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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6장

믿음이 작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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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5-03 12:21 조회3,4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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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작은 사람들

 

믿음이 작은 사람들

2017년 04월 30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6:14~2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하나님께서 보시는 ‘중심’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 생각, 정신, 사상 등이 중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믿음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훌륭하다 해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사람이 보기에는 부족한 것 투성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우리는 좋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늘과 땅을 주장하시는,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품이 진실하셔서 거짓말을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말씀인데, 하나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성경에서 잘못된 것을 발견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말씀 하나하나가 진리요,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반드시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한없이 크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시고 허물이 없으시고 실수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의 모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온갖 재앙이 나옵니다. 세상을 주장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에 실수하시는 것 보셨어요? 고센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조금도 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 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잊어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에게 있는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좋고, “주님”이라고 부르기만 해도 좋은가를 생각해보세요. 그것이 자신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별로 없고, 돈을 더 귀하게 생각하고, 하나님보다 어떤 사람을 더 사랑하고, 세상 것을 더 사랑하지는 않는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이 세상의 무엇보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면, 믿음의 분량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믿음만큼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셋째, 믿음만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믿음이 좋아질수록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행동하시는 것처럼 행동하고,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가, 예수님을 얼마나 닮았는가를 보면, 자신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주십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체적으로 알고 계시고, 우리를 위해 준비해주시는 것을 우리가 체험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믿음이 매우 작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답답할 정도이니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다면,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라가 망하여 다니엘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고도 다니엘은 죽을 각오로 평소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시므로 사자들이 다니엘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그곳에서 살아나오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말한 대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피투성이가 되기도 하고, 헐벗고 굶주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마음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어느 목사님이 새벽기도 시간에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다가오셔서 “너는 나 때문에 행복하니?”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너는 나를 위해 목숨을 다해 충성하니?”라고 물어보셨다면, “그렇습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텐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묻지 않으시고, “너는 나 때문에 행복하니?”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주님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셨다고 합니다.

또 주님께서는 “나는 네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것보다 나 때문에 행복하기를 원한다. 나를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는 것도 기쁘지만, 나는 네가 나 때문에 행복하기를 원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그토록 충성하는 것도 기뻐하셨겠지만,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매를 맞고 헐벗고 굶주려도 주님만 생각하며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시고 더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에 예수님이 좋아서 평생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좋아서 하나님의 일에 전념합니다.

주일에 여러 번 설교했습니다. 같은 설교를 다섯 번 반복해서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성도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면, 기분 좋았습니다. 성도들이 그렇게 오기만 하면 저는 열 번이라도 설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피곤해도 좋고, 힘들어도 좋았습니다. 저는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좋아서 주의 일을 하는 데 전념합니다.

 

저는 주의 일을 행복하게 하려고 했지만, 때로는 기쁨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고, 주의 일을 함으로 느끼는 마음의 행복이 사라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기쁨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나 때문에 행복하니?”라고 물으신다면, “주님, 저는 주님 때문에 행복해요.”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를 남게 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억지로 붙잡고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만일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TV로 전 세계에 중계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인류는 먹고살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모든 병을 고쳐주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사람이 있다면, 병원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과 같은 곳이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기적을 베푸신 사건이 역사적인 사실이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런 기적을 행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조금 다르게 썼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이 역사적인 사실인 것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런 기적을 행하셨다고 기록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기적을 베푸신 것은 예수님께서 곧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표적’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요 6:14).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요 메시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분이 바로 메시아이시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고 믿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표적이라는 단어를 요한복음에 열일곱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다른 데서는 이적, 기적이라고 기록되어있지만, 사도 요한은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메시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요 6:14)”고 말했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출애굽기 4장 16절에 보면,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가리켜 아론에게 하나님 같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살 위의 형님의 눈에 동생이 동생으로 보이지 않고 하나님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7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보통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6장 15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서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모세와 같은 선지자, 다윗과 같은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스라엘을 다윗 시대처럼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시아,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왕, 선지자,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을 임명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메시아는 왕, 선지자, 제사장의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를 왕으로만 생각하고, 선지자로만 생각한 것이 유대인의 실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실 뿐 아니라, 선지자 중의 선지자시요, 하나님의 백성을 모든 죄에서 구원하실 구세주이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실 구세주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양과 염소를 제물로 삼아 속죄 제사를 드렸는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두 번 다시 속죄의 제사가 필요 없게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의 죄를 단 번에 해결해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에 보면, 7백 년 후에 오실 메시아께서 어떻게 고난 받으시고 어떻게 죽으실 것인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은 모두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4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믿기는 하지만,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고난 받는 메시아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다 믿어야 합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 실수를 하면 안 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믿지 않고,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성경학자들이 성경을 똑바로 알고 똑바로 해석하고 똑바로 가르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고난 받는 메시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메시아를 성경에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증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구약시대의 성경학자들과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기 싫은 것은 믿지 않는 실수를 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이 실수한 것과 같은 실수를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하거나 성경의 말씀을 빼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 중에 택함을 입은 사람은 적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있는 사람들 중에 마귀의 자녀가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마귀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 사함 받지 못한 사람이 교회 안에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용서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주님께서 모른다고 말씀하실 사람이 교회 안에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미국에서 어느 교회를 찾아가는 길에 백인 여자를 봤습니다. 제가 서툰 영어로 “Are you christian?”라고 물었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제가 찾아가는 교회를 알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I am a born again christian.”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나는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거북해하거나 어정쩡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며칠 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해야 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6장 15절에 보면,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배에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밤이 어두웠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49~50절에 보면,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큰 환난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환난이 있으면, 전쟁과 환난으로 인해 죽는 사람의 수보다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죽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

두려움과 불안,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이 그만큼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모든 두려움, 불안, 공포를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평안합니다. 마음에 확신이 있습니다.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담대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2~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예수님께 다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벌벌 떨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9~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머리털 수를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십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바다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쳤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을까 싶어 벌벌 떨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8:26)”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반비례합니다. 믿음이 작아질수록 두려움은 커집니다. 믿음이 커질수록 두려움은 없어집니다.

 

우리의 불안함, 두려움, 근심, 걱정이 있으면, 믿음이 병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의미입니다.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오직 기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정말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세요.

저주 가운데 가장 큰 저주는 북한처럼 되는 것입니다. 독재자에게 시달리면서 노예가 되고,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음대로 믿을 수 없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저주는 북한에만 있습니다. 이 나라가 북한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울부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셔야 이 나라가 삽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큰 믿음을 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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