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가나에서 두 번째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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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2-13 15:10 조회3,558회 댓글0건본문
갈릴리 가나에서 두 번째 표적
갈릴리 가나에서 두 번째 표적
2017년 02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4:43~54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멸시와 천대를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땅은 앗수르 왕이 점령했을 때에 앗수르 사람들을 그곳에 살게 하고, 그 땅에 살던 유대인들을 앗수르 땅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땅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 민족이 합쳐져 순수한 유대인도 아니고, 순수한 앗수르 사람도 아니고 그야말로 혼혈족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말, 신앙, 생활습성 등 모든 것이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 유대인들은 평소에 그들을 천대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특별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얼마나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땅이 유다와 갈릴리의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남쪽 유다 땅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사마리아 땅도 밟기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돌아서 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 땅을 아주 더러운 땅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셨다가 갈릴리에 돌아가실 때에 돌아서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마리아 땅을 피해서 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 땅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물 가에 앉아계실 때에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수가 성 여인을 만나셔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그 여인으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수가 성 여인을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수가 성 여인이 수가 성에 들어가 전도하여 수가 성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 와서 직접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가 성 사람들이 다 구원 받았습니다.
구원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아쉬워서 그들은 주님께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이틀 동안 더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남들은 사마리아 땅을 밟는 것도 싫어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그곳에 가시고 그곳에서 이틀이나 더 계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안에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모두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회교국가에서는 주님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워오니 마음이 급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람들의 꿈속에 찾아오셔서 만나시고 말씀해주십니다. 그래서 전도 받지 않아도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구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몇 년 전에는 이스라엘의 최고 랍비가 자기가 죽기 전에 유서를 남겼는데, 장례식 후에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죽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장례식 후에 랍비의 유서를 읽었습니다. 랍비의 유서에는 랍비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기록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급하십니다. 어지간히 전도해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직접 만나십니다.
러시아 서쪽 지방 터키 인근에서 사역하시는 어느 목사님께서 40개의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제게 꼭 와달라고 하셔서 제가 그곳에 가서 집회를 인도한 적 있습니다.
제가 목사님 한 분 한 분을 만나보니 대부분 과거에 마약환자였거나 조폭 등 이 세상에서 완전히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간증을 하는데,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찾아오셨다고 했습니다. 이분들은 너무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의심하래야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이분들은 불덩어리였습니다. 세상만사를 제쳐두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돈을 벌면 이스라엘까지 가서 한 달, 두 달 전도하다가 돈을 다 쓰면 돌아왔습니다. 대단한 분이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예배당은 제대로 짓지도 못하고 형편없어도,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운 것을 아니까 돈을 벌면 이스라엘에 가서 전도했습니다.
사마리아 수가 성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곳을 찾아가신 것처럼 택한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주님께서는 지금도 찾아다니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 성을 떠나 갈릴리로 가시면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요 4: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있습니다(마 13:57, 막 6:4, 눅 4:24).
예수님의 고향은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헤롯 왕이 어린 아이들을 죽이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으로 피하라고 하셔서 요셉은 아기 예수님과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했습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나사렛 지방에서 사시다가 가버나움에서 사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고향은 넓게는 갈릴리요, 가버나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향 땅으로 가시며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3~58절에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3~58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가난했고, 예수님의 형제자매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깔보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도 보면, 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이 선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말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6장 5~6절에 보면, “거기서는 아무 권능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지자가 왜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했을까요? 마태와 마가의 기록에 보면,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정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렸을 때에는 예수님과 같이 놀고 같이 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메시아요 선지자라고 해도, 사람들은 예수님의 옛날만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가족들에게는 높임을 받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60대의 목사님을 80대의 된 어머니는 “얘야”라고 부르십니다.
어머니의 눈에는 아기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 “오늘 조심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큰 목회를 하는 목회자인데도 어머니의 눈에는 어린 아이처럼 보입니다. 어머니는 옛날 생각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가족들에게는 선지자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서 진짜 귀신 들린 줄 알고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0~22절에 보면,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잘못된 말만 듣고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이 귀신에게 사로잡혔다고 해서 예수님을 붙들러 왔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만 듣고 실수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는 것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오순절에 성령 충만함을 받고 온 가족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모르고 믿지 않는 것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갈릴리 사람들이 누구보다 예수님을 똑바로 알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만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 엘리사, 우리는 그분들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합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4장 24~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고 말씀하셨습니다.
