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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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28 11:31 조회3,538회 댓글0건본문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2018년 03월 18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28~44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 중 일곱 가지만 뽑아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조금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4복음서 중 가장 늦게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빠진 내용이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본문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기적 중 마지막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사 지낸 지 나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 기적에 대해 아주 길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을 사도 요한은 왜 이렇게 길게 기록했을까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1주일 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능력 있으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수 있는가 사람들은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하시기 위해 장사 지낸 지 나흘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에게도 확신을 가지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걸어가셨습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를 향해 예수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만 전하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행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사 지낸 지 나흘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시요,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로 하여금 확신하게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화장(火葬)하여 유골(遺骨)의 가루를 바다에 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부활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부활합니다. 나사로는 장사 지낸 지 나흘 되어 냄새가 났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물에 빠지거나 화재로 인해 죽어 시체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다 부활합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다시 살아난 후 예수님을 위해 이전과 다르게 살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나사로는 다시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죄 많은 세상, 고난 많은 세상에서 조금 더 살다가 죽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1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복음 12장 9~11절에 보면,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사로를 보는 사람마다 예수님께서 살리신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로 자체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대제사장들이 알고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렸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 받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는 보람 있게 산 것입니다. 이보다 더 귀하고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복을 많이 받으며 사는 것도 좋지만, 이보다 귀하고 더 큰 복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보다 귀하고 큰 복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이 복을 받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28절에 보면,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동네에 오셨다는 것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뛰어나가지 않고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마리아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동네에 오셨을 때에 마리아가 뛰어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섭섭해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29~32절에 보면,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1절에 보면,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2절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이 컸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조금만 더 빨리 오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기 전에 예수님께서 여기 오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이 마리아에게는 아픔이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33~35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눈물은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인간들의 눈물과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것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의 믿음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 11:4)”고 말씀하셨고,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전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사람이 죽은 것만 생각하고 슬퍼했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의 일만 생각하고 난리치며 살면, 하나님께서 비통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로가 죽은 것만 생각하고, 슬퍼하고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100% 불가능해 보인다 해도, 예수님은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100% 신뢰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망하거나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든지 천국에 가서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며 살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사람들과 함께 눈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는 자와 함께 우셨습니다.
여러분은 상가(喪家)에 가서 어떻게 위로하십니까? 유족(遺族)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다면,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함께 울어주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욥기에 보면, 욥이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 욥을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정말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난 후, 친구들은 욥에게 따졌습니다. 죄 없이 이런 재앙을 당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욥을 괴롭혔습니다. 나중에 욥의 친구들은 책망을 들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36~40절에 보면,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을 보배롭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보다 보배로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보다 더 귀한 보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보배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보배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만 있으면 구원 받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구하는 대로 다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살 수 있을까요? 무조건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은 변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우리는 영광을 볼 것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나병에 걸려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는 엘리사 선지자가 사마리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금은보화를 마차에 싣고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나아만은 아람의 구국공신(救國功臣)이었습니다. 임금이 하늘처럼 높여주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나아만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금은보화를 가지고 왔으니 웬만하면 뛰어나가 굽실거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사자(使者)를 그에게 보내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왕상 5:10)”고 했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조금만 소홀히 대접해도 화를 냅니다. 감사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설교를 듣다가 기분이 나쁘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합니다. 투덜거립니다. 그래서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교만하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교만하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교만하면 비판을 잘 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지 못합니다.
엘리사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화가 나서 물러가며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왕하 5:11~12)”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의 종들이 그에게 와서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왕하 5:13)”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나아만은 뒤늦게 깨닫고 엘리사가 말한 대로 요단 강물에 몸을 일곱 번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100% 순종하세요. 끝까지 순종하세요. 무조건 순종하세요. 입 다물고 순종하세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영광을 볼 것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찾아와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7:13)”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으시고 다만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여 병이 나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 11:40)”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조건 믿고 순종하면, 영광을 볼 것입니다.
나병환자 열 명 중 사마리아인 한 사람은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이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 17: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기도 응답 받은 것을 간증하는 것을 들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했는가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큰데,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이제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에다가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고 말씀하셨습니다.
맹인은 실로암 못에까지 어떻게 갔는지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맹인은 눈이 밝아졌습니다. 순종할 때에 영광을 보게 됩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순종하면 됩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41~42절에 보면,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먼저 믿음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은혜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세요. 받은 은혜에 감사할 뿐 아니라, 은혜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려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4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 후에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살아있는 나사로를 부르시듯이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44절에 보면,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 1:3)”고 말씀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는 바다를 향해 예수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고 말씀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 나는 나사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예수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만 부활합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이요, 생명의 부활입니다.
둘째 부활은 심판의 부활입니다. 이때 부활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예수님을 잘 믿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나사로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각 사람의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8~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4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에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아프고 병들고 상처 입는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하는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영생하는 몸으로 부활하는 날, 우리는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기뻐 뛰며 춤출 것입니다.
죽음으로 인해 헤어질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부활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언제나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험악한 세상을 바라보며 낙심하거나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게 하옵시고, 하늘과 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언제 죽더라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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