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스라엘 사람 > 요한복음1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요한복음1장

참 이스라엘 사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10-25 13:40 조회3,430회 댓글0건

본문

참 이스라엘 사람

 

참 이스라엘 사람

2016년 10월 23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43~51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먼저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가장 먼저 택함을 받은 제자는 사도 요한과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마자 자신의 형 베드로에게 가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보시고 그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마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45절에 보면,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말하며 나다나엘에게 전도했습니다.

이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빌립은 “와서 보라(요 1:46)”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9절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알게 된 사마리아 여인은 수가 성에 들어가서 수가 성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가 성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 받았습니다.

 

여기서 깨닫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전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면, 예수님을 만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기쁨과 축복을 자기 혼자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친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면, 그 사람이 변화된 것을 그 사람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압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교회에 가더니 달라졌다. 교회에 뭔가 있나보다. 나도 가볼까.’라고 생각하여 따라 나오게 됩니다. 저절로 전도가 됩니다.

 

어느 장로님의 경우, 부인 권사님이 장로님보다 3개월 먼저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부인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남편이 ‘어떻게 저렇게 변화될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저렇게 달라지는구나. 나도 가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남편은 장로님이 되시고 부인은 권사님이 되셔서 교회를 위해 충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전도의 열매가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둘째, 전도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제 옆에 앉은 친구가 제게 “교회 가자. 한 번 와 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에 가서 보니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다녔습니다. 지금 그 친구는 창신교회에서 장로가 되었고, 저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친구가 제게 특별히 설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교회 가자 한 번 와 봐”라고 했을 뿐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믿은 지 하루된 사람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그에게 전도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지 하루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전도를 많이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아는 사람, 전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열심히 전도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된 사람은 주변에 예수님을 믿는 친구들만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자연히 멀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될수록 전도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신자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신자들은 전도할 대상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초신자들은 많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어린 아이이니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천국에 가면 예수님을 만나겠구나. 내가 무엇을 하다가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면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해서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 받게 할 때, 예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겠습니까.

 

그 당시 저는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 반 친구들을 한 명씩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 반 친구들을 모두 교회에 데려가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학교에서 노래 부를 기회가 있으면, 저는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내 주의 보혈은” 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몇 번씩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저를 ‘정 목사’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목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가족들도 전도하고, 친척들도 전도했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전도는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데리고 나오시면 됩니다.

 

누가복음 14장 16~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사람만 골라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닥치는 대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사람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사람들을 열심히 데려와서 하나님의 집을 채우면 됩니다.

열심히 전도해서 교회로 데려오면, 그 중에는 예수님을 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몇 개월 나왔지만 어려움을 당하면 믿음이 없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했을 때, 예수님을 잘 믿어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교회는 부흥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도해서 사람들을 교회에 데리고 와도 믿게 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전도한 사람이 예수님을 잘 믿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면,

첫째, 전도한 우리가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전도한 사람이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전도한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면, 전도 받은 사람도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전도한 사람이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전도 받은 사람도 성경을 열심히 읽을 것입니다.

 

전도한 사람이 모범적으로 본을 보이면,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을 본받아 좋은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한 사람이 기도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헌금할 줄도 모른다면, 전도 받은 사람이 그대로 닮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저를 전도한 친구의 형님이 대학생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 형님을 바라보고, 형님을 따라다니고, 형님이 하는 대로 똑같이 했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은혜를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훌륭한 사도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교회가 은혜로워야 하고, 예배가 은혜로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서 믿음 좋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교회가 은혜롭지 못하고, 예배 분위기가 냉랭하고, 사람들은 교만하여 목에 힘을 주고 앉아있다면, 좋은 성도가 생길 수 없습니다.

