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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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7 21:01 조회4,835회 댓글0건본문
중생의 증거
중생의 증거
2002년 07월 12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3:1~10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거듭나야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이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전도 받아 교회에 나오는 순간,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의 참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구원 받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교사가 되고, 찬양대원이 되고, 집사, 장로, 권사가 된다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교사로 봉사할 수 있고, 찬양대원이 될 수 있고, 집사가 되고 장로, 권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진실로 거듭날 때, 구원받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중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생하는 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중생했다고 해서 모두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생하는 순간은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생기는 순간과 같습니다. 아기를 임신했을 때, 초기에는 태아가 너무나도 작기 때문에 1~2개월은 임신된 것도 잘 모릅니다.
10개월이 지나야 태아가 예쁜 아기가 되어서 태어납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도 너무 어려서 혼자 내버려두면 살 수 없습니다. 젖을 먹여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겨주며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이가 혼자서 살 수 있는 성인이 되려면, 적어도 20년은 걸립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한 사람이 온전한 성도가 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중생하는 순간은 아기로 태어나는 순간과 같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들이 온전한 성도가 되는 과정을 성화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더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온전한 성도가 됩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내 성품이 되고, 예수님의 목표가 내 목표가 되고, 예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예수님께서 서시는 곳에 나도 서고,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것을 나도 사랑하고, 예수님께서 미워하는 것을 나도 미워하게 되어서 나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적인 최종 목표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으로 점점 닮아가는 것을 ‘성화’라고 하는데, 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이가 자라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성화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학생들의 실력이 갑자기 향상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점진적으로 자랍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중생했지만 중생한 지 오래 되지 않아서 신앙이 어린 사람들이 고린도교회에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조금 어려운 설교를 하면, 졸고 알아듣지 못 합니다. 책망하는 설교를 하면, 마음이 상해버립니다. 하는 행동이 마치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밥을 주면 먹지 않겠다고 하고, 젖이나 먹겠다고 하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단단한 음식은 소화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기도 하고 토라집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의 기질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때로는 불신자처럼 행동합니다.
어린 신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정말 중생했는지 중생하지 않았는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중생한 사람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회개가 있습니다.
때로는 실수하고, 넘어질 때도 있고, 죄를 범할 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할 때도 있지만, 중생한 사람은 반드시 회개합니다.
아직 부족하고, 성질이 나쁘고, 때로는 연약해도 회개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가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온전한 성도가 되기를 바라지만, 온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불만스럽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이 부족하지만, 회개하는 모습이 보이고, 그 사람의 눈물이 보이면 ‘아, 저 분은 거듭났구나. 중생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안심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믿음이 약해지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자기가 일시적이나마 주님을 배신하고 주님을 모른다고 한 것에 대해 간절히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자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증거입니다. 중생한 자는 반드시 회개합니다.
탕자를 보세요. 어리석어서 세상의 낙을 즐기고 실컷 먹고 마시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겠다고 집에서 나갔습니다. 그러나 거지가 되어서 돼지 치는 사람 밑에서 고생하다가 결국에는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넘어져도 반드시 돌아옵니다. 하나님을 떠났다가도 반드시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해달라고 회개하면 용서해주십니다. 회개할 때마다 용서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회개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둘째, 믿음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믿음이 얼마나 있는지, 믿음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거룩하게 살려고 애씁니다. 친구, 직장, 사업 때문에 죄를 지을 때도 있지만, 거룩하게 살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려고 애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가 어디로 가든지 어디서 뭘 하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드리다가 하나님 앞에 가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지 바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바칠 때 기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계획,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살고 싶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예배드리고 이렇게 헌금하고 이렇게 봉사하고 이렇게 충성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야지.”라는 하나님을 위한 소원과 계획, 하나님을 위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을 위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백성을 모두 구원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모두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 소원입니다.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기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어려움을 당하고,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 다칠 수도 있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괴로워하지 않고 영광으로 여깁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불구자가 되었거나 무엇을 잃어버렸다면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가서 면류관을 얻습니다. 여러분에게 큰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게 됐을 때 기뻐합니다. 부족하기도 하고, 작기도 하지만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는 줄 믿습니다.
셋째, 형제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중생한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형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중생한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성도를 사랑하고 믿음의 형제, 자매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 반가워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0~15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잠언 15장 8절에 보면,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마귀의 자식을 의미합니다.
가인은 한마디로 거듭나지 못한 신자를 가리킵니다. 똑같이 예배드리는데, 거듭나지 못한 신자로 구분되는 특징은 악함입니다. 가인은 마귀의 자식이므로 믿음의 형제를 미워합니다.
그러나 아벨은 맞아죽을지언정 남을 죽이는 악한 짓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인 같이 하는 사람은 악한 자에 속합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자가 교회를 사랑하는 자요,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양의 특징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마 25: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염소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마 25:41)”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 25:42~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 거듭난 자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자요, 마귀의 자녀입니다.
