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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9장

잘못된 지식이 가져온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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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24 16:39 조회1,4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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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지식이 가져온 비극

 

잘못된 지식이 가져온 비극

2017년 12월 10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9:13~25

 

4복음서를 보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음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안식일을 범한 죄인으로 판단하고 예수님을 계속 비난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면 큰 비극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맹인의 눈을 뜨게 해준 것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평소에 병을 고치지,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그들이 안식일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2장 1~3절에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복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특별히 축복의 날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복된 날입니다. 거룩한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입니다.

 

마가복음 2장 27~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의 노예가 되었거나 우리가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안식일을 특별히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 서부에 금이 많이 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가서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하여 많은 금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마치 경쟁을 하듯 서부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청교도들은 열심히 달려가다가도 주일이 되면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사람도 쉬고, 말도 쉬게 하고, 마차도 수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한 주간 무사히 달려오게 하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날을 거룩하게 보내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주일이 되어도 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계속 달렸습니다. 그렇게 가니 그만큼 더 빠릅니다.

그런데 주일을 잘 지키며 달렸던 청교도들이 서부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쉬지 않고 달렸던 사람들은 말도 병들고 마차도 망가지고 사람도 병들어서 중간에 쓰러져서 청교도들보다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아예 목적지에 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1주일 중 하루를 쉬게 하시고, 그 날을 복되게 하셔서 우리의 영과 육이 복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1주일 중 하루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축복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1주일 중 하루를 구별하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평소에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던 일을 안식일에 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도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찬양대, 주일학교 교사 등으로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날입니다. 육신 뿐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은혜로 충만하게 하여 믿음을 강건하게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하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일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쉬지 않고 행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쉬지 않고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고통 받는 자들을 치료하시는 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쉬지 않고 행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제일 바쁘게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한 것은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가장 바빴습니다.

마태복음 12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7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다윗과 함께한 자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진설병은 제사장들이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자비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먹는 것을 주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2장 9~13절에 보면,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은 구하면서 병으로 평생 고통 받는 사람을 고쳐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누가복음 13장 10~17절에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9장 16~17절에 보면,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보통 사람이 사람의 눈을 어떻게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가 아니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믿음이 좋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아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했습니다(요 9:22).

본문 요한복음 9장 18~25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자를 출교했을 뿐 아니라,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전하다가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능욕 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어디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어디에 있든지 순교할 것을 각오하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6~14절에 보면,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는가를 물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께 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분이신데, 대제사장들이 시기하여 예수님을 죽이라고 한다는 것을 빌라도 총독은 알았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시기했을까요? 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였지만,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시려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니 그들의 죄가 다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지 않으면, 완전히 매장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께 죄를 뒤집어씌워 죽이려고 거짓 증인들을 동원하여 거짓 증언하게 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혀있던 강도도 예수님께서 죄 없이 죽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41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빌라도 총독과 강도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이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말씀을 전하시고 행하신 일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말하면 출교당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죄인 중의 죄인이요, 원수 중의 원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을 향해 “저들을 멸하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니 그들을 사하여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신 것은

첫째, 그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몰라서 이런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로서 멸망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 원수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작은 죄를 지은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던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로마서 10장 9~13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옆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는 평생 사람을 죽이고, 사람에게서 빼앗고, 온갖 나쁜 짓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주의 이름을 불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가운데 빠져서 죽음에 이르면, ‘나 같은 죄인은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때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원수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찾으면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입으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거나, 형식적으로 주님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옆에 있던 강도가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불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믿음은 진실해야 합니다. 형식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영접한 사람에게는 증거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좋아합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주의 종들, 주의 제자들, 주의 일을 하는 사도들을 영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어린 아이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 하나라도 영접하고 돌보고 사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증거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자기 안에 주님께서 계신 것을 압니다. 만약 그것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버림 받은 사람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15~17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누구신가 똑바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셔서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씁니다. 믿음이 부족하여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 때에는 반드시 회개합니다.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후, 베드로는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셔서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강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죄와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세요. 열심히 배우세요. 그래서 진리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잘못된 지식을 가지면, 큰 비극이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앞으로 그런 비극을 보지 않으려면,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오, 주여,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짐으로 지금 그 자손들까지 얼마나 비극을 당하는지요. 죄 없는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을 믿지 아니하고, 오늘날까지도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올바른 지식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알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끝까지 끝까지 승리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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