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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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04 22:57 조회5,681회 댓글0건본문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2005년 08월 26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15:9~14
로마서 13장 8~10절에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빚을 지고 산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빚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목사가 되면 빚진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신명기 28장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축복 받은 민족은 다른 나라에 꾸어 줄 수 있는 정도가 됩니다.
신명기 28장 44절에 보면,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 28:44)
저주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꾸어주지 못하고 꾸어오기만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빚지는 사람이 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빚진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모든 죄를 속량 받았습니다. 우리는 저주를 속량 받은 사람이므로 저주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저주 받은 사람처럼 빚을 진 사람이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모든 저주를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많은 사람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율법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량이 많습니다. 성경 말씀을 다 기억하고, 성경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보면,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잡한 성경을 외우려고 하지 말고, 사랑만 실천하면 됩니다.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모든 율법대로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악을 행하지 않고, 죄를 범하지 않고, 남을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사는 것은 모든 율법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2)
이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지킴으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9~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이것은 태양 빛이 온 세상을 비추는데, 굴 속에서 그 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주려고 해도 받아 주지 않으면 자기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 안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며 살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요한복음 15장 9~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쁨으로 충만하게 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키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몸에는 성령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면,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만복의 근원이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기쁨으로 충만하면, 내 마음이 압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나의 기쁨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반드시 사랑을 받습니다. 사랑 받기를 원한다면,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모릅니다. 누구를 보든지 사랑스럽습니다. 사랑할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을 베풉니다. 사랑이라는 생각에 살면, 누구를 보아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심은 대로 거둡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사랑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을 심지 않은 사람입니다. 내가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대접했고 베풀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가장 완전한 행복은 어디를 가든 사랑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갖추어지면 완전한 행복이 됩니다.
크리스천의 증거는 기쁨입니다. 어려운데도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은 구원 받은 성도의 증표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많습니다. 구원 소망, 죄 사함 받은 기쁨, 의롭다함을 받은 기쁨,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 건강한 신앙의 증거도 있습니다. 기쁨으로 우리의 신앙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도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한 이유는 그것이 건강한 신앙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도뿐만 아니라 교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제게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자신의 몸도 건강하고 사역도 잘되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지 않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 길어지거나 잠시라도 와서는 안 됩니다.
기쁨을 읽어버리는 이유는
첫째, 은혜가 식으면,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처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행복함은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항상 거울을 보며 자신의 신앙의 정도를 점검해보십시오.
은혜 충만과 기쁨 충만은 정비례합니다. 은혜 충만하면 이 세상의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해집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세상에 취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은혜 가운데 사는 것,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사는 것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은 내세도 없고 구원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낙을 찾지 못한 사람은 세상의 낙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지옥에 갑니다.
성령의 은혜는 한번 받았다고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계속 성령 충만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도행전 3장 이후에 보면 초기의 성령 충만한 교회는 사랑이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고 끝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6장에 보면 남을 원망하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마음의 은혜로움이 식어버린 것입니다. 남의 허물이 보이고 그것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미워하려 한다면,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자기 마음은 지옥이 됩니다. 기쁨이 다 사라집니다. 마음이 완악해지고 병듭니다.
미운 사람이 보이면 미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음으로 마음을 관리합니다.
저는 미운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을 위해 특별히 기도합니다. 제가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 사람이 저를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같이 합니다.
