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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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11:53 조회3,576회 댓글0건본문
주님을 만난 사람
주님을 만난 사람
2004년 10월 01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4:39~42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첫 번째 왕은 사울, 두 번째 왕은 다윗, 세 번째 왕은 솔로몬, 네 번째 왕은 르호보암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우상숭배하고 타락함으로 인해 르호보암이 왕이었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마치 경쟁하듯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더 심하게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호세아가 왕이었을 때에 멸망했습니다. 그 당시 남유다에는 히스기야가 왕이었는데, 남이스라엘도 함께 멸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눈물로 기도하여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유다는 히스기야의 기도로 말미암아 140년 동안 더 존속하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망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1~6절에 보면, “유다의 왕 아하스 제십이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간 다스리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삼 년간 에워쌌더라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1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에서 호세아까지 209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한 왕조가 이끈 것이 아니라 아홉 왕조가 계속 바뀌었습니다. 아홉 왕조에서 나온 왕들이 통치했습니다. 그래서 왕조가 바뀔 때마다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멸망하게 된 이유가 열왕기하 17장 7~18절에 나옵니다. 열왕기하 17장 7~18절에 보면,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24절에 보면,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땅에 앗수르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곳에서 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그곳에 살던 사마리아 사람들과 앗수르 사람들이 혼혈이 되었습니다.
종족에 따라 별별 종교가 들어오고,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민족은 어느 민족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17장 39~41절에 보면,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숭배를 하며 살았습니다. 이때부터 유다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잃었습니다. 혈통으로는 잡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지방에서 북쪽 갈릴리 지방으로 가려면, 중간에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야 했습니다.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면 사흘 만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단 동쪽으로 가면 6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고 6일 걸리는 길을 갔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가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 보면,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있는 우물 곁에 앉아계셨고,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요 4: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 4:9)”라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요 4:25)”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요 4:26)”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렇게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마리아 여인은 변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8~30절에 보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회심하고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변화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주님을 깊이 알고 깊이 체험합니다. 이것은 결혼 생활을 1년 한 사람과 30년 이상 한 사람의 차이와 같습니다.
둘째,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수록 주님을 신뢰합니다.
셋째, 주님을 점점 사랑합니다.
저는 아내에게 제 월급을 다 줍니다. 그렇게 해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내에게 묻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할수록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싶고, 주님께 다 드리고 싶습니다. 다.
주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39~42절에 보면,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한 여자를 통해 그 동네 사람들이 모두 주님을 만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신앙의 순수성과 혈통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교회 안에 많습니다. 신학교 교수라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감리교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는 신화라고 말합니다. 그런 신학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공부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지 못한 채 목사 노릇을 합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도 자연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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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믿어야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릅니다.
이들은 술을 잘 마시고 토정비결도 보고 점치러 가기도 합니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온갖 우상을 가지고 삽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망했습니다.
저는 교파를 초월해서 많은 분들을 만납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를 해도 거듭난 사람인지 주님을 만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61~65절에 보면,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대제사장이고 성경박사라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일성의 외삼촌 중에 강양욱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셨는데, 나중에는 북한에서 기독교 전체를 말살시켰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이런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겉으로는 직분자 같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는 수가 성 사람들은 구원받았습니다. 최초의 복음화는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닙니다. 과거와 신분과 족보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났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한 백부장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우편 강도 역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4~28절에 보면,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활한 주님을 만난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많이 알았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난 순간, 그는 모든 목표와 계획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엄청난 변화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변화가 있습니다.
첫째, 철저한 회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눈물을 흘립니다.
둘째, 새 사람이 됩니다. 자신이 변한 것을 자신이 알고, 특히 가족들이 압니다.
셋째,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넷째,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에 일곱 귀신 들린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확실하게 변하여 그의 마음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주님을 계속 따라갔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는 십자가 밑에서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는 무덤에서 주님을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만난 사람의 표본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이 즐겁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위해 목숨을 겁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이 없는 삶, 주님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성격이 급하고 활발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 본성은 학자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제 큰딸이 저를 닮아 어디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심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 주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 살고 싶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어디를 가든지 항상 기도하고 믿음대로 살았습니다.
저같이 소심한 사람이 어떻게 전교생 앞에서 찬송가를 1절부터 4절까지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을 만나고 나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첫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납니다.
설교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로운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주님을 변하는 만나기도 하고, 성경공부를 하다가 주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둘째, 기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에 보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통회자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임재를 알게 되고, 성령의 위로를 받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14~18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34~35절에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에 보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올 때도 있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더 알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경험에 의하면, 어려움을 당하게 하신 것이 시간낭비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포기하지 못하고 죽지 못한 부분, 깨닫지 못한 부분이 제 안에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통해서 더 큰 일이 있을 줄 믿는다고 고백하십시오.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어려움이 생기면 교회에 잘 나오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속상합니다. 화가 납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겼다고 자꾸 처지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처집니다. 이런 사람은 끌고 나와서 기도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수가 성 여인처럼 변화되면,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올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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