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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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10 13:45 조회5,614회 댓글0건본문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
2018년 07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3:31~38
예수님의 말씀은 다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날, 말씀하신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언하시듯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 말씀하신 것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떡 한 조각을 포도주에 적혀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것을 받은 후, 사탄이 그의 속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기려고 계획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3장 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원수들에게 붙잡혀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보면,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저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눈앞에 두고 그것을 ‘영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살리실 것을 가리켜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성공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큰 영광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장차 하나님으로부터 큰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았다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가리켜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법을 행하며 자기 멋대로 살았던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보다 큰 수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며 수고를 많이 하는데, 장차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에서 성공했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는 영광이 없습니다. 수치만 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8~31절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맏아들과 같은 사람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목사 안수 받을 때에는 무릎을 꿇고 엄숙하고 은혜로운 모습으로 안수를 받습니다. “하나님,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안수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목회자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제멋대로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삽니까?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목회자들이 큰 교회에서 청빙 받으면, 그것을 평생의 행운이요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청빙 받은 교회로 가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은 작은 교회에서 위임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2~3개월 후, 세 배나 큰 교회에서 청빙하니 그 교회로 떠나버렸습니다. 목사가 위임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결혼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수영로교회에서 위임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수영로교회와 결혼한 것입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 큰 교회에서 오라고 했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수영로교회와 결혼한 목사가 수영로교회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갈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갈 수 없습니다.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은혜로운 교회는 금식을 자주 하고, 성령 충만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셔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사를 이렇게 파송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절에 보면,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실루기아로 가라”고 하셔서 실루기아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하는 날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교사로 가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하면 그 사람이 성령을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파송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파송한 선교사의 수는 많은데, 제멋대로 파송한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파송한 선교사의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교사가 선교지를 결정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은 제멋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가기 싫은 곳이라도,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야 합니다.
저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너, 아프리카로 가라”고 하시면, 저는 “예”라고 대답하고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 혼자라면 제가 결심한 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했는데, 아내가 반대한다면, 제가 결심한 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목사 안수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학벌 좋고, 인물 좋고, 집안도 좋은 사람을 많이 소개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짝지어주신 사람을 제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제게 짝지어주신 사람입니까. 제가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짝지어주신 사람은 한 사람뿐인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제게 가르쳐주세요. 하나님께서 제게 짝지어주신 사람이라면, 세 가지 사인을 주세요.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마음이 편안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 중에 반대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해주세요. 목사님께 말씀드렸을 때, 목사님께서 좋다고 말씀하시게 해주세요. 목사님께서 좋다고 말씀하시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제게 짝지어주신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소개를 받으면, 저는 항상 “기도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대답했더니 자존심이 세고 잘 난 사람은 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를 소개 받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사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대로 결혼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제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세상에 이보다 좋은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목사의 아내 중 훌륭한 사람이 많지만, 제가 보기에는 제 아내보다 훌륭한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마음대로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4장 23절에 보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 없이 행하는 것은 다 죄입니다.
다 좋아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6). 그러므로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음을 따라 살지 않고, 믿음을 따라 결정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 없습니다.
어느 교회에 믿음 좋은 여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대학원까지 공부한 후 대학 강사로 일했습니다. 성격도 좋고, 믿음도 좋고, 인물도 좋아서 많은 청년들이 그 여자 청년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이 여자 청년은 가난하여 대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직장생활을 하는 청년과 결혼했습니다. 믿음이 좋고, 성격이 좋았습니다. 이 여자 청년은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믿음 하나만 보고 결혼했습니다.
결혼한 후, 남편의 대학공부를 뒷바라지 하고, 대학원 박사 학위까지 받도록 도왔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다 박사가 되고,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학벌보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부잣집의 딸이 결혼하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 믿음 좋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믿음 외의 다른 것은 보잘것없었습니다.
부잣집의 딸은 그 청년을 보며 ‘저 사람은 믿음은 좋은데, 결혼하면 평생 고생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명문대를 졸업하고 얼굴이 잘 생긴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집안도 좋고, 장래성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 청년과 결혼했습니다.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했는데도 취직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잣집의 딸과 결혼했으니 취직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업하겠다고 돈을 요구하며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장 기뻐하시고, 무엇을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 아들처럼,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분명히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처럼 자신이 잘못한 것을 끝까지 뉘우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보시지 않으시고, 현재를 보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과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은 효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를 보십니다.