내 눈에 거슬리면 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천국이 됩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둘째, 빛 가운데 있지 않으면.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에베소서 5장 8~12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빛 된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으며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고, 불의한 짓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행하며 빛 가운데 사는 성도들은 착하고 의롭고 진실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서 빛의 열매를 맺으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주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빛 가운데 살지 않기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셋째, 회개하지 않으면,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살다 보면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빨리 회개하면 죄 사함과 성령을 선물 받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잘못을 깨닫는 순간, 설교를 듣는 순간, 회개하면 죄 사함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특히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지 않은 것을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만큼 기쁨이 충만하고, 사랑이 식어지면 기쁨도 식어집니다.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점검해보십시오. 사랑의 정도는 얼굴만 확인하여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지만, 사랑의 행위가 없으면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일서 3장 16~18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4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드리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 이삭이라도 내어놓을 수 있는 아브라함의 마음과 같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 마음을 자기 스스로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항상 사랑하며 사는 방법 중에 하나는 주면서 사는 것입니다. 주면서 사는 사람에게 큰 복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미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보면 제 마음은 지옥이 됩니다. 미움을 이기는 것은 마음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을 그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왜 그것을 받았는지 모를 것입니다.
사실은 미운 마음보다 더 큰 마음을 가져야 미움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고 말씀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뿐만 아니라 그 사람도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미운 사람이 나타나면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뿐만 아니라 실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주면서 사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주면서 사는 사람은 항상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라서 행복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내 행복이 됩니다. 받으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불만이 있고 불평이 있고 원망이 있습니다. 따라서 불행해집니다.
저는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를 위해 기도하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저를 도와주려고 해야 합니다.
성도가 많기 때문에 일일이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부모님께도 덕을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길러주신 것에 감사하고 ‘어떻게 하면 잘 모실까’ 생각하면 섭섭할 것이 없습니다.
받는 것만 좋아하거나 받을 줄만 알면 안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면 미움을 받습니다.
신앙과 인격에 병듭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주고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받으면 갚지 못할까봐 아예 받지 않으려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관계를 끊어버리는 나쁜 행동입니다.
누가 줄 때에 감사히 받으면 기쁨이 생기고, 주는 사람에게도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으로 받으십시오. 받을 때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최선을 다해 갚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을 통해 행복한 삶이 이루어집니다.
6ㆍ25한국전쟁 때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천막에서 사람들이 생활하였는데, 어떤 천막은 천국이고, 어떤 천막은 지옥이고, 어떤 곳은 그냥 천막이었습니다.
그 차이는 자기 몫의 밥을 빼앗아먹느냐, 아니면 혼자 먹느냐, 나누어 먹느냐에 따라 나타납니다. 나누어 먹는 곳에는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부부가 자기 밥을 서로에게 더 먹기를 권한다면, 밥뿐만 아니라 행복도 같이 있습니다. 내 몫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 주려고 하면, 그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주고, 결국 나에게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주고받으며 행복한 삶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랑하며 살면, 가정과 교회, 직장과 세상이 모두 행복해집니다. 작은 것이라도 베풀며 사시기 바랍니다.
나누면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면 축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넷째, 원수를 용서하지 않으면,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는 원수에게는 보복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증오심을 키웁니다. 악이 극도로 많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끝에는 테러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에서 나온 것으로,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테러는 악신이 가져다준 결과입니다. 테러는 질서와 안정과 사랑을 파괴하고, 세상을 생지옥으로 만듭니다. 증오심을 가지면, 그만큼 마음이 괴롭고 지옥이 됩니다.
주님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실천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이 말씀대로 행하면,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테러를 종식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상대편은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공격하니까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하더라도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화해를 청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테러는 사라질 것입니다.
남ㆍ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하더라도 상대편이 그렇다고 하면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화해를 청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을 반복하면 반드시 화해될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자유가 없어서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많이 원조해도, 그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를 주어져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일정액만 내면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은 자기 소유가 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 더 좋은 것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거주의 자유가 있습니다. 도시에서 노동과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렇지 못합니다. 편지 왕래는커녕 이산가족도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체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한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야 합니다.
증오는 사랑으로만 해결됩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결론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북한을 사랑하는 것은 내 힘으로는 부족하고 성령 충만함으로 가능합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보면,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렵지만, 성령의 힘으로는 가능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사랑을 행할 수 있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면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증오심이 남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사랑 충만이 기쁨과 행복 충만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실천하면,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직장이 천국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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