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9-29 11:20 조회3,366회 댓글0건본문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2017년 09월 24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7:40~53
요한복음 7장 3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이 사람은 참으로 그 선지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분이야말로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멸시하고 천대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람이라고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똑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때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모두 이단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잡아 감옥에 집어넣어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다메섹에 많다는 듣고 그들을 붙잡아 감옥에 집어넣으려는 생각으로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사도 바울은 완전히 변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7~9절에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난 후,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을 모두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가진 것은 큰 축복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6~8절에 보면,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지혜로서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통치자들, 관리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을 알았다면, 영광의 주님을 죽이는 실수를 했을까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 서기관들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평소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고,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고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는 믿음을 가지려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도 모르는 사람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왜 자유주의 신학자가 있습니까? 왜 종교다원주의자가 있습니까?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는 똑같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그리스도요, 이슬람교에서는 마호메트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잘 믿으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이단 중에서도 이단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90%이상이 기독교인이었던 영국에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가서 지금은 기독교인의 수가 국민의 2~3%도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없어졌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5천~6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이 비었습니다. 교인이 없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을 왜 주장합니까? 많은 목회자들이 왜 그것을 받아들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고, 심지어 신학교 교수가 되었다 할지라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똑바로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라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 베드로처럼 신앙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압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믿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것,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아는 것,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이 복입니다. 이보다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을 아무리 많이 받았다 해도,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자가 되었다 해도, 세상에서 인기 있고 성공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믿음이 없으면, 구원 받지 못합니다. 영원한 지옥 불못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저주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간단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망하는 줄 알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고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요 7:41)”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쪽에는 유다가 있고, 북쪽에는 갈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마리아가 있습니다.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지나야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지 않으려고 우회해서 갈릴리로 갔습니다. 사마리아 땅을 밟기도 싫어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예루살렘만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지방에 앗수르 사람들을 많이 보내서 그곳에서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앗수르로 잡아갔습니다. 그 결과 두 민족이 섞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북쪽 갈릴리는 침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결과 갈릴리 사람 역시 순수한 유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 천대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갈릴리에서 어떻게 선지자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아있을 때에 태어난 손자라고 해서 거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지만,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사람은 참으로 귀한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7~9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방인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복을 누립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고 믿음으로 산 사람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아브라함과 함께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당당하게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29절에 보면,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한 가족입니다. 천국 시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속했다면,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비롯한 모든 복,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을 아브라함과 함께 누릴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도 좋지만, 믿음으로 구원 받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이 귀하고 복됩니다.
유대인 중에는 여러 신분의 사람이 있지만,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서기관과 당시의 장로들은 종교지도자일 뿐 아니라, 소위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결국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서 고통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에 보면,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옥에 들어가면. 무감각해져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뜨거운 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서 고통당합니다.
그런데 그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지옥을 ‘불못’이라고도 하는데, 영원한 불못입니다.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
잠시 고통 당해도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런데 뜨거운 불속에서 영원히 고통 당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상상하기만 해도 소름 끼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로마서 8장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 받습니다.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어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고통을 즐거운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즐겁게 고난 받아야 합니다. 장차 받을 영광이 크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44~49절에 보면,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 받은 사람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8~29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서기관들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는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고 감동 받았는데, 바리새인들은 전혀 감동 받지 못했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은혜 받고 감동 받는데, 바리새인들은 왜 전혀 감동 받지 못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옥에 가기로 작정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43~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까?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까? 예수님께서 아무리 귀한 말씀을 전해도, 왜 감동 받지 못합니까?
바리새인들은 종교행위를 하는데 있어서는 아주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경건하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없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비례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48~52절에 보면,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존경 받는 훌륭한 랍비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에게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흥분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 ‘저주를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들의 말대로, 예수님께서 율법을 알지 못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잘못된 율법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7장 7~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고약한 사람입니까.
부모님을 섬기기 싫으면, ‘고르반’이라고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고르반’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자기들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감하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자기들이 만든 것을 엉터리로 덧붙여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들이 만든 계명을 따르기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고르반’이라고 하면, 부모님을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이런 나쁜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저주 받은 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사람의 계명’은 하나님의 계명과 비슷하지만, 하나님의 계명은 아닙니다. 비슷하다고 해서 속으면 안 됩니다. 분별하세요. 비슷하다고 해서 따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등 모든 면에서 철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정리하면,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하나님만 섬긴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말씀만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며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제사장,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보고 왜 안식일에 일하느냐고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을 어기는 자가 어떻게 그리스도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똑바로 알지 못해서 이런 짓을 했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되고, 가만히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율법의 중심이 무엇인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신명기 6장 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보면,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주 사랑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항상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모두 받아 누립니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끼리 사랑하며 살면,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부자가 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비해 우리나라가 지금 얼마나 잘 삽니까. 지금처럼 잘 살았던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면, 우리나라만큼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자살률 1등 국가입니다. 지옥 같은 나라라고 합니다.
아무리 부요해도, 부요함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잘 산다고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6~22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은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나누는 것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거짓 사랑입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거짓 사랑입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기 원한다면,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반드시 축복 받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29절에 보면,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 사람들에게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많은 재물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에 있다는 것을 믿었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알아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행하고 봉사하고 전도한다고 해도,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좋고, 구제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그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사랑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를 교회라 할 수 있습니까.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이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중심 되는 정신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되 사랑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모든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에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사랑을 잃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아버지, 절대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