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믿음으로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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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3-29 12:15 조회2,286회 댓글0건본문
과연 믿음으로 살고 있나요
과연 믿음으로 살고 있나요
2021년 09월 05일(주일1부예배)
본문 / 요한복음 3:36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 받는 사람은 적다는 의미입니다.
노아 시대에 많은 목수가 노아의 방주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방주의 구조를 다 알 것입니다. 그러나 홍수가 내렸을 때, 노아의 식구 여덟 명만 구원 받았습니다.
앞으로 큰 홍수가 있을 것이라고, 이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노아가 방주 짓는 사람들에게 여러 번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방주에 들어가려고 노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노아의 식구 여덟 명 외에는 구원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노아의 방주를 짓는 사람과 같은가, 홍수 심판이 왔을 때에 구원 받은 사람과 같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 받는 사람이 적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뿐,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과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켜 ‘산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교회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죽은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7장 24~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이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그대로 있습니다. 지어놓은 그대로 있습니다.
설교를 열심히 듣습니다. 평생 교회 다닙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집이 그냥 무너집니다. 쓸려갑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 36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면 뭐합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살았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100%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그때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흉년이 들어 먹고살 수 없었을 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때 아브라함은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아브라함은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8~10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오직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것이지, 행함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해서 행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어도 된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야고보서 2장 10~11절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행함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99.9% 지켰습니다. 딱 한 번 어겼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율법을 다 범한 자와 똑같습니다.
율법을 하나만 범해도 죄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겠습니까.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범한 적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행위가 완전해서 구원 받은 것처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행위가 완전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른 조건이 있다면, 어떻게 구원 받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시편 19편 7~11절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금보다 더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표현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에 보면,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아의 일, 즉 밧세바를 빼앗고 우리아를 죽인 일 외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평생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믿음의 삶에 표준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다윗과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쟁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3절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찌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슥 2:8).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의 눈을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 여러분의 눈을 찌르면, 여러분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눈을 찌르는 것을 가만히 참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사람은 박살 납니다.
아말렉은 매우 고약한 종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들 중에 젖먹이도 남기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말렉에게 속한 것은 가축이든 무엇이든 다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히 없애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살진 짐승과 아말렉의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본 사무엘은 사울을 야단쳤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 15:15)”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지내려고 남겨두었다고, 하나님께 제사지내려고 가져왔다고 변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죽여야지, 그것을 왜 가져옵니까.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보면,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 받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 대부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삽니다. 자기에게 좋은 대로 삽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당연히 구원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구원 받는다는 성경 말씀은 없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많이 행한 것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법은 죄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목회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평신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실 때까지 기도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주실 때까지 기도합니다.
제가 간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냥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해주시면, 그것을 따라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사인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주시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겠습니다. 이렇게 해주시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포기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기도한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하는 제 마음을 보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본의, 자기 뜻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아버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그것을 얻은 줄 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 받는 사람이 적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자녀였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옥에 갈 사람이 아니고, 천국 시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천국 시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둠은 사탄 마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빛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어둠에 속한 마귀의 자녀가 빛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확실하게 변화됩니다. 열매가 다릅니다.
그러면 거듭난 사람은 어떻게 변화됩니까?
첫째, 철저히 회개하고 거룩하게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기억하시지도 않습니다. 과거에 범한 죄의 기록을 모두 도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면,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의 일이 모두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범한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회개한 사람은 그것이 없어집니다. 깨끗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죄와 싸워 이깁니다.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둘째, 원망 불평이 사라지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삽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으십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마다 감격스럽습니다. 기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생활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옥에서 멸망할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까워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좋은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분입니까. 탕자가 유산을 달라고 하자 아버지는 유산을 미리 줬습니다. 탕자가 허랑방탕하고 못된 짓을 해도, 아버지는 끝까지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은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왔다고 아들을 안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 좋은 분이십니다.
셋째, 이기적으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애쓰지만,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힘듭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 안에 옛 사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탄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세상이 너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직장생활을 해야 하고, 사업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사는 가운데 큰 환난과 시련과 핍박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바울이 고난 가운데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바울은 고난 속에 기도하는 가운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과 시련과 핍박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만나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순교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와 함께하시고 그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행복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9~10절에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고린도에 많다고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입을 다물고 있지 말고, 열심히 열심히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며 전도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18절에 보면,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21절에 보면,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에 보면,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제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주 가까이에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아주 가까이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멀리서 들린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에서 들렸습니다. 그것을 체험한 이후, 제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문제가 왜 많습니까?
첫째,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많습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거듭난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수십 년이 되어도, 왜 변화되지 않습니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생각해보세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확실하게 변화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있습니까.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까,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입니까. 거듭난 사람입니까,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의 마음이 잘 박힌 못과 같이 새겨지게 하셔서 이 말씀을 평생 붙잡고 살아가는 가운데 믿음으로 살고 거듭난 자의 열매를 맺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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