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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7장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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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19 10:08 조회3,4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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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019년 01월 13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7:1~5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신앙생활의 목표가 있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신앙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죄와 허물이 있었습니다. 이삭과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 보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가 없는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죗값으로 죽어 마땅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을 받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계신 곳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막 14:36)”라고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눅 22:44).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어있지 않은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것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기억나게 하셔서 요한복음에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본받을 것이 많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기도로 시작하셨고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마칠 때가 되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결사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연합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크고 넓은 강당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에 사람들이 모여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후에 그들은 강당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정리를 마친 후에는 또 다시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저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의 성도들도 그렇게 합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일과 다릅니다. 예배, 봉사, 전도 등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찬양대원은 기도한 후에 연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휘자는 곡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줘서 찬양대원들이 연습할 때부터 은혜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습을 마친 후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일을 시작할 때에는 “아버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자원해서 섬기려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일을 마칠 때에는 “아버지, 잘 마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더욱 축복해주셔서 주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충성할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는 잘 자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밤에 자기 전에는 하루 종일 함께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밤새 단잠 자고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부터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 교회에 가서 감사 기도했습니다. 저녁 먹고 난 후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늘 그렇게 하다 보면 형식적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한 번은 기도하려고 교회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은혜 받을 기회가 많겠습니까.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은혜 받을 기회가 많겠습니까.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은혜 받을 기회가 많습니다.

저는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해서 받은 은혜가 많습니다. 돌이켜보면 응답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제가 기도한 대로 다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받은 은혜와 축복이 매우 많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묵도로 예배가 시작되어 축도로 예배가 끝납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납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눈을 감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다 보면 기도하다가 잠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고 기도하시고, 두 손을 들고 기도하세요. 예수님처럼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세요.

기도할 때에 눈을 감고 기도해야 한다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이지, 눈을 감아야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길을 갈 때에도, 운전할 때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병상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누워서 기도한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라고 고백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사람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사명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생은 무엇입니까? 구원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밤낮 현실만 보고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막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광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될 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실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민 20: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백성들로 인해 화가 난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고 말하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어야 하는데, 모세가 그것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죄를 많이 범한 사람만 죄인인 것이 아니라, 죄를 한 번 범한 사람도 죄인입니다. 죄인은 죗값으로 죽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 앞에서는 의인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의롭고 율법대로 살아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예수님께 주신 목적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 가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지옥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펄쩍 뛰며 춤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통곡할 것입니다. 가슴을 치고 이를 갈며 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를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압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도 신실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신실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줄 믿고,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 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확신이 없습니다. 의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다가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동네에 있는 우물 곁에 앉아계실 때,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가 마주쳤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유대인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 4:9)”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라고 말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외쳤습니다.

 

요한복음 4장 39~42절에 보면,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친히 듣고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주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구원 받았습니다.

이들은 이틀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셨을 것입니다. 이들은 체험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결혼하지 아니한 여자에 대해 설명할 때에 ‘남자를 알지 못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처녀입니다. 남자를 아는 사람은 처녀가 아닙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부부가 결혼하여 함께 살면서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아는 것은 상상해서 아는 것입니다. 처녀는 남자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남자와 함께 살아봐야 남자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여자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여자와 함께 살아봐야 여자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체험을 통해 아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압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예수님을 참으로 알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습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참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사람들에게 알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이 있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고 부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 사랑과 부활 신앙을 가진 자라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7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뜻을 행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평생 교회에 다녔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하며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삽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해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는 온갖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말하며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했습니다.

 

회개하는가 회개하지 않는가를 보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회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 문이 열립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디.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멸망합니다.

빨리 회개할수록 좋습니다. 회개를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회개를 미루면 죄악 가운데 깊이 빠집니다. 그래서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빨리 해야 합니다. 즉각 해야 합니다.

 

죄를 범했다고 해서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를 속여서 자포자기하게 합니다. 죄를 범했다고 해도 자포자기하지 마세요.

어떤 죄를 범했다 해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주십니다. 기쁨으로 용서해주십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주십니다. 마치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스겔 18장 22절에 보면,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 보면,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7절에 보면,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지만,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아버지, 죄악의 속성이 제게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죄악의 근성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넘어집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죄를 범하는 것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설교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사함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한 번 용서하신 것은 다시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했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죄를 따지거나 들먹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시니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다 잊어야 합니다.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다 털어버리세요. “나는 새사람이다.”라고 선포하세요. 그래야 전진할 수 있습니다. 새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우리를 참소하고 공격합니다. 사탄에게 속지 마세요. 우리는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마귀가 공격하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며 마귀를 대적하세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세요.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과거를 기억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부부사이에도 과거를 묻지 마세요. 과거를 들먹이지 마세요. 지금이 중요합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중요합니다. 회개했다면 자유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과거에 잘못한 것을 알고 그것으로 인해 그 사람을 판단하고 저주하면 마귀가 좋아합니다. 그것은 죄악입니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축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영화를 누리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요한복음 17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11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셨던 것처럼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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