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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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12-05 12:21 조회4,648회 댓글0건본문
구원과 심판
구원과 심판
2016년 12월 04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3:16~21
본문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귀한 아들을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누구나 영생의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주 예수를 믿는 사람만 영생의 복을 받습니다.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도 축복이요,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도 축복이요, 세상에서 성공하여 잘 사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받은 복은 세상에서 끝납니다. 그리고 세상의 복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잠시 좋을 뿐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는 것은 영원한 축복이요,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영생의 복은 오직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느냐 심판을 받느냐가 결정됩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심판을 받지 않게 하고, 구원 받게 되는 믿음은
첫째,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말씀대로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통해 우리는 구원 받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론은 제사장이요 굉장히 훌륭한 사람인 것 같은데도 하나님을 똑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아론은 백성들과 함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지금도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평생 교회 다니고 직분자로서 봉사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교회 안에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연말연시가 되면 점치는 곳에 가기도 하고,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열심히 봅니다. 점쟁이나 운세를 봐주는 사람이 사람들의 미래를 알아맞춘다면 아마 재벌이 되었을 것입니다. 1시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들의 운세에 대해 미리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그런 것을 믿습니까.
걱정거리가 생기면,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돈을 주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제 사업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리 아들, 딸을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무당을 찾아가던, 예전의 버릇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합니다.
왜 이렇게 행동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합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오직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아무리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잘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말해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살아납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해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가시면, 자다가도 죽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금식기도하세요. 은혜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괴롭히시지 마시고,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하나님께 “이제 죽으라는 겁니까?”라고 물어보며 금식하며 기도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경험하세요. 금식하며 기도하면, 은혜와 축복을 반드시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낙심합니다.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절망에 빠집니다.
자살의 충동을 느껴 약을 사 모으기도 합니다. 자살하고 싶어도, 약 먹지 마세요. 죽는 방법이 있습니다. 금식기도하다가 죽으면 됩니다. 죽더라도 금식기도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하세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에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금식기도하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축복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까.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똑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똑바로 알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아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곁을 쉽게 떠납니다. 진리와 이단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기 때문에 이단에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 중에도 은혜 받은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 받은 것이 아니라,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서 속고 있는데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을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와 미혹의 영의 역사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알고 믿는 믿음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올바른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믿음만큼 순종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를 보면,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믿음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나타내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주님의 계명대로 지키는 믿음을 가지면,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대단한 순종입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아브라함은 동쪽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서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아브라함은 서쪽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냥 있으라고 하시면, 아브라함은 그냥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시면,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낳은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창 22:1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것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해주신 구원의 사랑을 깨닫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행복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솟아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고전 13:4).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래 참아주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저버리기도 하고, 죄 가운데 빠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즉각 진노하시거나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오래 참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아십니까? 에스겔 18장 2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좋으신 분이십니다.
사랑 많으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탕자가 돌아오듯이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아무리 타락했어도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해주시고, 죄를 모두 도말하셔서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죄를 기억하시지도 않으십니다. 과거의 모든 죄를 하나도 기억하시지 않으십니다. 회개한 자의 죄를 다시 논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잃어버린 축복을 회복시켜주십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아들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며 아들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요엘 2장 25절에 보면,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고 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많이 내리셨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몰려와서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면, 이전에 벌레들이 먹어버린 것을 다 갚아주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세요.
회개하면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것을 믿으세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하며 좋아서 잔치를 벌여주었습니다.
이것은 행복한 성도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받으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은 탕자의 형처럼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탕자의 형은 탕자처럼 집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주 불행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에 다윗은 무기를 찾지 않았습니다. 물맷돌 다섯 개만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고 말했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다윗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가장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이 될 사람으로 생각하시고,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다윗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싸우러 나아가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올라가라고 하시면, 다윗은 올라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했기 때문에 백전백승했습니다.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을 똑바로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복 받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창 1: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와 만물 등은 어마어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모든 것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쓸 수 없고, 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치게 주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 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창 3:7).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양의 가죽옷을 지어 입히려면, 양을 죽여야 합니다.
가죽옷은 죄로 말미암아 부끄럽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속해주시고 깨끗하게 씻어주실 것을 예표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고 저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크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범하여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 받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어지지 않아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끝까지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 큰 저주는 없습니다.
믿어지지도 않고, 믿으려고 하지도 않다가 결국 믿지 않고 죽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습니다.
요한복음 6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들에게는 지옥 불 못에 들어갈 일만 남아있습니다. 참 불쌍한 영혼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합니다. 얼마나 고약합니까. 밝은 것이 좋지, 어두운 것이 좋습니까? 그런데 악한 사람은 어둠을 더 사랑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람은 빛을 미워합니다. 이런 사람은 징계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징계를 받을수록 오히려 전보다 더 나빠집니다.
성품이 악독한 사람은 회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복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사랑해주면, 고마워하거나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더 크게 악을 행할 기회로 생각합니다. 얼마나 고약한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은 바르게 사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자기들처럼 바르게 살지 못하고 삐딱하게 사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얼마나 잘못된 사람입니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의 일입니다. 교수 중에 한 분은 믿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교수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생활이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생활이 깨끗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소에 음란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분의 그런 점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 앞에서는 웃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었습니다. ‘나보다 나이는 많은데, 왜 저렇게 철이 들지 않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그분 앞에서 웃고 좋아하는데, 저는 그분 앞에서 절대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분이 다른 학생들은 좋아하는데, 저는 싫어했습니다. 저는 웃지 않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자기 이야기에 호응하지 않는다고 저를 아주 불편하게 생각하고 싫어했습니다.
누가 잘못된 사람입니까? 제가 그분과 똑같이 행동해야 합니까? 결국 그분은 병들어 고생하다가 죽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나는 진실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사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좋은가, 그런 사람과 만났을 때, 내 마음이 편안한가,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사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좋은가 생각해보세요.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예배 시간에 지각한 사람은 자기보다 더 늦게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반가워합니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일찍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좋아합니다. 그것이 바른 생각입니까. 잘못된 비교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에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고, 예수님이 믿어진 것을 감사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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