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빛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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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01 14:19 조회3,599회 댓글0건본문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는 세상의 빛이니
2017년 10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8:12~20
본문 요한복음 8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입니다. 죄악으로 인해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 절망 가운데 사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복음입니다.
이 세상을 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점점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이 빨리 망하도록, 이 세상에 심판이 빨리 임하도록 재촉하는 것 같습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극도로 타락하여 홍수 심판으로 말미암아 멸망했습니다. 노아 식구 여덟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었습니다.
창세기 6장 5~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당시의 타락상을 보면,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은 항상 악한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상을 더 이상 가만히 두실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과 짐승, 가축까지 다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도 소돔 고모라 성의 사람들이 타락하여 유황 불 심판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9장 4~9절에 보면,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동성연애,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처럼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하기 부끄러운 죄악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법적으로 공인하여 그런 짓 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보호하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이 세상은 소돔 고모라처럼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돔 고모라에서는 늙은이든 젊은이든 부끄러운 짓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만히 보시겠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유황 불로 심판하셔서 그들은 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소돔 고모라보다 더 타락하여 이 세상은 암흑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점점 임박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전할 때에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문 앞에 이른 듯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 일어난 쓰나미로 인해 수십만 명이 죽었습니다. 2004년 12월 26일에 일어났습니다.
성탄절을 보내려는 해변에 있는 교회에 무슬림들이 불을 지르고 교회를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사람들은 무슬림 피해 산 속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쓰나미가 몰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모두 산 속에 옮겨놓으시고, 그 지역에 사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쓸어버리셨습니다.
평소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지만, 마지막 때, 환난의 때, 심판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특별히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환난의 때에 오히려 빛나고, 큰 기쁨을 얻고, 놀라운 간증거리가 많아질 것입니다.
2011년에는 일본에서도 쓰나미가 일어났습니다. 한 도시 뿐 아니라, 그 지역을 다 쓸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여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그 지역에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금년에는 미국에 토네이도가 불어 닥쳤습니다. 작년에 불어 닥친 것보다 두 배가 셌습니다. 구름 기둥 몇 개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지나가는 곳에는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공항을 덮치니 비행기도 사라져버렸습니다. 토네이도가 지나가는 곳에는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웠음을 보여줍니다.
지금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그냥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자연재해가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다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악으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습니다. 이제는 죄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 받을 수 있는 문을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3장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정죄 받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악한 행위가 드러날까 생각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합니다.
도둑은 달밤을 싫어합니다. 캄캄할수록 좋아합니다. 달이 밝으면, 쉽게 붙잡힐 수 있기 때문에 나쁜 짓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두워야 도둑질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둑은 어두운 것을 좋아합니다.
오래 전, 서울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한 적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 어려워 교회 가까이에 있는 여관을 강사 숙소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관은 대낮에도 어두웠습니다. 보니까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공장에서 입은 옷 그대로 입고 여관에 와서 잠시 자고 갔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렇게 죄를 많이 범하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저처럼 며칠 동안 여관에 머무는 사람들을 여관에서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게 방을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멸망할 인간들은 빛을 싫어하게 되어있습니다. 뇌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뇌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왕따 시킵니다.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음란한 얘기를 잘 하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교수가 음란한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웃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저분은 신학교 교수니 설교하시는 분이신데, 말씀을 전하는 입으로 어떻게 저런 추한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 목사님을 왕따 시켰습니다. 그 교수도 이 목사님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은 자기들과 손발이 맞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악을 싫어하고 정죄하는 사람을 아주 미워합니다.
잘못된 사람을 보면 마음 아파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과 똑같이 행동한다면, 함께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하지만, 희망은 아직 있습니다. 사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이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면,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5~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면, 빛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타락해도, 빛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빛의 아들로서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고,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느라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장차 받을 영광을 생각하면, 그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길에는 생명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중에 고난을 많이 겪는다 해도, 괴로워하지 마세요. 주님을 따르다가 고난당하는 것은 하늘의 상급이 되고 영광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13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신명기 19장 15절에 보면,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혼자 자신을 증언하는 것은 참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요 8:14)”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모르고, 진리를 몰라서 어리석게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인도에서는 길거리에 소가 제멋대로 돌아다닙니다. 그 소를 잡아먹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소를 신으로 여깁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공군 군목으로 3년 동안 복무했습니다. 최첨단을 걷는 공군에서 돼지머리를 갖다놓고 부대장 이하 전 장병이 돼지머리 앞에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제사 지내기 위해 만들어놓은 단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상사, 중사, 하사와 장병 몇 명과 쇠망치를 가지고 올라가서 단을 다 때려 부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요 1:1). 예수님께서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있을 곳을 다 예비하시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서 오시고, 어디로 가시는지 몰랐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영안이 어두웠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 증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똑같이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증언이 참되니(요 8: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가지로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대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성경이 그림자라면, 예언대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실물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4복음서입니다.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계시하신 말씀이 가장 정확하고 가장 분명하고 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4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모르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몰랐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모르니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19절에 보면,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예수님 혼자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바다 위를 걸어갈 수 있습니까. 풍랑이 이는 바다를 향해 예수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잠잠해졌습니다. 죽은 자를 향해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니 죽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영안이 어두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육체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세상의 성인(聖人)들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크게 실수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다메섹에 많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없애려고 기세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거기서 직접 만났습니다. 그 후, 바울은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직접 만난 후, 예수님께서 메시아시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갖게 된 것이 감사하여 그동안 굉장하게 여겼던 것을 모두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런데 평생 교회 다녔지만 예수님을 똑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의 속에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 육에 속한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그 속에 성령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어리석게 여깁니다. 이들은 성령과는 거리가 멉니다.
교회에서 왕 노릇 하는 장로님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밤에 기도하면, 장로님이 난리를 치며 성도들을 쫓아내버립니다. ‘성령’이라고 하면 기겁합니다. 성령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희한한 분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속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고, 주님을 위해 삽니다.
성품이 착하고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생활을 모범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모범적인 면이 많은데,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존경 받는 사람이요, 인격적으로도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성도 중에도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모범적입니다. 그런데 성령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이런 사람이 은혜를 받고, 성령을 체험하면 변화됩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성령에 대해 깨닫습니다. 그래서 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자원해서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기쁨으로 합니다. 억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형식적으로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은 예배 자리에 자원해서 나옵니다.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쁨으로 예배드립니다.
봉사할 때에나 헌금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원하여 기쁨으로 주님 앞에 드립니다. 모든 것을 자원하여 기쁨으로 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 성령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세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귀한 말씀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주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특별히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을 가지게 하여주셔서 항상 자원해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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