과부가 엘리야를 대접할 때에 어떤 것으로 대접했습니까. 아들과 함께 한번 식사하면 마지막 음식이 될 음식으로 먼저 엘리야에게 대접했습니다. 이게 보통 믿음입니까.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아도 이런 과부는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귀한 종인 것을 알고 엘리야를 대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여인은 엘리야를 대접했습니다.
누가복음 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엘리사가 보통 사람입니까.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그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나병을 고침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엘리사가 고친 나병환자는 아람 장군 나아만 한 명 뿐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믿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창녀들 중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8~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끝까지 회개하지도 않고 끝까지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창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크게 성공하려면 고향에서 살면 안 됩니다. 고향을 빨리 떠나야 됩니다. 다 고향을 떠나야 됩니다.
서울에서 크게 목회하시는 조용기 목사님은 서울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서울 사람입니다. 그분은 양산 근처에서 자란 분이십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서초동 사람인 줄 아십니까. 거제도 사람입니다. 촌사람들이 서울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의 다섯 개의 교회에서 오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곳에 보내지 않으시고 부산에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고향에 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갈릴리로 오시면서 대접 받으려고 생각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이 포도주 되게 하는 큰 표적을 행하셨는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사람 중에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본래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갔던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니까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본문 요한복음 4장 46~47절에 보면,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가버나움에 있는 자기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으니 가버나움에 와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당시에 왕의 신하라고 하면 높은 귀족 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체면이나 위신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30세쯤 된 가난한 청년이요 목수에게 찾아와서 공개적으로 간청했습니다.
우리가 중한 병에 걸리는 어려운 일을 겪는다면, 이것은 큰 환난이요 고통이요 참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중병에 걸려 예수님을 믿게 되고 기적을 체험하고 구원 받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중병에 걸린 것은 어떻게 보면 괴로운 일이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방법을 통해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만방자했습니다. 제가 심방을 가면,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교만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간암에 걸렸습니다. 서울에 가서 수술 받고 치료 받다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나봅니다. 이분이 기적적으로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부산에 돌아와 저를 만났는데 예전의 그 분이 아니었습니다. 아기 같고 겸손해지셨습니다.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겸손해지셨습니다. 재산이 많으셨는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큰 병은 불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구원 받았으니 병이 오히려 축복인 줄 믿습니다.
환난과 고통은 교만한 사람들을 겸손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완악하고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중에도 큰 병에 죽어 가면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는 32㎞, 80리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도로 사정도 좋지 않고, 교통상황도 좋지 않았을 텐데,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왕의 신하의 믿음이 대단했고, 아들을 향한 사랑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는 데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걸리는 곳에서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일에 1시간 예배 드리기 위해 멀리서 오십니다.
교회 오는 데 얼마나 힘든가 물어보면,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합니다. 오가는 길에 차 안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깨닫고 은혜를 받아 행복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을 봅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봐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의심이 많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믿지 않습니다. 확인되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표적과 기사를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사탄이나 이단들도 표적과 기사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표적과 기사를 절대시하거나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2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탄도 모든 능력을 행합니다. 표적을 행하고, 거짓 기적을 행합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여 많은 사람을 미혹해서 타락하게 만듭니다. ‘어느 교회에 가니 귀신이 나갔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일어났다.’는 등의 소문만 듣고 따라가다가는 이단에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따라가야 됩니다. 우리는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진리를 믿어야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의를 좋아합니다. 못된 짓을 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이단에게 넘어가게 하십니다. 아무나 이단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단에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역사하는 것을 사모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기를 얼마나 사모합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기 때문에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하세요. 꼭 성령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거짓 영, 사탄도 우리에게 찾아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영, 성령이 아닌 영은 거짓 영입니다.
