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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2장

예수 믿게 되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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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04 11:03 조회3,4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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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게 되는 복

 

예수 믿게 되는 복

2018년 06월 10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2:36~50

 

본문 요한복음 12장 36절 하반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왕을 맞이하듯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숨으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다른 곳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5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54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때로는 숨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셔서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두렵고 무서워서 사람들을 피해 숨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정확하게 아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맞춰 사셨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직 붙잡히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강제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피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에서 모르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잘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붙잡히면 붙잡힌 대로 매를 맞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사도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내려 사도 바울을 도망가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죽는다면 자신의 사명이 다하여 죽는 것이라 생각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에게 죽는 것은 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걷어 가신다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음을 피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괴롭혔을 때, 많은 성도들이 모든 것을 두고 탈북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많은 성도들이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서울에 교회가 적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북한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성도들이 불덩어리와 같았습니다. 그들로 인해 교회마다 두 배, 세 배로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북한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성도들로 인해 남한의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당시 부산에도 교회가 적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로 인해 오늘날 부산에 수천 개의 교회가 생겼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2장 37절에 보면,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5절에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기록한 것은 일부분이요, 자신이 기록한 것 외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에 둘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만큼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향해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니 죽었던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표적을 행하셨으면 믿어야 할 텐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을까요?

첫째, 예수님만 표적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표적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니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똑같이 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니 강이 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했습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개구리 재앙이 일어나게 했을 때, 애굽의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표적만으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 표적을 보았다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3~5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약 행위로 구원 받는다면, 우리 중 한 사람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데, 믿어져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어지는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적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이 믿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믿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안 믿어져서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모범적이고 충성하는 장로님이 자신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가 목회자이셨기 때문에 목회자들을 잘 대접하다 보니 교회에서 장로가 되었지만, 사실은 믿어지지 않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 이것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며 살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창세 전에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가 많은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모두 천국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믿을 수밖에 없는가, 성경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첫째,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마지막 날에 다 구원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지금 여기에 앉아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시는 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손을 누가 피할 수 있겠습니까. 꼼짝할 수 없이 예수님께 나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백성이요 내 자녀야”라고 불러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계시를 받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섬기게 됩니다.

 

본문 요한복음 12장 38~40절에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7백 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기 원하시는,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예언한 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세상에 선지자를 보내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유대인들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오히려 선지자들을 죽이고 박해하는 등 선지자들에게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셨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못하게 하시고,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와 아론을 세우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마음이 완악하여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셨을 때, 정신을 차리고 빨리 깨달으면 좋을 텐데, 바로의 마음은 점점 더 완악해졌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 재앙을 다 받았습니다. 바로는 마음이 완악하여 많은 재앙을 겪었고, 재앙으로 인해 망했습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출애굽기 7장 3~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7장 22절에 보면,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로가 마음이 완악하여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마음이 완악하여 결국 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출애굽기 10장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바로와 바로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0장 20절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11장 10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계속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열 가지 재앙을 다 겪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 29~30절에 보면,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재앙이 열 번째 재앙입니다. 열 번째 재앙으로 인해 첫 번째 태어난 사람이 다 죽었습니다. 가축 중에서 처음 난 것이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집이 한 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출 12:31~32)”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보낸 후, 바로의 마음이 또 완악해졌습니다.

출애굽기 14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는 열 가지 재앙을 다 겪은 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보낸 후,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이것은 망할 짓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갔습니다. 이것을 바로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마음이 완악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갔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7절에 보면,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도 홍해 바닥에는 애굽 마차의 바퀴에 가라앉아있다고 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가르시고 그 사이를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거기를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바로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물이 다시 합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바로는 물론이요, 바로의 군대를 다 덮었습니다.

마음이 완악해진 것이 저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멸망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는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믿으라 해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그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 중에도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을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로 변화되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2장 42~43절에 보면,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믿음이 약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봉사하지만,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보다 자신이 영광 받으려고 합니다.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믿음이 작아도, 믿음이 확실한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진실로 회개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믿음이 자랍니다.

그러나 제대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징계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요 사생자입니다(히 12:8). 징계가 없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죄를 범할 때, 어려움이 생긴다면, 감사하세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돌보신다는 증거입니다.

징계가 나타나면, 빨리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빨리 회개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빨리 회개할수록 좋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연약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믿음이 작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후, 믿음이 충만해졌습니다.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박해 받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쉬지 않고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살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입술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지만, 마음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믿는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믿어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빼고 믿으면 안 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화론을 믿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십계명 중에서 두 번째 계명을 아예 빼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상을 숭배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홍해 사건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홍해 사건은 꾸민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장차 우리가 부활할 것을 믿지 않습니다.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되 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말씀에서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람들 앞에서 시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척 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숨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즉시 회개했습니다.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충만함을 반드시 받으셔서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12장 44~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이십니다. 한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7~10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8절에 보면, 도마는 예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께 구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예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이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31~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큰 은혜요 축복임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기 위해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열 가지 재앙을 당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완악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온 백성들이 알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역사하시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특별한 나라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을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마음에 새기고, 이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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