과거에 우리가 제멋대로 살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 시간 깨닫고 뉘우치고 회개하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모든 잘못을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제 설교를 듣는 동안 깨달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복을 많이 받은 목사입니다. 그런데 제가 잘 나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결정할 때에 제가 원하는 것, 제게 좋은 것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급할 때에는 산에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반드시 응답 받고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복된 길이요, 축복 받는 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기 전, 서울에 있는 교회 중 다섯 개의 교회에서 제게 오라고 했습니다. 한 개의 교회에서 오라고 했으면 쉽게 결정했을 텐데, 다섯 개의 교회에서 오라고 하니 어느 교회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말씀해주세요.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시니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다섯 개의 교회 중 먼저 저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그 교회로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 것이 아니고, 부산에서 왔습니다. 게다가 교회를 개척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서울 사람이니 서울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큰 일 났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언제 부산에서 개척하겠다고 기도했습니까? 서울에 있는 다섯 개의 교회 중 먼저 저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교회로 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환상이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이 환상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 양떼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순종하겠다고 대답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예,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개척한 교회가 수영로교회입니다.
수영로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복 받은 비결입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오라고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영로교회와 결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수영로교회와 짝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목회자를 그만두면 그만뒀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이 그랬기 때문에 제가 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부교역자들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역자회의를 할 때마다 야단쳤습니다.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역자들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얼굴이 까매졌습니다.
연말이 되어 교역자들을 다 내보내기로 결심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런 사람들과 일하기 싫습니다. 저와 함께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 교회에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기 전에는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급하셨는지, 금방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그들이 좋은 형님 목사님의 밑에서 사역했다고 평생 기억할 수 있는 목사가 될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교역자들을 불렀습니다. 또 야단맞을까봐 시커먼 얼굴로 모였습니다. “여러분을 다 내보내려고 했다. 나는 나와 함께 순교할 사람과 일하고 싶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여러분이 가장 좋은 형님 목사님 밑에서 사역했다고 평생 추억할 수 있는 목사가 될 수 없겠냐고 말씀하셔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이제 나는 당회장도 아니고, 감독도 아니다. 나를 친형이라고 생각해라. 죄만 짓지 않으면 된다. 여자 문제, 돈 문제만 없으면 된다. 이단에 빠지지 않으면 된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실수하는 것은 다 받아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장로님들이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께 “아무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허락했습니다. 말씀하실 것이 있으시면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교육시켜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장로님들도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고, 저도 아무 말하지 않으니 교역자들이 마음 놓고 실수했습니다. 그러면서 행복해했습니다. 아무리 실수해도 괜찮으니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을 새기도 하고, 자발적으로 일했습니다.
그분들 때문에 우리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기쁨으로 일하고, 자원하여 충성했습니다. 저 때문에 우리 교회가 부흥된 것이 아닙니다. 사소한 것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고 결정하고 행했기 때문에 제가 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보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떡을 떼어주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아시고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고 말씀하셨으면서도 가룟 유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저주 받아야 할 인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인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사랑했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원수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많은 율법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만 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하나의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저와 여러분은 선악과를 따먹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산다면, 날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가 항상 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신 6:24).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신 10:1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괴롭히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시려고,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아마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았을 것입니다.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후,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종 노릇을 했습니다. 저주를 받아 고생하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당할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 구원 받았으니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행함으로 구원 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믿음만 있으면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시고,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특별히 구별하시고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우리의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 받았으므로 이제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율법은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끝까지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전의 율법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실제로 간음을 행해야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살 때, 우리는 온전히 율법대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형제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살인하겠습니까. 도둑질하겠습니까. 로마서 13장 10절에 보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율법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3장 36~38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지금은 예수님을 따라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후에는 따라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예수님을 따라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율법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십계명을 어기겠습니까.
아무쪼록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셔서 믿음이 충만해지고, 사랑도 충만해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 같이 악한 자가 마귀의 자녀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하고, 왜 기쁨이 없습니까? 마음은 원하지만, 마음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지고, 사랑이 충만해져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혼자 있게 하지 않으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체험하며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며 살면,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결단하세요. “아버지, 제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고, 믿음이 충만하게 하시고, 사랑이 충만하게 하셔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나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이런 마음만 가져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런 기도는 응답됩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며 행복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마음에 깊이 새길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여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영광을 누리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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