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28 11:36 조회3,517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2018년 03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45~57
지금 이 세상에는 약 75억 명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을 믿지 않아 구원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들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형식적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평생 교회생활을 했고, 교회 지도자로서 생활했고, 기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생활했다고 해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아무리 복을 많이 받았다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영원한 지옥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보다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45절에 보면,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것보다 귀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고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을 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똑바로 알아야 신앙생활을 똑바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진리 되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인가 똑바로 알아야 올바르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똑바로 알고, 올바르게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힘씁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났음을 증명하는 열매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깊이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워 진리를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행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체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분이심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합니다. 이런 사람은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전하신 천국 복음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표적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기에 충분합니다.
장사 지낸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메시아 외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니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될까봐 걱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46~47절에 보면,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들은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신 것을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까 그것을 걱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이 좋아서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죄를 많이 범한 사람들은 가슴이 내려앉을 것입니다. 기쁘지 않고 걱정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고생 많은 세상에서 이제 고생이 끝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뻐 뛰고 즐거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나사로를 살리신 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을 걱정했습니까? 그들은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속에 마귀가 들어있는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겸손히 무릎 꿇고 눈물 흘리고 회개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모두 용서 받고 구원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완악해졌습니다. 더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로 믿는 것을 보고 걱정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그들을 책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그들은 더 이상 지도자로서 대접 받을 수도 없고, 머리를 들 수 없는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메시아, 유대인의 왕으로 추앙 받으면, 로마제국과 충돌할 것이요, 이로 인해 유다는 로마에 의해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이런 생각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몰려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3백 용사를 택하셔서 그들과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면, 3백 명이 수십만 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을 걱정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시면, 당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런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일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러다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추대한다면, 강대한 로마제국이 쳐들어와서 자기들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이들은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모의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47~53절에 보면,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공회를 모았습니다. 공회의원의 1/2이상은 사두개인이었고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행 23:8). 이들은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내세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신앙이 전혀 없는 불신자와 같았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타락한 세속주의자였습니다. 이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려고만 하는 정치꾼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제사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완전히 타락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천사도 영도 다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자고 할 때에는 하나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먼저 이스라엘이 망하고, 그 다음에 유다가 멸망했습니다. 멸망한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신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히스기야 왕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할 때에 망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이 망하고 120년 후에 똑같이 타락하여 망했습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신우상을 섬기고 강대국을 의지했으니 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세속주의자였고,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리새’라는 말은 ‘구별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은 구별되게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잘 믿는 척 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척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주 사랑합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이끌어 나가니 70년 경 로마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버렸으니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 요한복음 11장 49~50절에 보면,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신앙도 양심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 것인가’만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오직 로마제국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강대국만 바라봤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망했습니다. 로마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따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 해도,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3절에 보면,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이 작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이들은 육체에 속한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요, 젖먹이 신자입니다. 이들은 사람을 따라 행합니다.
사람을 따라 행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따라 행해서는 안 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요, 축복 받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길이 멸망의 길인 줄도 모르고 넓은 길로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함께 간다고 해도, 그 길이 멸망의 길이라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난이 있다 해도, 그 길이 생명의 길이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이라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갑니다. 겉을 보면, 예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실상은 믿음도 없고, 양심도 없는 잘못된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세상에 많습니다.
신학박사 중에도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각 교단을 이끄는 지도자들 중에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천지창조와 수많은 이적을 사실이 아니요, 인간들이 꾸며낸 신화라고 주장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을 많이 행합니다.
그들은 왜 이런 짓을 할까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똑바로 모릅니다. 진리를 똑바로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54~57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내렸을 때, 열 번째 재앙은 장자를 멸하는 재앙이었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에는 재앙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양과 같은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어린 양이십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에 맞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를 맞추시기 위해 드러나게 다니시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51~52절에 보면,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려면,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악역을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합의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죽으심으로 많은 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가룟 유다와 함께 쓰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막 14:21)”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 역시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면 뭐합니까. 오래 살면 뭐합니까.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쓰임 받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남은 생애 동안 남을 죽이거나 남을 헤치거나 남에게 고통을 주는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모든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에큐메니컬운동이 시작되어 자유주의 신학과 그것을 반대하는 신학이 생겨 교회마다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제가 다녔던 교회는 보수적인 교회였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곳에서 발행한 주일학교 공과교재를 보면,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바다의 물이 빠지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갈 수도 있었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빼버렸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잘못된 것을 하나하나 찾아내셔서 그것을 전국에 배포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목사님을 도와 그 일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쓰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분열되어 서로 싸우는데, 평소 교회에 잘 나오지 않고 성질이 사나운 사람들이 나서서 마치 의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행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것을 보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저렇게 악할 수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축복 받은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은혜 가운데 서로 사랑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입을 다물고 기도만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이것을 날마다 체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 백성을 내가 모아주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모아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고,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끝까지 승리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항상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큰 복입니다.
사람을 따라가지 말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만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만 붙잡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악한 일에 쓰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항상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따라가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