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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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19 10:47 조회3,448회 댓글0건본문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예수님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예수님
2018년 03월 03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8:1~11
요한복음은 4복음서 중에 가장 나중에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사도 요한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다 읽고 난 후 설명이 부족한 부분, 설명이 빠진 부분을 살펴 보충하여 기록한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에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에 말씀하신 것을 요한복음 13~17장에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이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1~11절에 보면,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본받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을 본받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 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금식기도는 가장 힘든 기도입니다. 금식기도는 목숨 걸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실 때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기도로 시작해야 하고,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렇게까지 기도하실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기도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공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며 언제나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크고 작은 일을 해결할 때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으려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모범적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아시면서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들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요 18:4)”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요 18: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그들은 땅이 엎드러졌습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놀랐을까요. 위기를 만나면 빨리 도망가거나 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망가지도 않으시고, 숨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당하게 사람들을 맞이하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등과 횃불, 무기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까요? 예수님께서 숨으셨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망가셨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가 예수님을 잡아 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님과 제자들이 덤빈다면, 무기로 공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될 것을 상상하고 무기를 가지고 무장하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라 물러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담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부터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다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이기고 지는 것은 기도로 결정됩니다. 기도에 성공하면, 일에도 성공합니다. 그러나 기도에 실패하면, 일에도 실패합니다. 그만큼 기도가 중요합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깨닫는 것이 기도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문제만 생각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기만 바랍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영안이 밝아집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기도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고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로 결정했다면 기도에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우리가 가장 잘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축복인가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생활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복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 당할 것을 생각하시며 기도하실 때에 괴로워하셨습니다. 고난이 크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들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시고 죽으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 느끼는 고통을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 전에도 그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아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아셨습니다.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몇 배 더 크게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괴로워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문제가 있을 때에 문제를 안은 채 세월을 보내지 마세요.
꼭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작정하고 기도하세요. 죽을 것을 각오하고 기도하세요. 금식하며 기도하세요. 결사적으로 기도하세요. 간절하게 기도하세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도해보세요.
저는 여러 번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저는 이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시면, 저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기쁘고 좋았습니다.
저는 간절히 기도했을 때에 성령의 불이 제게 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간절히 결사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제게 축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평생에 복이 됩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응답 받는 것이 기도에 성공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대로 응답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큰 축복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고 큰 축복을 준비해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수영로터리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 1만 명의 성도가 들어가는 성전을 지으려고 설계도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교통평가도 받았습니다. 이제 일을 진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 성전을 지을 때까지 어디서 예배드리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산에 기도원을 짓고 성전을 짓는 동안 거기서 예배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세월만 흘렀습니다. 이 일을 놓고 많은 분들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성전이 있는 이 땅 주인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땅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싼 가격에 이 땅을 매입했습니다.
만약 산에 기도원을 짓기 시작했더라면, 이 땅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원 건축을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땅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장애물을 만난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로 좋은 땅을 우리 교회를 위해 예비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장애물로 인해 일이 진행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수영로터리에 1만 명이 들어가는 예배당을 지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곳이 완전히 막혀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넓은 곳에 오게 하셨습니다. 교회 앞에도 큰 길이 있고, 교회 뒤에도 큰 길이 있습니다. 버스도 다니고, 지하철도 다닙니다. 이런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해놓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은 하나도 진행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잘 되지 않고 질질 끌어 속상해도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 더 큰 축복을 예비해놓으셨다는 것을 믿으세요. 믿음으로 선포하세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담대하게 다가가셔서 “내가 그니라(요 18: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무슨 일이든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기도생활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자리에 앉자마자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후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가서도 자리에 앉자마자 기도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기도하고 나니 도시락이 없어졌습니다. 도시락이 없어졌지만, 저는 도시락을 찾지 않았습니다. 장난쳐도 제가 반응하지 않으니 더 이상 장난치지 않았습니다.
