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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4장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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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3 11:06 조회5,5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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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2009년 07월 19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4:25~27

 

저와 여러분처럼 예수 믿어서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 축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평안의 복입니다. 비록 가난 하지만 마음의 평안히 있는 사람, 건강하지 못하지만 마음이 평안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난이 와도, 환난과 시험이 있어도,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심지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어도 마음이 평안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평안히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재벌이 되어 수천억의 돈이 있어도, 평안히 없으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출세도 성공도 했고, 몸도 건강하지만 마음의 평안히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평안히 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불안과 공포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요 20:19).

평강의 복은 너무나 귀한 복이기에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마다 항상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엡 1:2, 빌 1:2, 골 1:2, 살전 1:1, 살후 1:2, 몬 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누리는 복이 평강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6장 22~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대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은혜와 평강을 주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본문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불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잠시뿐입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이 세상은 우리에게 참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평안이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1.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으면 평안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 나라의 정치와 정권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기에 우리는 항상 불안합니다.

 

2.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평안하지 않고 불안합니다.

 

3.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써서 모은 재산을 끝까지 소유하려고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재산을 소유하려고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재산이 다 불타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주식투자를 하다가 주식이 폭락해서 빈털터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권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권력도 끝까지 소유하지 못합니다. 권력도, 높은 지식도 잠시 뿐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은 미국 유학을 다녀오셨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장수하셨는데, 연세가 드시자 그렇게 잘하시던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아무리 소유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욥의 고백대로, 우리는 모태에서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듯이, 죽을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고,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려고 하니 마음의 평안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참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참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 평안은 신령한 평안입니다. 완전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가난도, 질병도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환난과 시험도, 어떤 고난도, 심지어는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빼앗아갈 수 없는 평안입니다.

 

스위스의 한 순교자가 장작더미 위에 맨발로 올라섰습니다. 화형을 집행하려고 하는 순간 자기의 화형집행을 감독하던 치안판사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판사님의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보십시오. 저는 곧 화형을 당할 것입니다. 만약 저의 심장이 평상시 보다 빠르게 뛴다면 저의 종교를 믿지 마시고, 저의 하나님을 부인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 의아했던 판사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처럼 평안했습니다. 치안판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죽음이 불신자들에게는 불안한 것이요,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요 주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와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1661년도 스코틀랜드에서 매캐일이란 사람이 교리적인 문제로 순교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교수형에 처해지기 사흘 전 매케일은 재판소에서 수송 달구지에 실려 거리로 끌려나왔습니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군중 속에서 자신의 친구를 발견한 매케일이 밝은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보게, 기쁜 소식이네. 기쁜 소식이야! 사흘만 있으면 예수님 곁으로 가게 되었어!” 이 순교자는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으로 인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히 11:38).

 

평강의 복은 어떤 사람이 누리는 복일까요?

1.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예수님은 이 평안의 복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평강의 복이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평강의 복이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나면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이 와도, 어떤 죽음이 온다고 해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에게도 이 평강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제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줄을 믿고 항상 감사하고 마음의 평안을 누립니다.

 

여러분, 앞길을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에게는 가장 좋은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의 평강이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언제나 보혜사 성령이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에 마음의 평안히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는데,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줄 알기에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함께해주심을 알기에 마음의 평강이 넘칩니다.

 

새클턴은 남극탐험의 맹장이었습니다. 한번은 탐험 중 탐험선이 파괴되는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극의 얼음 위에 많은 부하들을 남겨두고, 대원 중 두 명만 데리고 작은 보트를 타고 구조를 요청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남미의 남단을 항해한 후 눈과 얼음으로 덮인 야산을 방황하다가 겨우 마을에 도착하여 구원을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얼음 위에 남아 있던 대원들도 모두 구출되었습니다. 새클턴은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시 일을 생각하면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를 요청하러 간 사람은 3명이었는데, 자꾸 4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하대원 위슬리가 나중에 ‘대장님, 구조를 요청하러 가는 도중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것은 우리들 안에 또 한 분이 확실히 계시다는 것이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위슬리의 고백을 통해 나의 느낌이 명백한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확실히 보이지 않는 예수께서 우리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가 친히 우리를 안내하시고 보호하셨으며,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서 고문을 많이 당하셨습니다. 일본 경찰이 고문하면 고통을 견디다 못해 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들면 목사님은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고난을 잘 이기게 하소서.”

감옥 바닥이 시멘트로 되어 있는데, 날씨가 추운 겨울이 되면 그 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도하다가 시멘트 바닥을 만져보니, 그 차갑던 바닥이 온돌 바닥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의 온몸이 포근한 담요에 싸여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목사님은 저절로 눈이 스르르 감겨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주 목사님는 이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포근한 담요는 우리 주님 자신이었어요. 나는 주의 품 안에서 평안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는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믿음도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면 평강이 충만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희락과 화평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고, 마음에 평강이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후 부흥회도 가고, 산기도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은혜를 받으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고, 학비가 없어도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은혜 받은 자에게는 이렇게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하기 전에는 그렇게 불안해하고 공포에 떨었지만, 성령 충만함을 받으니까 기쁨이 넘치고 담대해졌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왜 염려할까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염려가 많아질수록 믿음은 더욱 약해집니다. 의심과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염려거리가 있어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감사하면서 기도하는 기도야말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렇게 감사하면서 기도하다 보면, 믿음이 자라나고, 믿음이 자라나면 마음의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4.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마태복음 5장 43~45절을 보면, 예수님은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려고 하면, 먼저 원수를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을 보면,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용서는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용서를 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원수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고 계속해서 증오심을 가지고 살면, 마음이 지옥이 되고 고통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마음이 천국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가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도 기쁨과 평강이 넘칩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시편 119편 165절에 보면,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히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편 1~3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큰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아서, 말씀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복을 주시고, 모든 일을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에 보면,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축복한 말씀입니다.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염려하지 않고 감사 기도만 하는 사람,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언제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의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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