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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0장

나는 선한 목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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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1-17 17:08 조회3,6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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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선한 목자라

2018년 01월 14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0:7~18

 

요한복음 10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을 절도와 강도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0장 6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바리새인이 알았다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향해 화내고 대들며 야단법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영안이 어두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7~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 데로 들어온 사람들은 절도요 강도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과 상관없이 양의 우리에 들어온 사람들은 절도요 강도라는 의미입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마음에 예수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은 절도요 강도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과 목자는 문을 통해 우리에 드나듭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구원 받습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받습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모든 종교는 똑같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교단과 교파가 아주 많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교단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정통 보수신앙을 가진 신학자가 여러 교단, 교파의 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 받을 수 있는 이름이 없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그 신학자를 가리켜 독선적이라고 하며 그를 공격했습니다.

신학박사요 목회자이지만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인입니다. 이들은 교회를 없애려고 하는 이단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유럽에는 교회가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목표한 대로 되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교회는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습니다.

교회에 성령이 없으면, 참된 신자는 그 교회를 떠납니다. 그런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 보면,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단은 다른 예수를 전합니다.

 

요한일서 4장 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들 중에는 미혹의 영도 있고, 사탄의 영도 있고, 적그리스도의 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이라고 해서 다 성령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거하시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1장 6~8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구원의 문이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것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아무 종교나 믿어도 구원 받는다면, 그 길은 넓은 길입니다. 구원의 길이 좁은 이유는 오직 한 분,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둘째, 죄의 짐을 지고서는 생명 문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구원 받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생명 문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의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의 짐을 벗어버렸을 때, 우리는 좁은 문을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짐을 벗어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조건 용서해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시고 기억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회개한 후에도 마음에 거리낌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회개한 후에는 “나는 죄 사함 받았다.”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구원의 문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주여 주여” 한다는 것은 ‘주님은 나의 주인이시요, 나는 주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은 자신의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인의 것입니다. 생명도 주인의 것입니다. 그래서 종은 자신의 생각대로, 자기에게 좋은 대로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 된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온전히 그렇게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이 세상이 악하고,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고, 죄성이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밤낮 회개합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구원 받은 자는 회개합니다.

 

구원 받은 사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몸부림치고 회개합니다.

“아버지, 제 힘으로는 안 됩니다. 제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주세요.”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선물을 보내주시고, 성령께서 도와주시면,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자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결심하고 노력합니다.

 

마태복음 7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는 매우 적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 믿는다는 사람은 많지만,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났기 때문에, 공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는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을까요?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시고,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하시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키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을 읽다 보면 무섭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 할까.’ 의문스럽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매매하지 못하게 하고 잡아 죽이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다 구원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해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주님께서 이기시므로 주님과 함께 이깁니다. 그러므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큰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도둑이 어떻게 다른가 비교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은 양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도둑은 양을 지키거나 보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둑은 양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도둑 중에 가장 무서운 도둑은 사탄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도둑질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믿음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믿음은 보물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다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믿음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모든 복을 받을 것입니다.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도둑질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게 합니다. 범죄하게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타락하게 해서 멸망하게 하려고 발악합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잠시라도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7장 5절에 보면,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지켜주어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제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시험하고 틈탑니다.

 

하와는 아담이 없을 때에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와 같이 있었다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 있다가 마귀에게 틈을 내주어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믿음을 도둑질하고 영적으로 타락하게 해서 멸망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양인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고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1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바리새인을 선한 목자와 삯꾼에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삯꾼에게 품삯을 주고 양을 맡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삯꾼은 목자가 아닙니다. 자기의 양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양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나운 이리 떼가 몰려오면, 삯꾼은 무서워서 자기 혼자 살기 위해 도망합니다. 양들이 이리에게 잡혀먹든 어찌 되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이 그런 사람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십니다.

사랑하는 만큼 희생이 따라옵니다. 사랑의 증거는 희생입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줍니다. 이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 중에 새끼를 물어 가면 목숨을 걸고 따라가 사자의 입에서 양 새끼를 건져내었습니다. 그래서 양 새끼 한 마리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아버지는 안심하고 다윗에게 양을 맡겼습니다.

그는 형들과 달랐습니다. 다윗은 양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양 새끼 한 마리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양을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14~15절에 보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관심이 생깁니다. 어디 아프지 않은가, 뭐가 먹고 싶은가 관심을 갖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예수님께서는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마태복음 6장 30~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잘 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압니까?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똑바로 알고,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나타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체험하게 해주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기 위해 애씁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전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공군 군목으로 복무할 때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일월산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 복무하는 400~500명의 전 장병을 구원 받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맞이한 주일, 한 명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낙심했습니다. 날마다 강단에서 울며 “아버지, 왜 저를 이런 곳에 보내셨습니까? 전 장병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에야 너를 구원할 수 있었는데, 네가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하고 구원 받게 하려면 네가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죽어도 좋사오니 전 장병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나아가니 하나님께서는 저를 중심으로 부대가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대장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전 장병을 세례 받게 하는 일에 부대장이 앞장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최고의 사랑은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한다면, 영혼을 구원받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본문 요한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이 있다는 것은 이방인 중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사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도 다 인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선교가 필요한가를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이 우리에 들어올 수 있도록 열심히 전도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와 선교를 한 군데서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10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하던 곳에서 박해를 받으면, 그곳에 있지 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는 의미입니다. 전도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도할 수 없는 곳에 머물러있으면, 몇 사람이나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 놓고 전도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다 다니지 못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자원하여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승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교회이므로 예수님과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0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 받고,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은혜가 임하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죄를 깨닫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통회하고 자복하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거룩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기쁘고 좋습니다. 덩실덩실 춤추고 싶어집니다.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 보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항상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환난이 심하고 어려움이 많은 이때에 오늘 주신 말씀을 붙잡고, 선한 목자 되신 주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살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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