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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3장

제일 복 있는 자와 불행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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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04 11:25 조회3,4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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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복 있는 자와 불행한 자

 

제일 복 있는 자와 불행한 자

2018년 07월 01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3:21~30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성찬예식을 행하셨을 때에 일어난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 중 한 명이 예수님을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3장 2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제자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아시고 매우 괴로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어떻게 예수님을 팔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여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누구일까.’라고 생각하며 서로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3장 23절에 보면,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 중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을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이름 대신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라고 기록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품에 누워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두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자신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부모님이 부자여서 자녀에게 좋은 옷을 사다 입히고 잘 먹여줘도, “엄마 아빠가 나에게 뭘 해줬어? 언제 나를 사랑했어?”라고 따지는 자녀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녀는 그만큼 불행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잘 해줘도,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부모가 가난하여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제대로 입히지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사랑이 크다고 생각하고 부모의 사랑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자녀는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제게 “목사님, 저는 평생 교회에 다녔지만, 기도해서 응답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생 기도했는데 응답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도한 것 중 응답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제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기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행복합니다.

그런데 평생 기도했지만 한 번도 응답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 집사님은 하나님께 불만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감사할 줄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 아십니까?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 통로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은혜를 받고, 성경 말씀을 읽는 중에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통해 받는 은혜, 이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좋아집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견고하게 무장됩니다. 그러므로 설교 시간에 은혜 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둘째,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하던 중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고, 불을 받는 등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습니다.

 

셋째, 은혜 받은 분을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 많이 받은 분들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은혜 많이 받은 분과 1시간만 함께 있어도,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까이하지 마세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밤낮 술을 마십니다.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밤낮 노름을 합니다.

은혜 받은 분을 가까이하세요. 은혜 받은 분을 통해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 깨닫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의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하는 소원과 꿈, 목표가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며 삽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생활력이 없으셨습니다. 가난해서 먹을 것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아먹고, 소나무의 껍데기를 벗겨 먹었습니다.

집안 형편은 힘들었지만, 은혜를 충만히 받으니 기쁘고 좋았습니다. 은혜 받아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하며 밤을 새어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원래 잘 생겼는데, 은혜를 받아 기쁨이 넘치니 여선생님들이 저를 보면 제 얼굴을 만져보고 가셨습니다.

 

은혜를 받으니 행복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예배 시간이 좋았습니다. 찬양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교회에 있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저는 하루 24시간 교회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하실에서 공부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교회 청소도 했습니다. 당시 마룻바닥이었는데, 혼자 물걸레질을 했습니다. 교회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목회자가 된 후에도 저는 교회에 있기만 해도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ㆍ퇴근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일하지 않습니다. 즐깁니다.

 

은혜를 받으면 행복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주 행복하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어느 날, 제가 목회자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보다 저를 열 배 더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친구가 제게 핀잔을 줬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그렇게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고백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3장 24~25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요한에게 “예수님을 팔 자가 누구인가 예수님께 물어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예수님께 “주여 누구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3장 26~30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유다에게 준 후, 왜 사탄이 유다의 속에 들어갔을까요?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주셨을 때, 유다는 얼마나 황송했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유다가 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속에 사탄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더 악해집니다.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가룟 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에도 가룟 유다의 발도 똑같이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천국 복음을 들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기적과 표적 행하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메시아이심을 충분히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끝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밤낮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쓰는 돈을 관리한 것을 보면, 그래도 가룟 유다가 제자들로부터 신임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제자들은 속았지만, 예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도둑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돈을 계속 빼가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가룟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가룟 유다가 회개했다면, 예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회개했다면, 예수님께서는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죄와 허물을 모두 도말해주셨을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뿐 아니라, 과거를 다시는 묻지 않으십니다. 따지지 않으십니다.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회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5장 11~24절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작은 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가 그것을 줬습니다. 작은 아들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며 탕진했습니다. 나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작은 아들은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책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너,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했느냐?”라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아버지는 아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온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이미 용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그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자마자 아들에게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했습니다.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 악한 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죄를 얼마나 많이 범합니까. 심판 받을 짓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죄 가운데서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죽을죄를 범하고 나쁜 짓을 해도,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지 않으시고 참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망하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을수록 행복합니다.

 

가룟 유다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6절에 보면,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탄이 들어가면,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사탄이 회개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함께 지옥 불 못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종 노릇을 하다가 멸망합니다.

 

당시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하면,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굳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잡아 넘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나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가룟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는데, 왜 이런 짓을 했습니까?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첫째, 예수님의 제자, 사도가 되었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 목회하고 설교하고,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해서 그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우리가 평생 교회생활을 하며 중ㆍ제직으로 충성봉사하고, 성전 건축헌금을 하는 등 교회에 큰 공로를 세웠다고 해도, 그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가 완전하고 훌륭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의로워서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완전한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를 사함 받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들어갑니다. 사도라고 할지라도 사도이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했는데, 아무렇게나 믿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능력을 행하고, 표적을 행한다 해도,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0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2절에 보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고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많이 행했다고 하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법을 행했습니다. 나쁜 짓을 계속 행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리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많이 행했다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도 미혹하려 할 것입니다. 큰 표적과 기사가 그들의 무기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표적을 좋아하지 마세요. 표적을 좋아하는 사람은 표적을 행하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해서 멸망하게 하는 사탄이 그런 짓을 합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진리가 무엇인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진리를 사수해야 합니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이단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가 아닌 것을 믿고 그것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진화론은 진리가 아닙니다. 엉터리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화론을 믿습니다. 진화론은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는 교회와 목회자, 신학박사는 다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꼭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종교는 똑같다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습니다.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성전을 건축할 때에 헌금하면 죄를 사함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죄를 사함 받습니까? 그렇다면 돈이 많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괜찮습니까?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천국과 지옥 외에 연옥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인간이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동성결혼을 허락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2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음란한 짓을 하며 살 수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을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짓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망하는 짓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 더해도 안 되고, 빼도 안 됩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십계명에서 두 번째 계명을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대로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절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천주교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이서 7~11절에 보면,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고, 인사도 해서는 안 됩니다. 가까이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과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위험합니다.

 

돈 중에서 위폐가 가장 많은 돈은 달러입니다. 위폐를 찾는 법을 훈련할 때, 위폐로 훈련하지 않습니다. 미국 정부은행에서 발행한 올바른 돈의 특징을 공부합니다. 하나라도 틀리면, 그것은 위폐입니다.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을 공격하기 위해 그 속에 들어가면, 그들과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보며 말씀을 올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진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달라도 ‘저것은 이단이다. 우리가 아는 진리가 아니다.’라고 금방 발견할 수 있도록 무장해야 합니다.

 

둘째,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19~20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압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셋째,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듭난 믿음의 사람은 분명히 변화됩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을 청산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구제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거듭난 증거입니다.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해지고 솔직해집니다. 남을 괴롭히던 사람은 악한 성품이 사라지고 착해집니다. 이것이 거듭난 증거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도둑질을 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마귀의 자녀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도였지만, 그의 열매를 보면, 그는 구원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죄를 회개하여 용서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평생 교회 다녔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사탄의 종 노릇을 하다가 멸망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런 사람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실 때, 100% 다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게 하여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똑바로 알고, 진리의 말씀대로 신앙생활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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