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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4장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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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1-20 10:51 조회5,4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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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2018년 09월 30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4:25~3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는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모든 죄를 대속 받았습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해야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범한 죄부터 미래에 범할 죄까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예수님께서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모두 저주를 받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 저주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고 고통당하다가 늙고 죽습니다. 그 후에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보다 큰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고, 우리가 받을 저주까지 다 속량해주셨습니다.

 

모든 저주에서 속량 받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유대인만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창세기 12장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마어마한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만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혼자 부자 되고 자기 혼자 잘 살고 자기 혼자 영광을 누리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복을 받게 하는 사람이 진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네 씨’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복’은 구원의 복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복을 아무리 많이 받았다 해도, 구원 받지 못해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저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것이 진짜 복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의 끝부분에 보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약속을 받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아십니까.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끌어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삽니다. 모든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사탄을 이기게 하십니다.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다하고 충성할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만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를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내가 받은 복을 전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전도가 됩니다.

찬양 중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불이 임합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성령께서 기뻐하십니다. 찬양할 때, 암 덩어리가 떨어지고, 귀신이 물러갑니다. 찬양에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없게 하시고, 못할 일이 없게 하십니다.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게 하십니다. 성령은 완전한 교사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도록 성령께 기도해야 합니다. “제 안에 계신 성령님, 저를 아시고 제 형편을 아시는 성령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게 가르쳐주세요. 제게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6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신 것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저는 ‘아버지’라고 많이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완전하신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난 후, 저는 하루 종일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그 후로는 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재벌이라고 해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주십니다. 사도행전 11장 12절에 보면,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왔을 때,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성령께서 말씀해주십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디옥교회에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사람들은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의 기둥과 같은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절에 보면,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선교지로 향했습니다.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말씀하시고 이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8장 9~10절에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예전에는 부흥회를 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 낮, 저녁 하루에 세 번씩 집회를 했습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면서 제가 주님을 만난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말씀이 끝난 후에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제게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었나?”라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세상의 소리로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아무리 세게 말씀하셔도, 자신만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 사람만 듣습니다. 어떤 때에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저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목회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 놀라운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답답한 때가 많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런 때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마디만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사흘이고 나흘이고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결사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얼마나 좋은지,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제게 평생 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과거 공산주의였던 나라에서는 교회든 신학교든 제대로 조직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라고 해도 자신의 직업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보통 뜨거운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목회합니다. 그런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말씀을 전하는 저보다 더 뜨겁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성령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말씀하십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도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유대교의 랍비 중에도 성령을 만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성령께서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고 치며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마라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어지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축복하신 것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들어도 설교를 들을 때만 기억할 뿐입니다. 금방 잊어버립니다. 설교 제목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시면 빨리 기록합니다. 그래야 잊지 않습니다. 기록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다 보면 다 잊어버립니다.

 

성경을 많이 보세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자세히 살펴보세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할 때, 성령께서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것을 체험합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필요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기도하다 보면,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샬롬은 큰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편지를 쓸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축복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22절에 보면,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성령을 받아야 참 평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약속하신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평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주님의 평안이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있는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많은 고난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죽음도 고통도 평안을 빼앗아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앞두고도 어떻게 평안하실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죽음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어질 일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예수님께서 받으실 영광이 크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해도,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안다면, 어려운 일이 오히려 축복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어려움을 기쁨으로 참을 수 있고, 어려움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아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아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실 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도 평안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구원 받은 우리의 영도 장차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으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도 이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아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이길 것입니다. 항상 주님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시기 때문에 우리도 이길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잠시 평안할 뿐입니다. 계속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주는 평안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평안으로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돈 때문에 걱정했는데, 어느 날 돈이 많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좋습니다. 그런데 찾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 많은 사람에게 고통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명예와 권세를 얻고, 세상에서 지위가 높아지면,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골치 아픈 일이 더 많습니다. 어려움이 이전보다 더 많습니다. 고민이 많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 지위는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보고 싶은 대로 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해도 마음이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은 다 했습니다.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살았습니다. 1천 명의 여자와 살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기쁨이 없었습니다. 근심이 많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전 2:17)”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제가 부교역자로 있던 교회의 주변에 재벌들이 살았습니다. 집이 엄청나게 크고, 담장이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몸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일본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병실의 벽에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보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이 환상으로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천국이 진짜 있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벌의 부인은 교회에서 권사였습니다. 그런데 부인 혼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자녀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인 권사님은 매일 새벽기도에 교회에 와서 울며 기도했습니다.

병실에서 환상으로 천국을 본 재벌은 급하게 귀국했습니다. 공항에 많은 사람이 마중 나왔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재벌은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들 놀랐습니다. 다음 날부터 우리 교회에 나왔습니다. 제일 뒷자리에 앉아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이 세상에서는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성령께서 말씀해주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얼마나 좋은지 춤추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경험한 사람은 환난과 시험이 와도 큰 병에 걸려도 사업이 실패해도 마음에 근심이 없고 두려움이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넘칩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충만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생기고, 마음이 불안한 것은 믿음이 병들었거나 믿음이 약해진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숨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는지 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들이 언제 달라졌습니까?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달라졌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평안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박해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행 5:42). 이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염려거리가 있을 때,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빨리 해결되기 원한다면, 부르짖으며 간구하세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세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바빠지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수고하실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안에 가득 찰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평안해질 것입니다.

기도하면 성령을 받습니다. 기도하면 성령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으면,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마지막에 잘 된다는 것을 알면, 전혀 걱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 불안합니까?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고난이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고난을 기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바르게 살지 못해서 그런가.’하고 죄책감이 생깁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너무 괴로우면 죽고 싶습니다. 근심이 쌓이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면, 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왜 이렇게 수심에 잠겼을까’ 생각합니다.

 

대학교 졸업식 후,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하나님, 저는 대학생활을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두지 않았다면, 네가 목회자가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쓰시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저를 묶어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니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고난당한 것이 제게 유익이요 축복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기쁘고 좋았습니다. 과거의 모든 고난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될 줄 믿는 사람은 지금 고난을 당한다 해도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믿고 기뻐하시고 감사하시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시는 것을 왜 기뻐합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시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성령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셔서 우리는 형통합니다. 평안을 누립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것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시는 것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 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십니까? 마태복음 24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면 끝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중에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100%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그 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음을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려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빌라도나 총독 가야바와는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장차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 받게 하는 일에 동참하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옵소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기억나게 하셔서 말씀을 붙잡고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이 언제나 충만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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