여러분들은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내가 아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금 굶는 것을 알아서 그 사람에게 내가 쌀 한 되라도 주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 드린 것과 같습니다. 형제를 사랑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내 형제들이 아플 때 가서 위로해주고 기도해주는 것은 다 예수님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분량이 얼마나 크냐는 따지지 마세요. 그것은 각자 믿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적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듭난 자의 증거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진짜 촛대를 옮겼습니다. 촛대를 옮겼다는 것은 거듭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구원받은 신자가 한 사람도 없이 마귀의 자식들만 모여있다가 교회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에 있던 교인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그들이 옮겨진 곳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촛대를 옮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십니다. 사랑이 없고 자기만 알고 남을 생각할 줄 모르고 서로 싸우고 미워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 수영로교회가 사랑 많은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저의 목회의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듯이 교회를 사랑하고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랑이 생명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가짜 목사가 됩니다. 사랑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됩니다. 중생의 증거는 믿음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넷째,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압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을 알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은 중생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중생한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들은 십일조는 물론이고 감사의 예물을 기꺼이 드립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저 체면이나 차리려고 남들 헌금할 때 호주머니 뒤적거려서 걸리는 대로 헌금하고, 절대 십일조도 하지 않고, 감사헌금도 하지 않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기쁨으로 드리게 됩니다.
다섯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중생한 사람들은 성경 말씀이 거짓됨이 없는 진리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그대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서 육지같이 건너가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활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부활을 믿습니다. 성경말씀이 그대로 진리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은 이것이 믿어집니다. 이것이 중생한 사람의 증거입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인도에서 평생 선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든 아홉 살에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본인은 나이가 많으니까 일하다가 죽으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선교기관에서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 강제로 그분을 미국으로 호송해서 보스턴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병을 돌봐주는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이 선교사는 “당신들이 내 방에 들어올 때는 먼저 ‘살아 있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야 일어나라.’라고 말해주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의사나 간호사가 들어오면 언제나 먼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병상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90세가 된 할아버지가 다시 인도로 가서 죽을 때까지 선교했습니다. 그 선교사님의 믿음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도 성경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습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 희미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습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은혜를 받습니다. 깨달음이 옵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장합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점점 거룩해지기 시작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는 분은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졸리고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교회 가기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나면, 말씀이 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듣는데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리고 깨닫습니다. 믿음이 생기고 은혜를 받아 변화가 일어나고 거룩해집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길가에 떨어진 씨는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새들이 와서 다 쪼아 먹어버립니다. 돌이 있는 밭에 뿌려진 씨는 돌이 많아서 죽어버리고, 가시밭에 뿌려진 씨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열매가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잘 자랍니다. 좋은 밭은 무엇을 말합니까?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이 나에게만 주시는 말씀처럼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아! 바로 그것이구나.”라고 잠에서 깨듯이 자기가 찾던 해답을 찾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반드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계 2:11, 17, 29, 3:6, 13, 22).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중생한 사람은 들을 줄 아는 귀 있는 자입니다.
일곱째, 고난이 오면 기도하라는 사인인 줄 알고 기도합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사람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기도합니다. 평소에는 기도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잠자기가 싫고 “오늘밤 철야기도 가볼까?”하는 사람은 중생한 사람입니다.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중생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야곱과 에서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입니까? 에서는 에돔 족속의 조상이고, 야곱은 이스라엘 족속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에서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야곱은 급하니까 얍복 강가에서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었습니다. 꿈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교통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왔을 때 기도하라는 사인인 줄 알고 기도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더 좋은 일이 있고, 더 잘 되고, 어려운 문제가 축복으로 바뀝니다.
거듭난 사람은 기도하고,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물론 사람을 찾기도 하지만 급하고 너무 안타깝고 힘드니까 결국은 하나님 앞에 매달립니다. 이것이 중생한 사람의 증거입니다.
장차 환난의 때, 시험의 때, 고난의 때가 많을 텐데, 항상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여덟째,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주 즐겁게 찾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에 보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모스 5장 4, 6절에 보면,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찾아왔기 때문에 상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탕자에게 좋은 옷을 입혀주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발을 신겨주고, 잔치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시고, 살 길이 열린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아홉째,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습니다.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기도생활을 통해 큰 은혜 받게 되고,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고, 간증거리가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중생한 사람들에게는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늘 간증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열째,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메시아시요,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분이시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중생한 사람입니다.
신학박사라도 이 믿음이 없어서 “종교는 다 같지, 예수만 꼭 믿어야 되나? 불교 믿어도 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 없습니다.
어느 육군부대의 부대장은 절에도 가고 성당도 가고 교회도 가고 세 군데를 다 다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만 믿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합니다. 불교를 믿어서 구원받든지, 성당 가서 구원받든지, 교회 가서 구원받든지 하여튼 모두 가니까 자기는 틀림없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그런 분이 없는 줄 믿습니다.
어느 교회의 권사님은 점쟁이를 찾아가십니다. 딸을 시집보낼 때, 점쟁이에게 가서 날을 보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없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은혜 가운데 살지 아니하면 쓰러지고 넘어지고 불신자처럼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있는 것이 거듭난 증거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사모하고, 열심히 기도하려고 애쓰고, 교회도 열심히 나와야 우리가 온전한 성도가 되지, 1주일에 한 번 주일에만 교회에 나오는 신자가 되면, 그저 적당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축복 받으셨습니다. 은혜 받으셨습니다. 이 환난의 때에, 신앙 지키기 어려운 이때에, 은혜 가운데 살고 항상 은혜를 사모하도록 애써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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