눈깔사탕을 먹을 때에도 기도하고 먹었습니다. 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기도하고 마셨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생활화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하세요.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때에 기도하고 시작하세요. 그리고 저녁에는 감사하는 기도를 하세요.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봉사를 마친 후에는 그냥 돌아가지 마시고, 모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봉사하면서 좋았던 것과 고쳐야 할 것을 서로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시기 바랍니다.
어떤 때에는 기도해서 무엇인가 결정하려고 할 때에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결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조급하게 결정해버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 후회할 일이 생깁니다. 이런 때에는 마음이 평안해질 때까지 좀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면, 그때 결정해야 합니다. 욕심에 사로잡히면, 별로 기도하지 않고 서둘러서 결정합니다. 욕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반드시 후회합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할 때에는 욕심을 앞세우거나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더라도 자기 욕심대로 이루어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보면,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욕심에 사로잡혀서 서두르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원망 불평부터 합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섰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왔습니다. 그렇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갔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소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말한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잘 될 것이라고 말하세요. 우리가 말하는 것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한 대로 잘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어려움이 더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하세요. 우리가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가 말한 대로 되게 해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맹세하셨습니다. 우리의 말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100% 죽을 수밖에 없어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 산에 가셔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처럼 때와 장소를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부터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학교에 갈 때에 교회에 가서 기도한 후에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회에 가서 기도한 후에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저녁 먹고 난 후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자칫하면 형식적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바쁘고 힘들어도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절대 헛수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집회를 인도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 교회는 특별한 사람들만 뽑아 모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 교회를 보며 ‘어떻게 교회가 이렇게 될 수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관생도를 모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무슨 비밀이 있는 듯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둘째 날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숙소에서 일찌감치 교회로 갔습니다. 목사님이 강단 위에서 벽을 보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밤늦게 집회를 마치고 헤어졌는데 언제 나왔는지 목사님이 강단 위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 사모는 가운데 통로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새벽예배가 끝난 후에 제가 목사님께 “피곤하실 텐데 언제 나오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새벽예배 2시간 전에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부흥집회 기간 중에도 평소 습관대로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 교회의 비밀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성도를 그 교회로 보내주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백 명의 몫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 그런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1982년에 안식년으로 미국에 갔습니다. 공부하기 전에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과제를 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사막이 된 것 같았습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데, 영어로 강의를 들어야 하고, 영어로 과제를 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상태로는 목회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학위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포기하더라도 기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새벽예배 드리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있는 장난감집에 들어가서 거기서 기도했습니다. 날마다 거기서 기도했습니다.
일과 중 기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날마다 몇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후에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한 후에 과제를 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날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하나님께서는 사막 같았던 제 마음을 완전히 오아시스처럼 바꿔주셨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셨습니다. 기쁘고 좋았습니다. 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후에 성경을 읽으면 설교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어느 말씀으로든 설교할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한 후에 과제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부흥회를 인도해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기도하는 목사, 은혜 받은 목사를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미국 전 지역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목사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때와 장소를 정해놓고 기도해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나와 새벽기도 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합니다. 평소에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던 사람이 어쩌다 나오면 하루 종일 피곤합니다.
그러나 날마다 새벽에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일어납니다.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새벽예배에 나와서 기도하면 기쁘고 좋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집에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장소는 성전이 가장 좋습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세상의 건물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없을 때에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잡념이 생겼습니다. ‘성전을 짓느라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예배드릴 때에만 성전을 사용하다니, 성전을 지을 때에 든 돈을 은행에 저축했다면 이자가 많을 텐데 아깝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전을 사용하는 시간보다 성전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더 많으니 얼마나 아깝습니까. 기도하다가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깝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처럼 기도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깝지 않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에게 붙잡히지 않으실 수 있었고, 원수들을 피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만 대속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시려고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3~35절에 보면,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8~9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절박한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믿음이 약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다가 순교할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10~11절에 보면,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는 혈기가 대단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해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쓸데없이 피를 흘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고의 귀를 낫게 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1~54절에 보면,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 무슨 일이든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자가 되게 하여주옵시고, 예수님처럼 성공적으로 기도하게 하여주셔서 어떤 일을 당하든지 성공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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