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하는 사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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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2-06 19:47 조회3,619회 댓글0건본문
전도하는 사마리아 여인
전도하는 사마리아 여인
2017년 02월 05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4:27~42
믿음이 있는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대망(待望)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일찍이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나라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메시아를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메시아가 속히 오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시므온은 참 훌륭한 성도였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성도였습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신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성령께서 그에게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눅 2:26)”고 말씀하셨습니다.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드디어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 아기가 메시아이심을 성령께서 알게 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28~33절에 보면,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메시아에 대해 사모하는 마음도 없었고 메시아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괴롭히고 미워하고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다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라는 것을 끝까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못된 짓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예수님과 3년이나 함께 있었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는 마귀입니다. 껍데기만 사람일 뿐 그는 마귀입니다.
요한복음 6장 7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마귀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겠습니까.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을 항상 지배했습니다. 그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도록 그의 속에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니 가룟 유다는 완전히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정말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가리켜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인간입니까. 그의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하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오늘날 이 세상에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저는 가룟 유다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 바에는 제 영혼을 빨리 거둬가 주세요. 이 세상에서 살 필요 없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죄가 많은 여자요, 부끄럽게 살아온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배와 메시아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성경을 볼 때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신분, 과거와 상관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볼 때마다 저는 매우 감사합니다.
그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믿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완전한 믿음이라야 구원 받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만 구원 받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합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을 때에 양쪽에 있는 십자가에 강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고 비방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방한 강도를 향해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눅 23:40~41)”라고 꾸짖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개한 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똑바로 알았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악한 인간들의 모함에 의해 죄 없이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증거했습니다.
이 강도가 예수님을 위해 증거하고 변명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쪽에 섭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반대편에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괜히 욕하고 미워합니다. 기독교를 비난합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 강도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말했습니다.
이 강도는 장차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장차 천국에 가면, 주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계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강도는 죄가 너무 많아 예수님께 “나를 좀 기억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부탁할 염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강도를 향하여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강도에게 믿음이 있다고 해도 얼마나 있겠습니까. 강도는 십자가에 달려있었던 몇 시간 동안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보고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갔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만날 줄 믿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워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할까요?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말세의 징조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웠을 때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 예수님께서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며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더라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낮에 오실지 밤에 오실지, 우리가 일하고 있을 때에 오실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던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흠과 티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좀 더 잘 살겠다는 욕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돈을 좋아하고 세상에 관심을 쏟고 삽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등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살아야 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빈 등만 들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다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평생 교회 생활 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를 많이 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진짜 믿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야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회개가 없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없습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평생 교회에 다녀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예전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의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한번 토라지면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를 갈고 보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작은 죄를 범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괴로워합니다.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죄를 범하면 괴로워하고 걱정하고 고민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마음이 있습니까? 감사하세요. 그런 마음이 생길 때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하면 변화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원수까지도 용서하려고 하고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세요. 애쓰세요.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세요.
“아버지, 제 힘으로는 안 됩니다. 성령 충만해야 제가 원수를 용서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라고 기도하세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났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맡은 사랑방 소그룹 식구들을 잘 돌보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45~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게 일을 맡깁니다. 자기가 맡은 자에게 신령한 양식, 즉 자기가 은혜 받은 것을 항상 나누며 은혜 가운데 살다가 주님을 만나 주님 앞에 선다면, 주의 일을 한 그 사람이 제일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고난 받으면, 주님께서 받으시는 고난을 함께 받습니다.
주님께서 받으시는 고난을 함께 받는 것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큰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 8:18).
본문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아와 예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요 4:25)”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요 4:26)”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좋았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이것을 혼자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처음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을 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내가 천국에 가겠구나,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좋았습니다.
‘내가 뭘 하다가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 기뻐하실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제쳐두고 “필도야”라고 하시며 저를 끌어안으시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주님과 그렇게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니까, 전도를 많이 하면 그렇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여러분, 초신자들이 전도를 잘 합니다. 초신자는 주변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고 기쁘고 행복한 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는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간증 전도를 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요 4:39)”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에는 아주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전념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온 것을 보면, 전도의 효과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요한복음 4장 39절에 보면,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로 수가 성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40절에 보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믿음이 생긴 증거입니다.
믿음이 생긴 사람들, 구원 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다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대접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께 좀 더 계실 수 없는지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이틀이나 더 계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루디아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5절에 보면,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교역자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교역자에게 관심도 없고 아주 냉정합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부인은 예수님을 믿는데, 남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 심방을 했습니다. 남편은 의사였는데 부인은 남편에게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인은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과 저만 앉아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대접하셨습니다.
저는 앉아서 예배드리려고 생각했는데, 도무지 예배드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의사인 남편은 저를 환자처럼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게 1시간 동안 이야기했습니다. 쉬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돈을 많이 번 유명한 의사다 보니 젊은 목사를 얕잡아봤습니다. 그래도 제가 불쾌해하지 않고 말을 다 들어줬습니다. 그랬더니 기분이 좋았는지 부인 따라 교회에 왔습니다.
교회에 와보니 우리 교회가 보통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남전도회원들과 함께 있어서 제가 반가워서 인사하려고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를 보고 숨어버렸습니다. 옛날에 아무것도 모르고 못할 짓을 했으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변화됩니다. 겸손해집니다. 주의 종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종들을 사랑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과 다릅니다. 여러분이 이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41~42절에 보면,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올바른 믿음은 진리를 똑바로 알고 믿는 믿음이라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우선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똑바로 알려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워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무식하면, 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면 이단에게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42절에 보면,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섭섭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섭섭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구주이심을 확실히 믿게 되는 것은 주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듣고 확인했습니다. 주님께서 구주이신 것과 메시아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믿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31절에 보면,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전도하러 동네로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32~34절에 보면,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먹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은 먹으면 살고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만큼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가지 않으려는 사마리아에 오셔서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시고, 수가 성을 구원하신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35~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밭이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믿을 준비가 다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전하기만 하면 바로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예수님을 믿을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전도하지만 효과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이제 나를 찾아왔느냐?”하며 기뻐합니다. 교회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잘 익은 곡식과 같습니다. 추수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기만 하면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별로 힘들지 않게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러 가기 전에 충분히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충분히 기도하고 전도하러 가야 합니다.
전도해도 열매가 없는 사람은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8절에 보면,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하느라 수고한 대로 일한 대로 상을 주십니다. 몇 명 전도했는가를 보고 상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즐겁게 전도하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요한복음 4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주님과 함께 상을 받고 영광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주님의 일을 함으로 장차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에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이 보약과 같이 우리의 심령을 윤택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서 여생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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