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13 11:17 조회3,606회 댓글0건본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2018년 03월 11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17~27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되었을 때에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19절에 보면,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만 오신 것이 아니고,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가족을 위로하러 나사로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나사로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뒤늦게 나사로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식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에 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슬픔을 당한 가정에 가서 위로해주는 것을 더 큰 선행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사람들로부터 평가 받습니다만, 우리가 죽은 후에는 가장 올바르게 평가 받습니다. 훌륭한 사람은 죽고 수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사람들은 훌륭한 분, 좋은 분으로 기억합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사랑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나사로는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집에 와서 나사로의 가족을 위로했습니다.
죽은 후에도 사랑과 존경을 받으려면, 평소에 사랑을 많이 베풀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평소에 잘 도와주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보살펴주고, 사랑을 베풀면, 우리가 죽은 후, 그들이 사랑을 잊지 못하고, 찾아와서 위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집에 있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21절에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원망 섞인 말을 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 것은
첫째,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바로 오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예수님께서 늦게 오신 것을 원망 불평하는 마음으로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둘째, 요한복음 11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마르다는 예수님께 원망 섞인 불평을 했습니다.
셋째, 조금 늦게 오신 것은 괜찮은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을 때에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너무 늦게 오신 것에 대해 원망 섞인 마음으로 불평했습니다.
급한 일을 당하여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빨리 응답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시고 응답이 늦어지면 속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마르다도 속상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빨리 오셨더라면, 예수님께서 계속 함께 계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여 예수님께서 늦게 오신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다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첫째,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요한복음 11장 3~4절에 보면,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의 결과까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지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죽을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죽은 자도 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죽을병을 고치시는 것도,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도 예수님께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마르다가 이것을 믿었다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원망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니, 나사로가 죽었다 해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마르다가 믿어야 할 텐데, 마르다는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광야에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한 달 안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광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견디기 어려워 하나님을 원망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날마다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나아갔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인이 나타나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 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저 광야만 바라봅니다. 광야에서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습니다. 불뱀과 전갈이 나옵니다.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양도 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광야만 바라보며 원망 불평했습니다.
광야에서는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살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불안합니다. 저절로 원망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시는가를 기대하며 나아가면, 마음의 평강을 누립니다. 늘 감사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거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가장 적당한 때, 우리에게 좋은 때에 이루어주십니다. 이것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잘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답답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6장 30~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로 밤낮 고민하는 것은 믿음이 작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하다 해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한 생각은 덮어두고, 바르게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환난이나 시험이 왔을 때, 박해가 있을 때, 마음의 평강을 잃어버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 역시 믿음이 작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6~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큰 환난과 여러 가지 시험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전도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할 말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죽는다면 천국에 갈 테니 좋은 일이요, 면류관을 받을 테니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사명을 다하고 주님 앞에 갈 시간이 되었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갈 것입니다. 사명이 아직 남아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히 우리에게 손대겠습니까. 그러므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마음이 약해지기 쉽고, 근심하기 쉽고, 불안해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평소에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깨어 기도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무장되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담대함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생기든지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염려할 시간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 찹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기도하라는 사인인 줄 알고 무조건 기도하세요. 문제가 심각하다면,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몸부림치며 기도하세요. 금식하며 기도하세요.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성령의 은혜가 임합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기쁨이 생깁니다. 그리고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충만해지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생기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체험합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체험합니다. 모든 문제가 축복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합니다. 믿음이 좋아집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뒤, 성도들이 많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말썽을 일으키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밤을 새며 부르짖었습니다.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경건해졌습니다.
제 믿음이 강해지니 시험이 없어졌습니다. 마치 안개 사라지듯이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 후, 설교가 좋아졌습니다. 기도의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 부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교회를 부흥시키시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는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말썽을 일으키는 성도가 생기면, 오히려 반갑습니다. 교회가 또 부흥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한 번, 두 번 경험해보니 문제가 생겨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21~24절에 보면,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마르다가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나인 성의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것이라고 마르다가 믿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반응했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날’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물론 마지막 날에는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주의 주,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십니다. 심판 주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고 죽었던 사람은 이때 부활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다시는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기뻐 뛰며 춤추고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 거짓 선지자들과 불못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보면,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통곡할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심판이 남아있습니다. 지옥 불에 들어가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속히 재림하시기를 고대할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기도하며 예수님께서 속히 재림하시기를 고대할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도 예수님께서 속히 재림하실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거룩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밤낮 못된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만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는 죽음이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 후,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영적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적 죽음입니다. 결국 지옥에서 멸망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죽음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면, 마귀의 종이 됩니다. 타락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 가운데 살다가 늙어 육체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몸이 병들고 늙고 쇠약해져서 죽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겪습니다. 병으로 고통당합니다. 이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은 것으로 말미암은 저주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지옥 불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불행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행위로는 구원 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가장 복된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살아납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부활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에 보면,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을 때에는 우리의 몸이 썩는 몸, 욕된 몸, 약한 몸입니다. 우리는 육의 몸을 가지고 있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부활할 때에는 썩지 않는 몸, 영광스러운 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었다가 부활할 때에 육신의 모습 그대로 부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매장(埋葬)했든 화장(火葬)했든 수장(水葬)했든 다 부활할 것입니다. 천사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완전한 몸, 썩지 않는 몸,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늙지 않고 영생하는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 후에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부활과 생명이 되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마음에 붙잡고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세상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장차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며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