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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4장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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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9-12 13:14 조회5,4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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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2018년 09월 09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4:7~11

 

요한복음 3장 16~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으려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른 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모른 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 교회 다녔다고 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 속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아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알아야 하고, 우리의 신앙을 올바르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라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다고 구원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구원 받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셔서 예수님이 누구신가 베드로가 알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다닌다고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서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전도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구원 받으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영생을 얻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을 몰라 실수하고 멸망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사사기 2장 7~10절에 보면,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하다가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에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모르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날 것을 먹어야 한다고 하며,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고기를 빼앗아갔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은 회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그들은 엉뚱하고 충격적인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계신 것도 모르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역대하 33장에 보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열두 살이었을 때에 왕이 되었습니다. 므낫세는 왕이 되자 성전에 우상을 갖다놓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므낫세만큼 적극적으로 우상숭배를 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상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지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므낫세는 자기에게 반대하는 신하와 성도들을 다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지만, 므낫세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쳐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므낫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를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셔서 왕위에 다시 앉게 하셨습니다.

역대하 33장 13절에 보면,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못된 짓을 했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몰랐기 때문에 엄청난 죄를 범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몰랐기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직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봉사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신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모르는 사람은 교회 밖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살며 죄를 많이 범합니다.

이들이 나중에라도 예수님을 알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분이 있어도, 봉사 많이 했어도 소용없습니다. 그것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하나님을 모르고, 마치 무신론자인 것처럼 행동하고, 세상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별 차이 없습니다. 악을 행합니다. 음란하게 삽니다. 거짓말을 잘 합니다.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멸망할 수밖에 없는 짓을 합니까?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의를 행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자요, 마귀의 자식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목회자 중에도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지옥에 갈 목회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형제를 사랑하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구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드리고 제사지내고 헌금하고 봉사한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따랐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많이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여겼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메섹에 많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고 사울을 부르시자 사울은 “주여 누구시니이까(행 9:5)”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5)”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분명히 알았습니다. 사울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메시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똑바로 알게 된 것이 좋아서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빌립은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요 14:8)”라고 말했습니다. 빌립은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빌립처럼 기도한 적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예수님을 믿으니 잘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하나님을 어떻게 잘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컴컴한 저녁에 혼자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 2층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 혼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저를 한 번 만나주세요. 제가 하나님을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부탁하듯 기도했습니다.

순간 불이 번쩍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눈을 떴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게 아니고, 지나가는 차 불빛이었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수요예배 시간에 남자 전도사님께서 설교하셨습니다. 이분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삼각산에 올라가면, 깊은 굴이 있습니다. 전도사님은 거기서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사흘이 지나고 배는 고프고 피곤했습니다.

한밤중에 기도하는데, 앞이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눈을 떠보니 머리를 푼 여자 귀신이 서있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 순간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6~43절에 보면,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16절에 보면,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하나님을 보면, 확신을 가지고 더 잘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았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 장로, 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았지만,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놀라운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때때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보았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깁니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이 “주여 누구시니이까(행 9:5)”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5)”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생생하게 만났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때 사울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체험하면,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깨닫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세상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하여 살고 싶지 않았지만, 자살할 수 없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금식기도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하고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금식기도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오늘 밤을 넘기지 않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예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제게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는 제가 무엇인가 결정할 때에는 저는 금식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도합니다. 이렇게 한 것이 제게 평생 축복이 되었습니다.

 

강도사 고시를 치기 전의 일입니다. 훌륭한 목회자가 타락하는 것을 보며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목사가 되겠나. 평신도로 이 나라를 복음화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강도사 고시 공부도 하지 않고 청계산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장차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는데, 강도사 고시를 앞두고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평신도로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면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다 해도, 책망을 듣고 회개하면, 그 후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책망을 들어도 좋은 일이요, 축복의 말씀을 들어도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으니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기도한 지 사흘째 되는 날, 하나님께서는 제게 목사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늘에서 빛이 비쳤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본 빛이라고 생각하고,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먹구름 사이로 구름이 뚫렸습니다. 그 구멍으로 햇빛이 비쳤습니다. 마치 캄캄한 가운데 손전등으로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빛을 보며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목사가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원에서 내려와 강도사 고시를 쳤습니다.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쳤으니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글씨나 잘 쓰자.’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썼습니다. 그런데 합격했습니다.

제 실력으로 합격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저를 책임지시고 저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개척할 때에도 기도하여 응답 받은 후에 시작했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성도가 생겼을 때에도 밤새 기도하여 응답 받았습니다. 저는 평생 그렇게 목회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성경을 안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아는 것만으로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00% 안 될 것 같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시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11장 39절에 보면,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사기 21장 12절에 보면,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아 남자와 같이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남자와 같이 살았다면, 그 사람은 남자를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좋은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형제를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체험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에 보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 서로 사랑하면,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과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본 것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시는, 완전한 계시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듯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10~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직접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서른여덟 해 된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고 말씀하시자 그 사람이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부르시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것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목사가 되어 이 나라를 복음화하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면서 평생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제게 복을 부어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를 고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숨 걸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고생하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오히려 더 고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갔을 때에는 제가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동생의 학비까지 제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밤 12시까지 일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졸업했습니다.

 

졸업식 후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대학생활을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곧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두지 않았다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동안 고생한 것이 우연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게 시간이 있고, 돈이 있었다면,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니 죄를 얼마나 범했겠습니까. 그렇게 살다가 목사가 되면, 제대로 된 목사가 되겠습니까.

교만한 저를, 세상을 좋아하는 저를 누르셔서 목사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제게 고난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그동안 고생한 것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원망도 불평도 다 사라졌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협조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사람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계시하실까요?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시고, 우리로 믿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시를 받은 자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때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이것을 체험한 사람은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셔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몰라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했습니다.

호세아 6장 1~3절에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호세아 6장 6절에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알아서 하나님도 똑바로 알고, 올바르게 믿음으로 살아 영생을 얻고, 구원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주님을 알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은혜로 되는 줄 믿습니다.

아버지, 간구하오니 주님께서 소원하시면 우리가 계시를 받고 알게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오직 주님의 은혜, 성령의 은혜로 날마다 날마다 충만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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