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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7장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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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19 10:21 조회3,4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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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

2019년 02월 17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7:9~19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몇 시간 전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 내용이 본문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기도 내용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만큼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을 때에 건성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말씀 속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소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깨달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닫습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실 때에 먼저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9~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사람, 즉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하도록 예수님께 맡기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사람들을 가리켜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첫째, 그들은 아버지의 소유요, 예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아버지께 속한 자요, 예수님께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어른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신의 자녀에게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아이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고, 자신의 자녀가 어디에 있는가 찾아 자신의 아이만 주목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만 주목할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길을 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습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사 43:4~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 보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잠시도 잊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다가 망하고 고생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죄로 인해 징계를 받으면, 마치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놓으시고 하나님의 자녀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소속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신명기 33장 29절에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속을 많이 썩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돕는 방패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기뻐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창세 전에 택해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것이요,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10)”라고 하시며 하나님께 감사기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큰소리쳤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했지만, 마지막에는 모두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보면,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보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다 보면, 아이에게 허물이 많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허물을 나팔 불고 다니는 부모가 있습니까. 부모는 자녀의 허물을 가립니다. 부모는 자녀의 좋은 점만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에게 허물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허물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좋은 점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에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편한 집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산과 들에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습니다.

제자들은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한 자리에 앉아 3일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사모하여 밥 먹는 것도 잊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말씀을 들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따로 먹었겠습니까. 예수님과 제자들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4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여자와 어린이 외에 4천 명이라고 했으니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고생하셨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제자들은 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제자들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믿는 것은 귀합니다. 예수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똑바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보십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는 들은 것만 압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1시간 후에 일어날 일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해 계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과거도 아시고, 현재도 아시고, 미래까지 다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앞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에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환난을 당해도 그것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길 것을 예수님께서는 미리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과거와 현재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미래를 내다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두고 가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할 것을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환난과 박해를 당하면,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낙심하기 쉽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쓰러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전해달라고, 제자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첫째, 이름은 소유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물건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은 그 물건은 그 사람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한다는 것은 제자들이 아버지의 것으로 살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이름은 소속을 의미합니다.

외국을 여행할 때에 출입국신고서를 씁니다. 국적을 기록하는 란에 우리는 ‘한국’이라고 씁니다. 이것은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한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마귀에게 속한 자도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살 수 있도록 보전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셋째, 이름은 명예와 권세를 의미합니다.

훌륭한 사람은 그 사람의 이름도 훌륭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람이 악하고 추하면, 그 사람의 이름도 더럽게 느껴집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 아브라함의 이름은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임을 압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이름 중에 가장 존귀한 이름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마귀의 자녀, 마귀에게 속한 자는 죄만 짓다가 지옥에 갑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실 것을 생각하시며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이 하나 되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 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 된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 되는 비결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에 보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복종하시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려면, 자기주장, 자기생각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모두 그렇게 하면 저절로 하나 될 것입니다.

자기생각을 고집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겠습니까. 자기생각은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저절로 하나 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일어나 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가지면, 교회는 저절로 하나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려면,

첫째, 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평소 우리가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잠언 12장 18절에 보면,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8장 21절에 보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말 한 마디 실수한 것으로 인해 자신도 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말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말 실수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우리가 쓸데없이 말한 것으로 인해 심판 날에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잠언 13장 3절에 보면,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나라는 큰 일 났습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 합니다. 욕을 잘 합니다. 사탄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술에 들어앉아서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 행복한 나라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해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장 5~10절에 보면,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혀는 나쁜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말하다 보면, 더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입을 벌리는 자는 결국 망합니다. 말로 망합니다.

 

사람은 입으로 많은 죄를 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3~4)”,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엡 5:6~7)”고 말했습니다.

 

말로 하나 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면 서로 화목합니다. 그런데 말로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나누어집니다. 교회가 시끄러워집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보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의 실수를 줄이려면, 말을 적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지만, 우리 교회는 은혜롭고 평안합니다. 성도들이 입을 잘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어도 입을 다물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부부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따지는 것은 화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부부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부부가 서로 존경하게 됩니다.

 

둘째,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한솥밥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라도 마음이 하나 되지 않으면 남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 되려면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셋째, 같은 뜻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저절로 하나가 됩니다. 자기 뜻을 내세우면 안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해서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부흥되지 못하고 오히려 골치 아픈 일이 많습니다.

성도들 속에 사탄이 들어있어서 자꾸 말하게 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은혜 받지 못하고, 남을 욕합니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돌아갑니다. 마귀가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걱정거리가 눈에 보이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깁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모든 교회가 하나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믿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걱정이 많아집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아 믿음을 잃어버리면 세상을 바라보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강건하면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지도자를 세우시고 제거하십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걱정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생각해보세요.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세요. 그리고 이 말씀을 선포하세요. 그러면 의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걱정이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붙잡히셔서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서 못할 짓을 한 것을 생각하며 평생 부담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가룟 유다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을 위해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멸망의 자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막 1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 한 사람 외에는 모두 보전하고 지키셨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을 잃어버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쁨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기쁨을 잃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않으면 기쁨을 잃습니다.

전도서 2장 26절에 보면,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0~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기쁨을 잃습니다.

요한일서 1장 3~4절에 보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사람과의 교제도 끊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해야 합니다. 성도들과도 좋은 교제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첫째,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늘 기억하고 살아갈 때에 우리 안에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원하셨는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을 깨달은 우리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우리 안에 예수님의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 때에, 환난의 때에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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