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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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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6:46 조회3,6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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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2016년 08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4

 

오늘부터 요한복음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을 서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4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신 것과 예수님의 일생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제4복음서라고 합니다.

 

똑같이 복음서이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것인데,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첫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같은 관점에서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것이고, 요한복음은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다른 점이 많습니다.

둘째, 요한복음은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 때, 즉 주후 95년경에 밧모 섬으로 유배되어갔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기도하다가 특별한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죽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 와서 100세까지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아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자 제자들이 사도 요한을 부축했는데, 제자들이 사도 요한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게 하면, 사도 요한은 항상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에 대해 여러 번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나이가 들수록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형제에게 불의한 짓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옥에 갈 마귀의 자녀입니다. 가인과 같은 인간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면, 형제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 사람이 진짜 크리스천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살인자와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회개했다면,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완전히 도말해주셨습니다. 마치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한다고 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왜 자꾸 기억합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마음이 미움이 있고 분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망합니다. 마귀의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므로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여 교회를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없어집니다.

 

사도 요한은 말년에 사랑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사도 요한의 설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설교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중 살아남은 제자였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사도 요한이 돌아가시면 예수님으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도 요한을 강권하여 요한복음을 쓰게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다 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빠진 것을 보충했습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에 없는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가나 혼인 잔치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4복음서 중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22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보충설명까지 해주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중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3장 23~30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가셨을 때, 수가 성에서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으로 인해 수가 성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 받았습니다.

이것도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이 이야기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 가에서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일으켜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도 다른 복음서에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만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떡은 먹어도 죽습니다. 하루 먹고 나면 또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영생하는 떡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라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맹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있는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명절에 예수님을 찾아온 헬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방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이것도 요한복음에만 기록된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도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른 보혜사’ 즉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시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과 요한복음의 결론을 말했습니다. 무조건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려는 목적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런 말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예수님을 비유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부터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태초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큰 환난과 시험과 고통으로 인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어려움을 겪음으로 예수님이 누군지 알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환난과 고통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축복 받고, 믿음으로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항상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압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군지 알수록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면,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과 주님만 붙잡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똑바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똑바로 깊이 알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비유로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에 비유하셨고, 참 포도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농부에 비유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비유가 많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잘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비유로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예수님을 말씀에 비유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라는 단어를 쓸 때, 헬라어 ‘로고스(λόγος)’를 사용했습니다.

로고스는 헬라 철학자들이 특별한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사도 요한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로고스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간 역할을 하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피조물 중에 가장 높은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고, 로고스는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도 인간도 아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간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피조물 중에 가장 높은 존재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靈)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영을 신령하고 거룩하고 좋은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육(肉)을 더럽고 죄악이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해도 죄 많은 인간들과 같이 더러운 육신을 갖고 계시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는 도깨비처럼 육이 없는 분이 아니고,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가지신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증거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복음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가지셨기 때문에 목마름을 느끼신 것까지 표현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 보면,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처럼 육신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옆구리를 찔리셨을 때에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신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사도 요한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입니다.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한 교리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다고 표현하지 않고, 육신이 되어 오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음을 강조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주장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갖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이단들이 그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육신을 갖고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이단입니까.

 

본문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로고스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만 하나님이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지은 것 중에 예수님 없이는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습니다. 로고스이신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처음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육을 가진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말씀에 비유해서 증거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게 알게 해주시는 계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도록 계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이 정확 무오한 말씀인 것과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 약속하신 메시아가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증거해주셨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희마하게나마 알게 되었다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말씀을 전하셨고,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11절에 보면,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잘 알아야 하지만,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가장 정확하게 알게 해주시는 계시자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에 비유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요한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오니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주셔서 말씀을 잘 깨닫게 해주시기 원합니다.

말씀을 들을수록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하나님과 예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가까이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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