 

셋째,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시면, 절대 예수님 앞에 나아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6~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전도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아볼로가 사도 바울의 후임자가 되어 목회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은혜를 받아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사람을 예수 믿게 하실까요?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사람으로 택하신 사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은 다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이 다 예수님께 나아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절대 내쫓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라도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처음에는 거절하는 말을 했습니다.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이 빌립의 말을 의심한 것은 나다나엘이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의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유대의 북쪽 지방에 떨어져있는 동네였습니다. 주변에 이방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이방인들과 섞여 살다 보니 이방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천하게 여기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자꾸 어울리니 유대인들은 나사렛 사람들도 멸시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고 말했을 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라고 말했습니다. 나사렛에서 어떻게 메시아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의미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요 1:46)”고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에 순종하여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믿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계속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다 보면, 은혜 받을 기회가 생깁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깁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다나엘은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도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믿음이 좋았던 사람도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저와 함께 교회에서 기도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간 후, 공부하기 위해 3년 동안 교회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법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집에 가 보니 외워야 할 것이 여기저기에 붙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 치는 날, 시험지를 받아들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캄캄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실력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니 시험지를 받아들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영원히 교회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북한에서 예수님을 잘 믿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발생하여 군대에 가서 술 마시고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술에 취해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채로 교회에 오니 술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야단쳤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교회 밖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오면, 교회 2층으로 몰래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오늘도 한 잔 마셨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앞자리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어떤 사람이 몰래 교회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도둑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제가 중학생이었는데, 도둑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재빨리 뒤따라 올라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였습니다. 제가 인사했더니 아저씨는 제게 “아버지께 인사하러 왔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술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날 저와 마주친 후, 부끄러우셨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 술을 끊고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때는 마룻바닥에서 예배드렸는데, 어느 날, 그분은 마룻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분 뒤에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그분이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가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저씨, 무슨 일로 교회에 오셨어요.”라고 물었더니 “아버지의 집을 어떻게 그냥 지나가겠어? 인사하고 가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교회 앞을 지나갈 때마다 교회에 들어와서 기도하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교회를 화목하게 하고, 목사님과 성도들을 잘 섬기셨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 펴도 교회에 오세요. 술 끊은 후에 교회에 오겠다는 사람, 회개한 후에 교회에 오겠다고 하는 사람은 영원히 교회에 오지 못합니다. 무조건 교회에 오시면 삽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다 보면, 은혜를 받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눈물 흘리며 회개합니다. 거룩하게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이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충성하며 살아갑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고전 10:31).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딤후 4:2).

 

은혜 받은 사람은 사명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돈을 벌고 쓰는 자세가 다릅니다. 충성스러운 일꾼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많은 교회는 자연히 부흥합니다.

말씀을 듣다가 믿음이 생기면, 의심이 사라집니다. 믿음이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집니다.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계명과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믿음만큼 순종합니다. 창세기 12장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시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확신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작고, 확신이 없지만, 순종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1)”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사라와 의논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히브리서 11장 18~19절에 보면,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오직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지키시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리실 것이라고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함께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지만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자기는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답게 사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가 이스라엘 사람이고 축복 받았고 선택 받은 민족이라고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름만 이스라엘 사람이지, 이름에 맞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보시고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이름입니다. 야곱이 위기를 당했을 때에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 앞에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붙잡고 죽을 각오를 하고 늘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응답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축복하시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8)’라는 의미입니다.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야곱의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야곱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진 참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다나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진실한 믿음을 보시고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진실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진실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도 진실해야 하고, 기도할 때에도 진실하게 기도해야 하고, 감사할 때에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고, 헌금할 때에도 진실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해야 하고, 구제할 때에도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실이 왜 이렇게 강조되어있을까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훌륭해 보입니까. 그러나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위선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많이 들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이때 나다나엘은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요 1:48)”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 1:4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무화과나무는 옆으로 퍼지는 나무라고 합니다.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이 무화과나무 밑에 모여 기도하기도 하고, 성경도 읽고, 묵상하기도 하는 등 은혜로운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만나시기 전에 나다나엘이 얼마나 진실한 믿음의 사람인가, 얼마나 경건하게 사는 사람인가를 알고 계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알게 된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9)”라고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나다나엘에게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요 1:5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 1:51)”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8장 10~14절에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꿈에서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꿈에서 본 것을 나다나엘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수 된 우리들을 위해 죽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닥다리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닥다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의 문이 열리고,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될 것을 계시하는 야곱의 꿈을 나다나엘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를 구원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을 받게 하시는 메시아이십니다.

 

우리도 전도하며 살아갑시다. 전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합니다. “와 보세요.”라고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하루된 사람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알게 된 사람은 변화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말과 행실, 찬송과 기도와 감사, 헌금과 구제 등 모든 것을 진실하게 행하는 자가 되셔서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이기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복된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게 해주셔서 남은 생애를 아름답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