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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5장

가장 큰 복, 가장 큰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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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27 17:15 조회3,2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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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복, 가장 큰 저주

 

가장 큰 복, 가장 큰 저주

2017년 03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5:41~47

 

우리는 육신도 건강해야 하지만, 우리의 마음도 건강해야 합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믿음이 강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평강을 항상 유지합니다.

강한 믿음을 가지고 살면, 세상이 험악하다 해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걱정되지 않습니다. 항상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고, 마음이 병들기 시작하면, 믿음이 약해져서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의심이 많아집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항상 불안합니다.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에 건물이 튼튼하게 잘 지어졌다고 생각하고 믿는 사람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의심이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게 무너지지는 않을까.’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장로님은 부인과 함께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부인과 따로 탄다고 합니다. 혹시 비행기가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부부가 함께 죽은 후에 남을 아이들을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평생 저렇게 생각하고 사니 얼마나 불행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쓸데없이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불행해집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까지도 믿지 못한다면, 잠시도 평안하지 못하고 항상 불안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까지 믿지 못하는 것보다 골치 아픈 것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신혼부부가 김포공항 근처에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추운 날, 남편이 출근하다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여직원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니 그 여직원을 자신의 차에 태워서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동네 여자들이 보았습니다. ‘숨겨둔 여자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인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부인이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남편이 퇴근하면, 남편을 환영했을 텐데, 부인은 화가 나서 “당신, 오늘 아침에 만난 여자 누구야?”라고 남편에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설명하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부인은 남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진실하게 이야기했으니 부인이 남편을 믿어줘야 할 텐데, 부인은 남편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보다 속상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싸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부인은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밥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남편이 화가 난 상태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남편은 즉사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데, 부인이 남편을 의심하는 바람에 남편이 화가 나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운전할 때에 부부싸움을 하면 안 됩니다. 화가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사고 나기 쉽습니다.

나중에 사실을 다 알게 된 후에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 있습니까. 남편은 이미 죽었습니다.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의심이 생기는 것,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이것이 큰 불행을 가져옵니다.

고린도전서 6장 7절에 보면,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으로 의심하고 밤낮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큰 복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복입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고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는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집이 센지,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는 것입니다.

평생 교회에 다녔으나 믿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임종할 때에 “천국 가시겠네요.”라고 말하니 “가봐야 알지”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보다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감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도 항상 기뻐할 이유가 있다면, 예수님을 믿게 된 것,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항상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면, 구원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은혜요,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가운데,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이것은 재벌이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을 가리켜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보배가 믿음보다 귀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을 믿게 될까요?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기로 작정해놓으신 사람,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기로 작정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누가 우리를 예수님께 나아오게 했습니까?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시면, 올 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예수님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입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게 되고 믿어지고 입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잃어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절대 실수하시지 않으십니다. 마귀에게 한 사람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지만,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명기 31장 6절에 보면,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셔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떠나시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마지막 때에, 환난의 때에 이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절대 실수하시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흔들리지 마세요. 우리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보세요.

 

마태복음 10장 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시고,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는가를 아십니다.

우리를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우리를 손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10절에 보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짐승’은 아주 악독한 독재자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무신론자입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짐승 앞에 모든 사람이 머리를 숙이는데, 머리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입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짐승 앞에서 절하고 경배하지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승리합니다.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금은 큰 환난의 때입니다. 그런데 환난이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봐도 환난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죄가 이 땅에 가득할수록 환난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 4~8절에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재앙’은 죄 때문에 받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이 말세에 타락할 대로 타락하고 온갖 죄를 범할 때에 그들과 함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이 받을 재앙도 받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들이 악독해져서 죄를 범하니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처럼 재앙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성도들을 구별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세요. 아무렇게나 살지 마세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마세요.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세상에서 떠나서 세상 사람들이 받는 재앙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구별하셔서 환난을 피하게 하시고 책임지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롯은 믿음이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롯과 그의 가족을 끌고 나가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소돔 고모라에 함께 있으면 망할 수밖에 없으니까, 유황불 심판이 임하기 전에 롯과 그의 가족들을 빨리 끌고 나가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산으로 올라가라고 하셨는데, 산으로 올라가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천사에게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창 19:19~20)”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롯에게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창 19:21~22)”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구원 받은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집이 복을 받고, 여러분이 사는 동네가 복을 받고, 여러분이 사는 도시가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가를 자세히 살펴보세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재앙과 심판도 주님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세력이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사야 26장 20절에 보면,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무시무시한 재앙으로 이 세상에 임할 때에 밀실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밀실’은 기도의 방을 의미합니다.

 

스바냐 2장 3절에 보면,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분노의 날, 심판의 날에 이 세상에 어마어마한 재앙이 임할 때에 숨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밀실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있는 동안 재앙이 다 지나가버립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누구보다 잘 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며 말씀을 많이 전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에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누구보다 잘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이요, 벌써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불행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2절에 보면,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 12:24)”고 말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고 주장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2절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도 바리새인들과 똑같이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8~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귀신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멀쩡한 예수님을 향해 미쳤다고 했습니다. 이런 악독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0장 20~21절에 보면,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거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일어나고, 맹인이 눈을 뜨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눈으로 보고 감동을 받았음에도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오히려 훼방하고 거역하고 물리치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가리켜 미쳤다 귀신 들렸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도록 증거하시고 감동을 주셔서 구원 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합니다.

 

회개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받아들이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을 텐데, 성령을 자꾸 거역하고,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고,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향하여 미쳤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본문 요한복음 5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에게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나에게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정말 믿음이 있는가, 믿음으로 구원 받았는가를 알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간단합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버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형식주의, 외식주의에 빠져 종교행위를 할 뿐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믿음이 충만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합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어떤 일이 생겨도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다 보니 마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을 귀신 들려 미친 사람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시는 것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셔도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문제는 불신사회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점점 식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발달하고 잘 사는 사회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본문 요한복음 5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고, 서로 영광을 취했습니다.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 하고, 자기가 높아지려 하고, 자기가 대접 받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길에서 인사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자기가 영광 받으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이기적이고 교만하기 때문에 남을 사랑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요 가장 성공한 사람이요 가장 힘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멸시 천대합니다.

자기 지식에 만족하고, 자기 재물에 만족하고, 자신의 건강에 만족하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만족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 힘듭니다.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을뿐더러 믿을 수도 없습니다. 매우 불행한 사람입니다.

 

셋째, 본문 요한복음 5장 46~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세’는 모세오경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세오경을 똑바로 알았더라면 예수님을 똑바로 알았을 것입니다. 모세를 믿었다면 예수님도 똑바로 믿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말을 듣고 모세의 말을 믿었다면,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의 설교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스데반은 모세를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37절에 보면, 스데반은 신명기 18장 15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장 16절에 보면,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출애굽기 7장 1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모세는 장차 이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 메시아를 예표합니다. 모세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전하는 말씀, 모세가 증거하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모세를 믿지 않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믿지 않았고 모세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신 것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평소 모세를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잘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상숭배하고 타락하다 보니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계명을 외우지도 않았습니다. 모세의 글인 구약성경을 읽지도 않고 연구하지도 않고 잊어버리고 사니 성경 자체를 몰랐고,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도 알 수 없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은 오신 예수님, 오신 메시아에 대해 기록하고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중심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세요. 기도하면서 읽으세요. 그러면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때로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이 마지막 때에 우리 마음속에 굳게 새겨지게 하여주옵소서. 말씀 붙잡고 승리하게 하시고, 환난이 심해져도 흔들리지 않는 굳센 믿음의 사람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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