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 받으시는 예수님 > 요한복음18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요한복음18장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19 11:02 조회3,489회 댓글0건

본문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

2019년 03월 17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8:19~24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도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려면 그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셔야 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시고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의 열매는 먹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하와가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하와는 남편에게 그것을 갖다 주어 그도 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인간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늙고 병들고 환난과 재난으로 인해 많이 고생하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받은 저주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불행하다고 해도, 영원히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은 영원히 고통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한 채 날마다 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해서 죄 가운데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없고, 내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천국과 지옥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중에는 살아있을 때에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근심이 있고 고통이 있을 때에는 ‘내가 왜 이렇게 고통당해야 하나.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여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죽으면 고생도 끝나고 고난도 끝나고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부자는 날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상 향락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지옥 불에 들어갔습니다. 부자는 뜨거운 불 속에서 목이 타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눅 16:24)”라고 부탁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고 했습니다. 그리고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습니다. 이렇게 거지 나사로는 이 땅에서 불쌍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나사로는 죽은 후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대해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에서 의식을 잃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도 의식이 있습니다. 뜨거움과 목마름의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지옥 불은 잠시도 꺼지지 않습니다. 끝없이 타오르는 불 속에서 고통 당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든, 지옥에 가서 불 속에서 고통 당하든 영원한 세계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예수님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하시려고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심문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에게 심문 받지 않으시고,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에게 심문 받으셨습니다.

 

안나스는 A.D.5~15년에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었습니다. 감당할 수 있다면, 평생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일 뿐 아니라, 종교계에서는 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치보다 종교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 제국은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어려웠습니다.

로마 정부에서는 안나스에게 대제사장으로서 정치와 종교 등 모든 것을 관할하게 했습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대제사장직을 종신직에서 1년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다음 대제사장으로 임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안나스는 로마제국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아들과 사위를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그들을 조종했습니다.

그러니까 대제사장이 바뀌어도 실권은 안나스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안나스의 아들과 사위는 허수아비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야바에게 심문을 받지 않으시고, 안나스에게 심문 받으셨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심문할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나스의 질문에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19~21절에 보면,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은밀하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았습니다. 아마 안나스도 예수님의 말씀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나스에게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안나스는 다 알면서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 알았습니다. 알면서 예수님께 질문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안나스에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안나스는 나쁜 의도로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어부가 많았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세리도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리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혀가시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갔지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능력을 행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붙잡혀가시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 외로이 심문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완전히 실패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안나스는 이것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예수님께 제자들과 예수님의 교훈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죄목을 찾기 위해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안나스의 생각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나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나스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8장 22~23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심문 받으시고 하찮은 인간에게 맞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의 죗값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에 권능을 행하지 않으시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심문 받으시고 고난 당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5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왕 노릇하며 마음껏 악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지금도 세상을 보면, 악한 자가 잘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잠시 뿐입니다. 시편 73편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73편 13~19절에 보면,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벨론이 얼마나 강했습니까. 바벨론 왕의 한 마디에 한 민족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70년 만에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게 권세를 오랫동안 주지 않으셨습니다. 바벨론은 겨우 70년 만에 망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바벨론이 세상 끝날까지 다스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강한 나라를 누가 감히 손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벨론은 한순간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것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악한 인간이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손대시면 전멸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편 37편 7~11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37편 34절에 보면,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심문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A.D.70년에 로마 군대의 침략을 받아 전멸했습니다. 그들은 그것도 모르고 나쁜 짓을 행했습니다.

 

안나스는 죄가 많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3~22절에 보면,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나스는 성전을 시장터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건을 비싸게 팔게 해서 돈을 취했습니다. 안나스는 돈 밖에 몰랐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멀리서 소와 양을 끌고 오면 제물로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은가를 검사한다고 해서 그것을 제물로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사서 제사 드리게 했습니다.

그러니 성전 안에 비둘기 파는 사람, 소 파는 사람, 양 파는 사람도 있고, 돈 바꿔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 장사꾼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전이 시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3~14절에 보면,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20장 46~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이 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들은 과부를 도와주는 척하며 오히려 과부의 재산을 가로챘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많은 죄를 범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3~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5~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셨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더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회개했다면, 모든 죄를 사함 받았을 것이요 구원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회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죄를 얼마나 많이 범했습니까. 우리가 범한 죄가 아무리 악하고 많다 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회개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가지고 집을 떠났다가 재산을 탕진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죄를 얼마나 많이 범했겠습니까.

굶어 죽게 되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버지는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했습니다. 그리고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했으나 아버지는 아예 아들의 말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회개할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죄가 많아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안아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만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만 회개하려는 마음이 생겨서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사람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계속 부흥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저는 목회하며 사람들을 볼 때에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가, 회개의 눈물이 있는 사람인가를 봅니다.

회개의 눈물이 있는 사람은 변화됩니다. 예전에는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해도, 회개의 눈물이 있는 사람은 변화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회개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사람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수십 년 교회 다녔지만, 한 번도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끝까지 악하고 못된 짓을 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자살해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사도 중의 사도로 능력 있게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베드로가 받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3장 22~23절에 보면,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임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우리아 장군을 전쟁터에 보내 죽게 했습니다. 그는 악한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계속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5장 1~5절에 보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도 죄를 범했습니다.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죽게 한 것 외에는 다윗은 평생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4장 8절에 보면,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만 행했습니다. 죄를 범한 적도 있었지만, 그 일을 제외하고는 다윗은 평생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다윗이 축복 받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다윗이 범죄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윗을 책망한 것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7~15절에 보면,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듣고 겸손하게 무릎 꿇고 회개했습니다. 이를 통해 다윗은 죄 사함을 받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시편 32편 3~5절에 보면,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이 회개하기 전에 심정이 어떠했는가 알 수 있습니다. 회개하기 전 다윗의 마음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허물을 하나님께 자복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백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 있으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죄를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만 보시고도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을 위로해드리려면, 우리는 죄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제멋대로 살지 않고, 철저히 회개함으로 죄 사함 받아 돌아온 탕자가 받은 복을 우리도 받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접속자집계

오늘
1,031
어제
1,471
최대
7,648
전체
1,343,947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