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증거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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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23 09:47 조회3,397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분
예수님을 증거하시는 분
2017년 03월 19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5:30~40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의 베데스다 연못으로 가셔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친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병자를 고치는 것도 일하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일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더욱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하셨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여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 마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잘못된 사람이요, 자신이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하는, 신성 모독하는 사람이라 단정 짓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마음 문을 닫고, 예수님을 괴롭히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멋대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대로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대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만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해주시고, 예수님을 혼자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모두 의롭습니다.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1~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시는 분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수님 자신을 증언하는 것은 참되지 않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7장 6절에 보면,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형시키려고 할 때에 한 사람의 증언만 듣고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듣고 확실한 경우에만 사형을 집행할 수 있지,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 자신에 대해 혼자 증언하신다면, 그것은 한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니 그것은 참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세례 요한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3~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3절에 보면,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에 예언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게 하려고 이 땅에 보냄 받아 온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4~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6~8절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 자체가 빛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어두울 때에 켜서 밝게 하는 등불과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등불을 끄면, 등불은 사라져버립니다. 기름이 떨어져도 등불은 꺼집니다. 그러므로 빛과 등불은 다릅니다.
세례 요한은 열심히 외쳤지만, 효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고 외쳐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12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증언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증언은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재판 받는 것을 보면, 엄연히 죄를 범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선을 다 한다 해도 사람의 증언에는 허점이 많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지 못해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그의 아내 이세벨이 거짓 증인 두 사람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라고 거짓 증언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봇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증인이 수백 명이라도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거짓 증인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판단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나 자신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거나 내가 나 자신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오해할 수도 있고, 잘못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3~4절에 보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를 가장 올바르게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가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생각하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잘못된 과거가 많아도 우리가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모습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매이지 마세요. 과거 때문에 고민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과거를 이야기해도 신경 쓰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기억하시지도 않으십니다.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면, 과거에서 완전히 해방됩니다.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세요. 지금의 내가 중요합니다. 지금의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판단에는 오해와 실수가 많습니다. 큰 회사에 근무하시는 장로님이 직원들과 회식하는데, 다들 술을 마시고 얼굴이 뻘개졌습니다.
직원들 중에 믿음이 별로 없는 집사가 술을 마시다가 장로님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도 술을 마신 줄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믿음이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장로님을 배려하여 장로님을 위해 사이다를 준비해놓았습니다. 장로님은 직원들이 준비한 사이다를 드셨는데, 그것을 본 집사가 장로님도 술을 마신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큰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증거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6~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고 있는데, 천군 천사가 나타나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찬송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가 탄생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충분히 증거해 주고도 남습니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에게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라고 말씀하시니 나사로가 일어나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 1:3)”고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요술이 아닙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이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고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잔잔해졌습니다.
하늘과 땅 모든 우주가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에 33년간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믿으려면, 듣거나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지만, 하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맹인, 귀머거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율법을 어기는 사람, 신성 모독자라고 단정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괴롭혔을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보고 들어도 하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듣기만 하면 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아예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음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마음 문을 닫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면서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이 엄청나지만,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많이 보여주셨음에도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 동안 행하신 많은 표적을 믿지 않았고, 믿으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39)”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바다에 빠졌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병에 걸리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가장 불행한 것은 정신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정신병원에 가보면, 환자들이 짐승 취급 받습니다. 그러므로 정신병에 걸리는 것이 가장 불행합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의처증, 의부증에 걸려 비극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병에 걸리면,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줘도 믿지 않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아예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의심하는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듣기 때문에 무슨 말을 들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비극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이런 병에 걸린 사람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 중에 한 분은 사업장이 굉장히 큽니다. 사업장이 여러 도시에 있을 정도로 크게 사업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사람을 절대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집사님에게 있는 병입니다.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 있어서 여러 도시에 있는 사업장을 각각 맡겨야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아무도 믿지 않으니까 사업장이 있는 여러 도시를 열심히 움직이십니다. 자신이 직접 다니며 일합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몸이 성하겠습니까. 사업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사장이 올 때에만 열심히 일하는 척 합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믿지 못해서 책임자를 세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이 병은 이렇게 비극을 가져옵니다. 속을 때에 속더라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저는 사람을 무조건 믿습니다. 한 번 속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무조건 믿습니다.
나쁜 사람을 보더라도 저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믿습니다. 그 사람이 나쁜 짓 하는 것을 본 후에 판단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제 눈에는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9~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도 않고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고, 나중에는 말씀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으로 어두워지고 어두워졌습니다. 성경이 확실하게 증거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아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보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을 알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아 영생에 이릅니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생깁니다.
〈벤허〉라는 책을 쓴 루이스 월리스는 미국 남부전쟁 때에 장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글을 쓰는 문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천지창조 등의 이야기는 신화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거짓된 신화에 속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이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깊이 연구하며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가 다 거짓임을 주장하는 책을 썼습니다.
1장은 썼습니다. 2장을 쓰려고 하는데,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이 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변화되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벤허〉라는 책을 썼습니다.
성경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다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았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다가 은혜를 받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는 사람은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 구절구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저는 창세기 1~2장을 읽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우주와 만물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다 주시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도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것이 크고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다면, 제게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 말씀은 영원한 약속입니다.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 음성을 들은 후, 저는 엄청난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제게 축복해주십니다. 저는 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똑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죽고 살고 흥하고 망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살아가기 어려워도 걱정하지 마세요.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어려움이 와도 큰 돈을 벌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Yes”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여시면 됩니다. 다 죽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한 번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되게 하십니다. 말씀하신 것을 책임지십니다.
제가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을 붙잡고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제게 필요한 것을 모두 준비해놓으신 것을 체험했습니다. 99%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순탄하게 하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아무리 크게 생각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큽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십니다. 실수가 없으십니다. 장차 심판하실 때에도 실수하시지 않으십니다. 절대 실패하시지 않으십니다. 실수하시지 않으십니다.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주님께 감사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은혜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 승리하게 도와주옵소서. 세상을 보고 흔들리지 말게 하시고, 주님만 바라보고 담대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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