꼭 거짓말을 합니다. 열 번 맞다가도 한 번이라도 맞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거짓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이시고 진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100% 정확하지, 한 가지라도 틀리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성령이 임하고 주님께서 말씀해주셨다고 좋아하다가도 가만히 보니 거짓말입니다. 맞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듣는 것을 좋아하고 영이 임하는 것을 좋아해서 밤낮 따라다니다 보면, 거짓말을 하는데도 자꾸 받아들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완전히 미혹당하고 맙니다.
둘째, 거짓 영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로 가게 합니다.
셋째, 진리에 맞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에 어느 장로님의 가정에서 가정교사를 했습니다. 그 장로님의 매부 되시는 분이 목사님이었습니다. 북한에 아내를 두고 홀로 피난 나오셨습니다.
부흥집회를 잘 인도하시고 매우 신령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목사님을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어느 여자가 어느 날 세간살이를 잔뜩 싣고 왔습니다. 왜 왔는지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너 이제부터 거기 가서 살아라’고 명령하셨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자식을 두고, 혼자 사는 목사님에게 가서 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이 혼미해진 것입니다. 영을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은 진리에 어긋난 영이 아니십니다. 성령 자체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도마가 표적을 좋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에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요 20:25)”고 하니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고 말했습니다.
여드레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도마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처럼 표적과 기사로 믿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더 복된 사람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표적을 안 보고도 믿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49절에 보면,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곧 죽을 것 같았던 모양입니다. 급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재촉했습니다. 아이가 죽기 전에 와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는 대답하시지 않으시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요 4:5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가버나움에 오셔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셔서 아들에게 안수기도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만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섭섭한 일입니다. 만일 왕의 신하가 교만한 사람이었다면, 예수님께 화를 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불평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병환자 나아만이 그랬습니다. 나병을 고치려고 엘리사를 찾아왔는데, 엘리사는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서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하자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나와 자기에게 큰 절을 하고, 자기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주고 정성을 다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내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자를 시켜 말하게 했습니다.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아마 이를 갈았을 것입니다. 다시 쳐들어와서 다 죽여 버리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아만은 분노하여 떠났습니다.
그때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왕하 5:13)”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나아만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해졌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50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가는 길에 종들이 와서 아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아이가 낫기 시작한 때를 물어보니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신 그 때 아이가 나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7:13)”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안수기도를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마치 몸이 다 나은 것처럼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만신창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고 가다 보니까 깨끗해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해보세요. 축복 받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라도 합심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축복 받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겨자씨만큼 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작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아멘으로 믿으세요. 순종하세요. 실천해보세요. 축복이 있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이어서 죽이지 못하고, 유월절이 끝난 후에 죽이려고 베드로를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베드로를 쇠사슬로 묶어놓고 군사들이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베드로 양쪽에 군사와 같이 묶여있어서 그러니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살아나올 가능성은 1%도 없었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겨자씨만한 믿음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쇠사슬이 다 풀어지게 하셨습니다. 잠자는 베드로를 깨우셔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옥문이 저절로 열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돌아왔습니다.
베드로가 돌아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로데가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 베드로는 “나 베드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로데가 너무 반가워서 문도 열어주지 않고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고 알렸습니다. 그런데 “네가 미쳤다”고 하고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강하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서야 문을 열어줬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없어도, 100% 안될 것이 확실해도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세요. 기적이 일어납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어느 권사님이 제약회사를 크게 경영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를 조사하러 가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못 걸리면 회사가 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이 아들 딸 손자들까지 다 모아서 금식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제게도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셔서 저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뭔가 잘못 되어서 조사하러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기도 응답입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무슨 일이든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서 두 사람이라도 합심하여 기도하면 산을 바다로 옮길 수 있고,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수영로교회의 수만 명의 성도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어려운 문제를 두고 기도하면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두 사람이라도 합심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한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해서 120명의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행 1:14). 그래서 오순절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사도행전 5장 32절에 보면,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믿으세요. 그대로 실천하세요. 순종하세요. 모든 축복이 임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앞으로 이 세상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두 사람이라도 합심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으세요. 기적을 체험하세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세요. 항상 승리할 줄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큰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 그대로 믿고 순종함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삶을 살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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