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사랑하시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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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25 05:56 조회2,266회 댓글0건본문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
2018년 02월 11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1~10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은 지 나흘 되어 장례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는 것,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부활 신앙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영이 우리 안에도 계셔서 죽을 우리의 몸도 다시 살리실 것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이 있습니다. 첫째 부활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간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활은 심판의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완전히 멸하실 때,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하여 심판 받고 지옥불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둘째 부활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3절에 보면, 나사로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보낸 사람들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5절에 보면,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5~36절에 보면,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사랑 받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까지 사랑을 받는다면, 이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라는 마을은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5리 쯤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예수님께서 살던 시대에는 호텔도 없었고 여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 곳에서 온 사람은 누군가가 영접해줘야 했습니다. 영접해주는 사람의 집에서 먹고 지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제자들과 함께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가면 항상 나사로의 집에서 머무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1~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전도사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머니와 같은 여전도사님과 함께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했습니다.
당시 저는 가난했기 때문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심방하다가 배고프면, 어느 권사님의 댁에 갔습니다. 권사님의 댁에 들어가며 “권사님, 점심 먹으러 왔어요. 라면이라도 끓여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권사님께서는 정말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의 댁에서 밥을 먹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장로님 중 한 분이 주일이면 집을 개방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하셔서 성도들을 대접하셨습니다.
장로님의 댁에서 밥을 먹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편했습니다. 장로님은 그렇게 섬기셔서 복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미국의 뉴욕에 사는 최 장로님의 댁에는 ‘예수님의 방’이라고 꾸며놓은 곳이 있습니다. 손님이 오면 그곳에서 지낼 수 있게 했습니다.
제가 장로님의 댁에서 며칠 묵었습니다. 제가 가기 전에도 목사님이 그곳에서 쉬셨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에도, LA에도 그렇게 대접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일본의 삿포로에도 그렇게 대접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성도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엘레브 선교센터가 있습니다. 선교센터의 게스트룸에는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누구든지 머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는 자원봉사자들이 그곳에 머무는 선교사와 목회자의 식사를 준비해줍니다.
이런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많은 교회들이 재정적으로 힘들어도, 우리 교회는 40여 년 동안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기뻐하신다는 증거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오시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음식을 만들어 예수님을 대접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잘 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베다니에 가면, 나사로의 집에서 편안히 쉬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가정을 사랑하신다는 것이 동네에 소문났습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죽음을 알리려고 예수님께 온 사람이 예수님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요 11:3)”라고 말했습니다.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라고 소문나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려면,
첫째, 예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시고, 원수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오히려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 감동 받으실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1.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3. 예수님을 대하듯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행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제로 체험하면, 몇 배 더 행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시절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주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날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릎을 꿇고 1시간 이상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온몸이 눈물과 땀에 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학교에 입학해서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고통이 커서 절망적이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식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금식하던 중,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제게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죽어도 될 텐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죽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더 많이 고생했습니다. 대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가 너를 묶어두지 않았다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묶어두시고 저를 단련시키신 것입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저는 부산 전체를 복음화하겠다고 생각하고 날마다 수영로터리를 돌며 그 땅을 우리 교회에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0년 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새가 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가 저 새를 위해 준비해놓은 공간을 봐라. 얼마나 크고 넓으냐. 내가 너를 위해서도 준비해놓은 것이 그렇게 많다. 네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로터리만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로터리보다 백 배 더 많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체험하니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벌이 되면 행복할 것이다.’, ‘권력을 잡으면 행복할 것이다.’, ‘인기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다.’, ‘명예를 누리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중에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고통과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자신이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깨달아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일한다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후에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텐데, 이 땅에서 무엇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복음화하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언제쯤 저를 주님의 일만 할 수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주님의 일만 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출퇴근하지 않았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늘 교회에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간 후부터 전심전력하여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나사로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나사로가 죽은 것을 보면, 나사로의 병이 위중했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겪는 고통 중 가난의 고통도 크지만, 질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은 가난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고통입니다. 몸이 아프고 병이 위중하여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온 가족이 고통스럽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물질을 잃습니다.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아직 젊은데 죽을병에 걸린다면,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도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요한복음 11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죽을병에 걸릴 수 있는데, 병에 걸리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병에 걸렸다 해도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폐결핵 말기라고 진단받았습니다. 그래서 말기환자들이 입원해있는 병동에 입원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죽는 것을 날마다 보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침상에서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환자가 피를 토하면, 닦아주고 씻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주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아픈 것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해서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장수하셨습니다.
폐결핵 말기라고 했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죽을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사야 43장 1~5절에 보면,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도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 해도, 죽는 순간까지는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시골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진단받았습니다.
암 환자들은 죽기 직전에 뼈만 앙상하게 남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은 성도들의 집을 심방하며 예배드리고 기도해주며 6개월을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 1년, 2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암 덩어리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흘려듣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다가 죽겠다.’라고 생각하세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전심전력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3~4절에 보면,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가 보낸 사람이 와서 말하기 전에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에 걸렸다는 것도 아셨고, 그 병이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께서 좋은 분이심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을병에 걸린 것은 제자들에게 부활 신앙을 갖게 하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이틀을 더 계시다가 가셨습니다.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가셨을 때에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되었고 장례를 치른 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우리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본에서 2주간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교회를 떠나있으니 교회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잠들기 전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우리 교회에 일이 많아 바쁜데, 왜 제게 일본에 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까?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일만으로도 바쁜데, 왜 일본에 와있는지 알 수 없어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날 밤, 꿈을 꿨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가 어두침침했습니다. 성도들이 있는 것은 보이는데, 어두워서 성도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운데 관(棺)이 있었습니다. ‘왜 교회 안에 관이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관 앞으로 다가가서 들여다봤습니다. 그랬더니 시체가 눈을 떴습니다.
저는 놀라서 “살았다”라고 외치며 시체를 두 손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일으켰습니다. 시체를 관 밖으로 끄집어내며 “할렐루야, 할렐루야.” 힘 있게 찬양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손을 잡고 교회 밖으로 나와서 걷다가 잠이 깼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영혼을 살리라고 나를 이곳에 보내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 1:3)”고 말씀하신 순간, 빛이 생겼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 장례를 치를 때까지도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굉장히 섭섭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32절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섭섭한 마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는가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외로움도 아십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해결하시지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100% 불가능해보여도 하나님은 100% 가능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응답이 늦다 해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축복해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7~10절에 보면,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낮과 밤을 만드셨고, 낮에는 일하게 하시고, 밤에는 쉬게 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에 있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실 때가 있고 기회를 주시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면,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망설여서도 안 됩니다. 구경만 해도 안 됩니다. 전심전력하여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러시아는 과거에 선교의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신학교를 세우는 것도 자유롭습니다. 지금은 낮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허락하셨을 때, 우리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낮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돌로 쳐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유대로 다시 가자(요 1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물론이요, 나라의 흥망성쇠와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세상을 바라보지 마세요. 걱정하시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세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하신 아버지,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시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게 해주셔서 우리의 삶 가운데 말씀대로 적용하여 열매 맺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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