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밑에 있었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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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07 13:15 조회3,342회 댓글0건본문
십자가 밑에 있었던 여인들
십자가 밑에 있었던 여인들
2019년 04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9:25~27
요한복음 1장 11~12절에 보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을 영접할까요?
첫째, 예수님이 누구신가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교회에 다니고 봉사를 많이 해도,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에 가셨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3~14절에 보면,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지만,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열심히 따라다닌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메시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똑바로 아는 사람이라야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요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 뿐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진리가 되시고,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천국 복음은 다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즉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고 믿는 자라야 구원 받습니다.
로마서 2장 8절에 보면,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2~13절에 보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믿고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 받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노를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100% 불가능해보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25절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1장 1~2절에 보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는 구원 받습니다. 거듭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셋째,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요한 외의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도 원수들에게 붙잡혀 죽을까봐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기 위해 도망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죽을 것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저버리지 않고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24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해도,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욕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세상 사람들 안에 있는 악이 폭발해버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박해받을 것을 각오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0~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성도들을 위해 환난의 날을 감해주실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는 다녔지만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을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환난을 당하면 믿음이 약해져서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믿음은 정비례합니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믿음이 얼마나 있는가, 믿음이 얼마나 큰가,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믿음이 충만할 뿐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충만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정말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을 받기 위해 120명의 사람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불이 임한 것이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후, 그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담대해졌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니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을 전했을 때, 3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를 통해 예루살렘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은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교회들은 예루살렘교회처럼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따라가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복할까.’라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흥의 비결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 요한과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였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9장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요한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는 요한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21장 7절에 보면,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요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 요한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붙잡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요한은 십자가 밑에 있었습니다. 요한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인지 사랑이 많은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을 가리켜 ‘사랑의 사도’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을 보면, 요한은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가르치고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움을 잘 합니다. 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 보면,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끝까지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이 여러 명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밑에는 요한 외에 네 명의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이들 중에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에 대해서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 알 수 없습니다. 그 외의 세 사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밑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일평생 헌신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0~38절에 보면,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34~35절에 보면,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순간부터 마리아에게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해산한 후,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도망가야 했습니다.
헤롯 왕이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기 때문입니다.
주의 사자는 이것을 알고 요셉에게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마 2:13)”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바리새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마 12:24). 그런 말을 듣는 예수님의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마가복음 3장 31~35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 없는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마리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심정으로 십자가 밑에 서있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이모가 십자가 밑에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40절에 보면,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살로메가 바로 예수님의 이모입니다. 살로메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여동생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0절에 보면,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 즉 야고보의 어머니가 바로 살로메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 중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님과 이종사촌 사이였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0~23절에 보면,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도하다가 거절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절 당하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우리가 잘못 구하기 때문에 거절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올바르게 구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거절하십니다.
응답이 늦어질 때가 있습니다. 응답이 늦어져도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장 잘 되게 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늦어져도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살로메는 예수님께 부탁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살로메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후에 살로메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절에 보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요한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읽고 설명이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깊이 있게 정확하게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요한은 요한서신과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살로메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지 못했지만, 훌륭한 사도로 생을 보냈습니다.
셋째, 막달라 마리아가 십자가 밑에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에 보면,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 귀신이 나갔습니다.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3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주셔서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왜 일곱 귀신 들렸는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매우 불행한 여인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더러운 여인, 죄 많은 여인으로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가 아무리 많아도, 예수님께 나아오면, 예수님께서는 다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소문난 죄인이었지만, 죄를 사함 받았고 구원 받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셨을 때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제일 먼저 갔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요한을 가장 먼저 만나신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5~56절에 보면,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가장 먼저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람을 보는 눈과 예수님께서 사람을 보는 눈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볼 때에 사람의 외모를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보실 때에 사람의 중심,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큰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사람을 가장 귀하게 보십니다. 가장 큰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이새에게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다윗의 믿음이 가장 좋았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일곱 명을 제쳐두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23절에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죄 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그렇게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보다 믿음이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몇 번째로 사랑합니까. 남편이나 아내를 예수님보다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자식을 예수님보다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가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면, 가족이 우상이 됩니다. 가족을 사랑하되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이 함께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여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지나가는 말씀으로 받지 않게 하시고,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여 예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 모든 복을 받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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