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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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24 16:21 조회1,274회 댓글0건본문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2017년 10월 01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8:1~12
본문 요한복음 8장 1~2절에 보면,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며 많이 수고하셨을 텐데, 주무시지 않으시고, 감람 산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성전으로 돌아오셔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일은 기도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과 하나님의 일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기도로 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엡 1:4).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예수님의 일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당당히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외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면 100% 성공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100% 불가능해보여도, 성령께서 만져주시면, 한 순간에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피곤하다 하더라도 기도하며 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은혜를 받아 큰 믿음으로 무장할 수 있습니다.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분별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지만, 충분히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일이 많고 피곤해서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쳐버립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져서 쉬고 싶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실패합니다.
1982년 제가 미국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미국에 가서 영어로 강의 듣고 모든 것을 영어로 해야 하다 보니 영적으로 메말라버렸습니다. 견딜 수 없었습니다. 충분히 기도해야 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사막처럼 메마른 상태로 공부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으며, 박사가 된다 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나는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구원 받게 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내 심령이 이렇게 메말라서야 되겠나. 박사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기도해야겠다. 기도해야 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들어가서 노는 작은 집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기도하고, 성경을 30분 이상 읽고 난 후에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듯이 제 심령이 기쁘고 좋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셔서 페이퍼를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때 미국 전 지역에 있는 교회에서 초청 받아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 주도 쉬지 않고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공부할 때에도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충분히 기도하면, 공부에 지장이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쉽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이렇게 하면, 성령의 은혜로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곤할 만큼 일을 많이 하셨지만, 감람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충분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감람 산에서 돌아오셔서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5)”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근거로 말했는데, 신명기 22장 23~24절에 보면,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끔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음하는 사람은 이렇게 망한다’는 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여 간음하는 자가 생기지 않게 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 당시에 간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고린도전서 6장 18~20절에 보면,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안에는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멸망해야 하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9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3절에 보면,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5)”라고 질문했습니다.
6절에 보면,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죽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이라”고 말씀하셔서 돌로 쳐 죽이면, 예수님께서 로마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로마가 여러 나라를 점령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는데, 각 나라마다 법과 풍습, 윤리 도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금지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로마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죽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예수님께서는 살인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 할 수도 없고, 치지 말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뛰어난 지혜로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뛰어난, 완전한 지혜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시험도 이기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 충만하면, 성령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이 지혜는 완전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 충만한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잠언 2장 7절에 보면,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 은혜 받은 성도들에게 완전한 지혜를 주십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집사로 택했습니다.
일곱 집사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의 문제를 잘 해결했을 뿐 아니라, 주의 종들이 마음껏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서 예루살렘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갖는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맡아도 일을 잘 감당합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분별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처리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화평하게 하면서 일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 되어 기쁨으로 일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앞을 내다보고 미리 대비하며 일합니다.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일합니다.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이 그러셨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출석 교인 수가 1천 명이 넘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부흥한다면, 앞으로 수만 명이 모일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기도하며 의논했습니다. 그 결과, 땅부터 준비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나중에 땅을 준비하려고 하면, 그때는 땅값이 비쌀 테고, 땅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땅을 사고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땅 장사해서 돈을 번 적은 없습니다. 교회가 계속 부흥해서 땅을 미리 사두었는데, 오늘날 큰 성전을 짓고, 주차장도 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혜 있는 사람이 일을 하면, 교회는 부흥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아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몸을 굽히셔서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쓰셨는가 모릅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돌로 치려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이렇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감정이 격해지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이 격해지면 잠시라도 기도하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때려죽이기 전에 잠시라도 기도했다면, 잠시라도 생각했다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잠시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였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돌로 치기 전에 자신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돌로 치려고만 하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려고 아무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몸을 굽히셔서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 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은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의로워 보이고 거룩해 보여도, 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양심이 바른 사람이라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났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주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큰 죄인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은혜를 충만히 받은 사람의 고백이요,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자신의 죄를 생각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교만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교만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볼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의 눈에는 다른 사람의 죄만 보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욕하고 정죄합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이 어떻게 재판관 노릇을 하겠습니까. 재판관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없습니다.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비판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 많은 사람인가 생각해보세요.
갈라디아서 6장 1절에 보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 범죄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팔 불어서는 안 됩니다. 떠들어서는 안 됩니다. 온유한 심령으로 그 사람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같은 죄를 범하기 쉬우므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험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말씀하신 후에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 쓰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9절에 보면,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양심의 힘이 얼마나 큰가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악하고 완악한 사람이라도 양심의 소리가 그들을 두렵게 했습니다.
인간이 타락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양심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법이 있고, 질서가 있습니다.
짐승들은 본능대로 삽니다. 그런데 요즘 인간들이 짐승과 비슷해져서 본능대로 행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본능대로 살면, 결과는 비참합니다.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은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려는 본능대로 살았습니다. 별별 짓을 다 했습니다.
그렇게 산 결과.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사는 것을 미워한다고 고백했습니다(전 2:17).
왜 그렇게 고백했을까요?
첫째,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1천 명이나 되는 여자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 여자들만큼 불행한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솔로몬 자신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했습니까.
둘째, 나라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솔로몬은 고통과 고민 속에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능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육신의 향락을 따라 살면,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먹고 싶지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은 보지 말아야 합니다. 갖고 싶어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은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과 짐승의 차이입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겨진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면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바르게 살지 않으면, 마음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생기고, 불안함이 생기고, 걱정이 많아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면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한 사람의 죄는 기억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기록되어있는 것을 모두 도말해버리십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잃어버린 것을 다 회복시켜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십니다.
요엘 2장 25절에 보면,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과거에 잃어버린 것을 다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시요, 구세주시요, 죄로 인해 더러워진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날마다 문 밖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거지의 모습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좋은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라도 죄 가운데서 멸망하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했어도, 우리를 죽이시지 않으시고,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10~1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 여자를 돌로 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돌로 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살다 보면, 계속 죄를 범합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타락의 근성이 우리 안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는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아버지, 용서해주세요. 이 악한 세상에서 제 힘으로는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세상에 나가면, 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 힘으로는 안 됩니다. 저를 살려주세요. 성령이여, 오셔서 저를 붙잡아주세요.”라고 회개하며 부르짖으면,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세상을 능히 이기고, 죄악을 끊어버리고, 거룩하게 살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스스로 정죄하거나 망하는 길로 가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사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믿고, 주님께 돌아와 주님을 떠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성령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지만,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믿음도 충만하고, 능력도 충만하고, 마귀와 세상을 이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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