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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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19 10:57 조회3,409회 댓글0건본문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2019년 03월 10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8:12~18, 25~27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평소에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보며 불안해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8장 3절에 보면,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12절에 보면,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들은 마치 강도를 붙잡아가듯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여 끌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의 공생애를 보내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아주시는 등 좋은 일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쁜 일을 하셨다거나 죄를 범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은 사람들을 보내어 마치 강도를 잡아가듯 예수님을 잡아가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재판한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 18:38)”라고 말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 19:12)”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4~25절에 보면,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말한 것이 자신들과 후손에게 큰 비극과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에서만 고통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영원히 고통 당할 것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2천 년 동안 고통과 비극 속에 살았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말한 것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말한 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13~14절에 보면,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죽는 것이 백성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가야바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한 대제사장 가야바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려는 마음은 더욱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으니 편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거짓 증인을 세워 마치 예수님이 굉장한 죄를 지은 것처럼 만들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죗값은 매우 큽니다.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까요?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있는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서른여덟 해 된 병자는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을 트집 잡아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9~15절에 보면,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틀렸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양이나 소나 나귀가 구덩이에 빠졌다면 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 됩니까. 병들어 고생하는 사람에게서 병을 고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르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 움직일 수 있습니까.
첫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7장 18절에 보면,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존경받고 예수님께 인기가 몰리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 18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목수의 아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반응했을까요?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몰랐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이들이 알았더라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들이 알았더라면,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9~11절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지만,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뜻으로 난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5~17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알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행위가 특별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천국에서 영원히 살 사람으로 구별한 사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께 이끌어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것은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 시대의 최고의 지성인에 속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소 예수님에 대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잡아 죽이는 데 앞장섰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을 많이 알았을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경건하게 사는 사람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 후,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이 누구신가 아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평생 교회에 다녔지만, 왜 주님을 사랑할 줄 모릅니까?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붙 같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어 헌신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존경 받는 랍비요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어른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서를 남기셨는데, 장례식이 끝난 후에 유서를 읽으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장례식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참석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 유서를 읽었습니다. 유서에는 그분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요,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기록되어있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이란을 비롯한 회교국가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경험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인(sign)입니다.
예전에 공산국가였던 나라에서 수많은 헌신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교회가 부흥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성도들은 은혜를 사모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에는 고등부 헌신예배 시간에 제가 설교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개척 교회를 하시는 집사님께서 제게 개척 교회에 와서 설교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성경 중에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말씀으로 무장되어있고, 성령으로 충만하니 하나님께서 저를 쓰셨습니다.
저는 대학생이었을 때에는 전도사처럼 생활했습니다. 저는 “24시간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만 하고 싶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15~18절, 25~27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공관복음과는 다르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54~62절에 보면,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여리고 사람이 온다는 말만 들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했기 때문에 싸우지도 못하고 패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명의 정탐꾼이 말한 것을 듣고 두려워하고 떨며 모세와 아론에게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민 14:2~3)”라고 말했습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말한 대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27~32절에 보면,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두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기 전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9~75절에 보면,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뿐 아니라 저주하며 맹세했습니다. 베드로는 살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일본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였던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 액자를 바닥에 놓고 그 그림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살려주고, 그 그림을 밟지 못하는 사람은 죽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액자의 유리가 깨어지고, 그림에 발자국이 남았습니다.
순교자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순교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만 순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요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환난과 재난, 미세먼지 등은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 받는 저주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은 사람에게 임하는 저주가 우리나라에 임하고 있습니다.
날씨가 이상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마지막 날이 가까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옛날 소돔 고모라의 사람들보다 더 악해졌고 음란해졌습니다. 이것을 통해 이 땅에 죄악이 가득 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전서 5장 7~10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교회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와 싸워 이겨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귀에게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항상 이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탄과 싸워 이기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공격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마귀는 로마 황제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인 것처럼 공격합니다.
구소련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시베리아로 유배 보내어 거기서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곳에는 목회자가 없으니 주일에는 은혜 받은 사람이 나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언제나 여러 명 있었습니다. 비밀경찰이 그 무리 속에 앉아있다가 설교자를 데리고 가서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죽을 것을 각오하고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자손들 중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미국에서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지금 북한 땅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9~10절에 보면,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온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가 공격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버립니다. 하나님을 떠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배신했다가도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숨어서라도 믿음을 지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성령이 그 사람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둘째, 마귀는 소돔 고모라처럼 타락하게 하여 멸망하게 합니다.
지금 마귀는 이 방법으로 사람들을 타락하게 합니다. 그래서 드라마의 내용이 악하고 음란합니다. 아예 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그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타락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탄의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다 보면,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4~5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이긴다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은 성령 충만할 때에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 수 있도록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에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저는 중학생이었을 때에 세 가지를 결심하고 결심한 대로 지켰습니다. 첫째, 예배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둘째,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셋째, 매일 성경을 1장 이상 읽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결심하고 결심한 대로 지켰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매일 성경을 수십 장씩 읽었습니다. 이렇게 결심한 것을 지키다 보니 마귀가 아무리 공격해도 저는 오뚝이처럼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예수님을 저주했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후에는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 충만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 해도, 베드로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받고 회복될 것입니다.
믿음이 약하여 쓰러질 때도 있고,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기도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죄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잘못했을 때에는 베드로처럼 염치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부르짖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겨 이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마귀를 이기게 하시고,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성령 충만하면 될 줄 믿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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