, 판단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 사람을 축복하고, 그 사람을 안아주고,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받은 축복이 많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영안이 어두워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자는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가 불행했고 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다 도망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곁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5~56절에 보면,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첫 번째로 언급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예수님을 바라보며 눈물 흘린 여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막달라 마리아가 첫 번째로 언급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식에도 참석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45~47절에 보면,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4절에 보면,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1~2절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죽은 후에 사도 요한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읽은 후에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여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장례식을 기록할 때에 다른 여자들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았고,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만 기록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는 사도 요한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3~11절에 보면,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매우 사랑하여 집에 갈 마음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무덤을 계속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막달라 마리아는 울며 구부려 무덤 안에 들어갔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12~14절에 보면,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사람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와 계셨음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몰랐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15~17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에 보면,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셨습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필도야”라고 저를 부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는데, 예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신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크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크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충성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18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가장 먼저 전한, 첫 번째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주님께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께 대한 사랑과 정비례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작은 것까지 십일조를 계산하여 철저히 드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믿음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버린 사람은 믿음을 버린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구원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믿음의 분량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첫째, 예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말로, 마음으로만 사랑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뜻대로 삽니다.
사람들은 왜 예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을 위해 살려는 마음과 예수님을 위한 꿈과 소원, 목표를 가지고 삽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살다가 고난을 받으면,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가장 먼저 전한,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아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 보면,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요,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요,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것을 증거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활주일을 맞이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생각하며 많은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생각하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고, 늘 감사하고, 주님을 사랑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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