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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8장

위에서 난 자와 아래에서 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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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01 14:25 조회3,5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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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난 자와 아래에서 난 자

 

위에서 난 자와 아래에서 난 자

2017년 10월 22일(주일예배)

본문/ 요한복음 8:21~30

 

본문 요한복음 8장 21~24절에 보면,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 받습니다. 멸망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많아서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멸망합니다.

 

우리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를 다 사함 받고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사함 받지 못했고, 죄 가운데서 멸망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첫째,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 가에 앉아 쉬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사마리아 여자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죄가 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고, 구원 받았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고대하고 고대했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그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기도하셨을까요?

에스겔 18장 2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이 죄에서 돌이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라도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와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온갖 죄를 범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눅 15:18~19)’고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회개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과거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지은 죄를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들을 무조건 용서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지옥에 들어가야 마땅한 인간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과거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끌어안아주시고 입을 맞추시고 기뻐하십니다. 좋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자랄수록 사랑이 커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고, 죄가 많은 악독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구원 받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그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뜨거워집니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보세요.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가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살고, 죽는다 해도 주님을 위해 죽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보면,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둘 다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세상을 다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두 여인과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간음한 여인과 같습니다.

 

빌립보서 3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빠져있습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만 생각합니다. 물론 땅의 일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사람이요, 천국 시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행함과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믿음만큼 행하고 순종하는 것을 통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입으로 믿는다고 해도 가짜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100% 불가능해도, 하나님께는 100% 가능합니다.

중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100% 불가능한 일이 기적처럼 이루어져서 중국 전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의사가 곧 죽는다고 진단했다 해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살리실 수 있으십니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말씀하시니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절대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서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셔서 우리가 축복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고, 말씀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와 믿음이 없는 자가 분명히 나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왜 순종하지 않을까요?

첫째, 하나님과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말씀하신 대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텐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은 빨리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26~27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 ‘보내신 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죄 가운데서 멸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메시아를 눈으로 보고, 그분의 말씀을 귀로 직접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3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주요, 심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대인들은 아래에서 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21~23절에 보면,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나신 분이시지만, 유대인들은 아래에서 난 자들이기 때문에 깨닫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고, 죄 가운데 살다가 죽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위에서 난 자요, 하나는 아래에서 난 자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요, 하나는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위에서 난 자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9~13절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난 자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저와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5~17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위에서 난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요, 천국 시민권을 가진 자입니다. 육신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난 자는 이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자, 마귀의 자녀입니다. 이들은 평생 마귀의 종 노릇 하다가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서 살게 됩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래에서 난 자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지 않음으로 죄 가운데서 죽을 사람입니다.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25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네가 누구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질문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사야 6장 9~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저주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둔해지고,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겨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알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저주 받은 이들은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25~28절에 보면, “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그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인자를 든 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강도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0~54절에 보면,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혼자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과 언제나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항상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목회자만 하나님의 증인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님을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난 하나님, 우리가 만난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 우리가 체험한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체험하신 분들, 기도하여 응답 받고 하나님을 체험하신 분들은 체험한 것을 증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해서 구원 받을 기회를 그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말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정확하게 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예수님을 똑바로 알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살려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마귀들이 발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는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본받으려면, 주님을 본받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마음에 깊이깊이 새겨주시고, 이 말씀 붙잡고 주님을 본받아 살아가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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